라떼의 부드러움-Edelweiss Snowfresh

맛보기 2015.08.17 18:30

크래프트 비어 시음기 (3)


대학 때부터 술을 좋아했다. 


우리 젊은 시절은 '술'을 마실 줄 알아야 사람들과 어울리기 쉬웠다. 대학시절, (지금 젊은 세대와는 다른 이유로) 암울한 나날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밤마다 술자리에서 인생에 대한 고민을 털어내며 보냈다. 한창 일할 땐, 사람들 만나느라, 일이 힘들어서, 하루의 마무리를 술로 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도 유독 맥주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맛없는 술이라 생각했다. 


술을 즐기는 타입이다 보니, 달달하고 약한 술 보다는 조금 묵직한 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맥주도 역시 페일 에일이나 IPA 류의 묵직하고 쌉싸름한 맛이 마음에 들었다. 



'밀맥주'는 어떨까 싶어서 선택한 'Edelweiss Snowfresh'는 오스트리아에서 만들어졌다. 유럽은 어딜 가나 개성 있는 맥주를 만드는가 보다 싶다.


에델바이스라는 꽃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상큼하고 부드럽다. 보리 맥아와 홉의 향이 강한 페일 에일 계열에 비해 밀맥주는, 마치 라떼처럼 부드럽다. 


산뜻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맛. 아, 이 아이가 정말 마음에 든다.


요즘 열심히 읽고 있는 유럽 맥주 견문록이라는 책에 보니 맥주는 배가 고플 때 먹어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허기진 상태로 먹어라... 아마 그래서 더 맛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설정

트랙백

댓글

다시 보자, 한국 맥주! - Be High

맛보기 2015.08.12 14:45

크래프트 비어 시음기 (2) 


많은 사람들이 한국 맥주 맛없다고  평가한다. 수입맥주가 흔치 않은 시절을 겪은 우리 세대는 그저 맥주 맛이 그런가 보다 했다. 나는 맥주를 싫어했다. 그래서 다들 맥주에 소주를 타마시기 시작했다. 맛없는 맥주가 '폭탄주' 전성시대를 가져온지도 모르겠다.


SSG 마켓이 목동에 문을 열었다고 해서 구경 갔다. 우연히 진열대 가득한 맥주를 보다가 눈에 띄는 장소에  놓인 맥주 몇 병 골라왔다. 맛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 맥주가 맛이 있구나! 





비 하이는 코리아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만든 맥주다. 충북 음성에 브루어리가 위치해있고 일본에서 유명한 히타치노네스트 (일명 부엉이 맥주)의 기술진이 생산에 참여했다고 한다. 홈페이지를 보면 자회사인 것도 같고, 독일 전문가도 참여했다고 하니 한국 맥주라고 말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국적 여부에 상관없이 맛있다.


인디아 페일 에일(IPA) 맥주로 알코올도수는 7%로 높은 편. 첫 맛에 감귤향이 난다. 그러나 날아갈 정도로 상쾌하지는 않다. 딱 향기로울 정도의 감귤향 뒤로 묵직하면서도 깔끔한 맥주 맛이 받쳐준다. 


비 하이를 알고 난 후부터 맥주에 반했다. 열심히 책 찾아 읽고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시음해보려 하고 있다. 


이제 맥주에 소주를 타마시는 무례를 범하지  말아야겠다. 

설정

트랙백

댓글

귤향으로 상큼하게 즐기는 맥주 - Tangerine Wheat Ale

맛보기 2015.08.11 16:46
크래프트 비어 시음기 (1) 

요즘 맥주에 꽂혔다.

내 성격상, 뭔가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면 놀랍게 집중한다. 그리고 공부한다. 술이 좋아지면 열심히 마시고 그 술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보고 싶어 진다. 


세상에 맛없는 술이 맥주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나라 맥주는 맛없다는 사실의 산 증인인 셈이다. 오죽 맛이 없으면 소주를 타마실까나... 알코올 도수라도 높여야 묵직한 맛에라도 먹을 수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슈퍼마켓에 있는 '크래프트 맥주'를 사다 마셔 보았는데... '개안 (eye-opening)'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세상에, 맛있는 맥주도 있더라. 알고 보니 많더라고...


그 뒤로 시간 나는 틈틈이 맥주를 찾아 마셔보고 있다. 아직 마셔본 맥주가 많지 않지만 그 경험을 나눠보기로 한다. 


첫 번째 맥주는 어제 마신 탠저린 휫 애일 맥주. 


<사진출처: 로스트 코스틑 브루어리 홈페이지>


몰트와 밀을 섞어 만들었고 탠저린 (귤의 일종)이 들어간 에일 맥주. 탠저린 함량은 1% 미만(수치는 기억 안 나는데 아주 조금이다)인데 한 모금 마시면 상큼한 귤 향이 번지면서 기분이 상큼 발랄해진다. "아, 맛있어!"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알코올함량 5.5%로 도수도 어느 정도 있지만 목넘김도 부드럽다.  첫 잔으로 마시기에 아주 좋은 맥주다. 마시면 일단 기분이 상큼해지니 강추!  


구글에 검색해서 이 맥주를 만든 회사 홈페이지를 찾아 보았더니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었다. 약사 출신이었던 바바라 그룸(Babara Groom)씨가 맥주집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맥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수년간 영국, 웨일스 지방을 다니면서 맥주 공부를 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1989년 캘리포니아 유레카(Eureka - 지도를 찾아보니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참 북쪽에 있는 도시인 듯)에서 그녀의 꿈을 현실로 옮겨 로스트 코스트 브루어리 앤 카페 (Lost Coast Brewery & Cafe)를 시작했다고 한다. 

(홈페이지 http://www.lostcoast.com/main.php 참조)


푸근하게 마음씨 좋아 보이는 바바라 씨의 꿈을 서울에서도 마시게 되다니! 참 놀라운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설정

트랙백

댓글

제주여행기(1) 자연산 막회는 언제나 옳다!

맛보기 2015.07.19 15:36

한 삼일 정도는 매일 회를 먹어도 물리지 않는 독특한 식성을 가졌다. 그렇다고 바닷가 태생도 아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 되기 까지 회를 먹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일식집 초밥 정도가 전부일까. 그런데 정말로 회를 좋아한다. 많이 먹다 보니 맛도 알게 되고 맛없는 회로 입맛을 버리느니 아예 입을 대지 않는 까탈스러움도 생겨났다. 어쨌든 회는 라면과는 다른 음식이니 말이다. 


바닷가로 여행을 가면 당연히 회를 먹는다. 웬만하면 항구를 찾아 나서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바닷가 번듯한 집들 보다는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 그 사람들이 찾는 허름한 횟집을 찾는다. 안되면 수산센터에서 회를 뜬다. 이 정도가 그동안 경험으로 가지고 있는 나만의 노하우다.


이번 제주여행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는 차를 가지고 배 타고 제주를 가려했으나 태풍 찬홈 때문에 배가 뜨질 못했다. 부랴부랴 비행기표를 구해 제주에 도착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내내 비가 왔다. 


첫날 숙소인 남원에 자리를 잡고 그래도 제주 여행 첫날인데 회를 포기할 수는 없어 남원항을 찾았다. 완전 파장 분위기. 철도 이른데다 태풍까지 부니 한두 곳 문을 연 횟집도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더 큰 성산이나 서귀포 쪽으로 나가야 할까 고민하다 골목에서 아주 허름하고 조그마한 '괸당네 어시장' 횟집을 찾았다. (제주말로 괸당은 '친척'을 뜻한다고 한다) 


7,8 석밖에 없는 작은 식당.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동네 단골들이 많은 집인 것 같았다. 메뉴는 이것 저것 많았는데, 따돔과 한치를 주문했다. 제주 사람들은 돔(=도미)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갓돔, 황돔이 나름 고급어종에 속한다. 따돔은 제주말로 '따치'라고 부르는 작은 생선. 가격도 한 접시에 3만 원. 양식을 할 이유가 없는 생선이었다.





두께가 얇지만 돔의 특성을 그대로 갖췄다. 탄력 있게 씹히는 식감, 살이 고소하고 달았다. 그래, 이맛이야! 제주 횟집에서는 회를 시키면 쓰끼다시로 다양한 것들이 나왔다. 제주에서 나는 딱새우, 해삼, 개불 등등. 꽁치구이 매운탕은 당연한 것.



따돔이 귀한 생선은 아니었지만 정말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다. 


한참 생선회와 술 한잔을 즐기고 있을 때 남편의 지인이 합류했다. 제주 성산에 사시는 분이 전화 한 통화에 추적추적 내리는 빗길을 뚫고 달려온 것이다. 그 분은 "따치는 그냥 소주 한 잔할 때 먹는 거지..."라며 갓돔을 추가로 주문했다. 한 마리 18만 원. 우리가 먹은 것 보다 6배가 비싼 생선. 갓돔은 검은 줄 무늬가 있는 도미로 흔히 줄돔으로 알려진 것이다. 


또 어마어마한 양의 쓰끼다시가 나오고 갓돔회가 상에 차려졌다. 잔뜩 배부른 뒤에 먹은, 갓돔은 따돔에 비해 별거 없었다. 솔직히 깊은 맛은 인정해주고 싶다. 물론 배고픈 상태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갓돔을 먹겠지. 그러나 가격을 생각했을 때 딱히 완벽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5번에 한번쯤은 갓돔을 고르겠지만 나머지는 따돔을 먹겠다. 


다시 한번 느낀 것이지만, 바닷가에서 먹는 자연산 막회의 '살아있는 맛'은 정말 최고인 것 같다.

설정

트랙백

댓글

부산 초량 밀면과 왕만두

맛보기 2015.07.06 14:08

아침에 서둘러 KTX를 탔더니 11시 반이 조금 못되어 부산역에 도착했다. 일요일 오전, 마음껏 게으름을 피워도 좋을 시간이다. 역도 한산했다. 목적지로 향하기 전 이른 점심을 먹고 움직이기로 했다. 어느 새 부산에서 꼭 먹어야 할 메뉴가 된 밀면으로 정했다. 


"조금 걸어서 잘한다는 집으로 갈래, 아니면 그냥 가까운 데 갈까?" 남편이 물었다. 

"(아니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조금 걸어서 잘한다는 집이지! "





부산역에서 10분쯤 걸어 초량밀면집으로 향했다. 입식 좌석이 몇 개 있고 좌식 테이블이 열 개쯤 있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식당이었다. 2년 전인가... 한 참을 기다려 먹었던 개금밀면 집은 훨씬 더 컸고 뭔가 전문점 같은 '포스'가 느껴졌는데 초량 밀면은 그런 위용은 갖고 있지 않았다. 


메뉴도 간단했다. 물밀면, 비빔 밀면 - 소 3,500 / 대 4,000, 왕만두 3,500, 사리 1,000원이 다였다. 물밀면 작은 것 2개와 왕만두를 시켰다. 하얗게 예쁜 면발의 국수와 시원한 국물, 다진 양념, 오이채, 편육 한 점, 계란 삶은 거 반 개. 깔끔하게 나왔다. '왕'만두는 이름에 걸맞게 컸고 만두소에 야채가 많이 들어간 담백한 맛이었다. 





초량밀면은 많이 알려진 집 답게 대개 손님이 타지에서 온 관광객 같았다. 여행 짐을 들고 들뜬 표정으로 맛있게 먹거나 사진을 찍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맛있게 먹고 나오니 식당 문 앞에 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보니 뭔가 더욱 뿌듯한 느낌으로 배가 더 불렀다. 


부산에서 밀면은 정말 흔한 메뉴다. 김밥집에도 있고 분식집, 일반 식당에도 있다. 먹어보진 않았지만 웬만한 곳의 밀면은 다 비슷하게 맛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조금 더 알려진 곳을 찾아 먹는 재미도 한 층 맛을 더한다. 서울에서도 더 많은 곳에서 밀면을 만날 수 있었으면...



설정

트랙백

댓글

빽다방 원조냉커피와 불량주스

맛보기 2015.07.04 17:14

'집밥' 백종원 선생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덩달아 그의 프랜차이즈 가게 들도 줄을 선다고 한다. 사무실 앞 상가에 빽다방이 생겼다. 평일 점심시간, 아이스커피가 가장 생각날 때는 빽다방 앞에 줄이 장사진을 치고 있어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오늘 같은 주말에야 겨우 맛을 볼 수 있었다. 





앗메리카노 아이스는 2,000원인데 원조냉커피 (커피, 설탕, 크림에 얼음을 넣은 냉커피)는 2,500원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비싼 원조냉커피에 눈이 간다. 게다가 분말가루로 탄 오렌지주스를 '불량주스'라는 이름으로 판다. 이건 그냥 추억의 맛이다. 다른 커피 전문점에서는 볼 수 없으니 더욱 정겨운 맛인지도 모르겠다.


맛은... 둘 다 너무 강하다. 원조냉커피는 너무 달고 불량주스도 달고 시다. 얼음이 어느 정도 녹아야 겨우 정상의 맛으로 돌아온다. 그런 고로 줄까지 서서 다시 먹게 될 맛은 아니다.


푸근한 백 선생님. 하지만 집밥 선생이 소개한 음식을 딱히 먹고 싶진 않다. '훌륭한 사업가'라고 평하신 황교익 샘의 말이 정확한 듯. 그래도 사업가이면서 밉지 않으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설정

트랙백

댓글

옛날 맛이 그리울때... 여의도 [성심집]

맛보기 2015.07.02 18:29

여의도에서도 제일 오래된 아파트로 손꼽히는 시범아파트 상가는 옛 정취가 살아 있는 곳이다. 아파트 상가이면서도 시장 느낌이 난다. 한쪽에 식당들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통로 한 편으로는 간이로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늘어서 있다. 식당들은 대부분 치킨집이다. 알려진 치킨 브랜드는 다 있다. 여의도 주민들이거나 주변 회사원들이 간단하게 닭튀김에 맥주 한잔 하기에 좋다. 요즘에는 한강 시민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주문이 몰려 꾸준히 손님들이 몰리는 곳이다. 


치킨집들이 줄줄이 서있는 곳 끝에 삼십년 된 선술집이 있다. [성심집]. 한 곳에서 삼십년이 됐다고 한다. 메뉴는 순대와 머릿고기, 술국, 감자탕이다. 





식당 안에도 4-5 자리가 있고 밖에도 그쯤 앉을 만한 테이블이 있다. 단골들이 주로 오고 술 좋아하는 남자 손님이 대부분이다. 


예전엔 돼지 머릿고기가 흔했다. 새우젓에 찍어 먹는 돼지 편육도 많이 먹었다. 언제 부턴가 먹을 것이 많아지면서 머릿고기 파는 곳을 찾기 어려워졌다. 


모듬 안주를 시키면 순대, 찹쌀순대, 머릿고기, 편육이 나온다. 찜기처럼 물을 붓고 채반을 얹어서 휴대용 가스렌지에 얹어 준다. 식지 않게 데워 먹을 수 있도록. 


맛? 먹을 것이 풍부한 시대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모르겠다. 내게는 옛날 맛도 나고, 기본적으로 돼지고기를 삶아 새우젓에 찍어 먹는 맛이 있다. 술 한잔 곁들이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맛이다. 술국도 함께 시켜 국물과 같이 먹으면 좋다. 


무엇보다 한자리에서 삼십년 된 식당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기본을 지킨 다는 뜻일 테니까. 

설정

트랙백

댓글

동해 피문어와 조개찜의 조화

맛보기 2015.06.29 16:18

여의도 빌딩촌. 매일 저녁,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술판을 벌이는 여의도에서 살아 남으려면 일단 가성비의 경쟁력을 갖춰야한다. 회식이든 접대이든 혹은 고단한 노동에 대한 보상이든 맛도 좋으면서 값도 크게 부담 없는 곳을 찾으니 말이다 (접대의 경우에는 좀 다르겠지만). 

'e문어 세상'은 증권사들이 모여있는 초입, 홍우 빌딩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6시 반을 넘기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술집이다. 메인 메뉴는 식당 이름에 나와있는 것처럼 문어. 동해안 피문어를 취급한다는게 주인장의 자랑거리다. 문어는, 경험상 남해안 돌문어 들보다 동해안 피문어가 맛있다. 이 집은 특히 문어의 퀄리티는 최고다. (그래 봐야 겨우 두 번 먹어본 경험이니 감안해서 들으시길). 푸짐하기로는 조개찜이 최고 (왼쪽 사진). 


쫄깃하고 담백한 문어와 보는 것 만으로도 푸짐하게 배가 부른 조개찜 정도면 대 여섯 명이 즐겁게,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어느 날 밤 늦게 출출해서 뭐 좀 먹어볼까... 하고 마실 겸 나갔다가 이 곳을 발견했다. 그 땐 이미 저녁도 먹은 후라 문어 작은 거 한 마리에 소주 한 잔 마셨다. 문어가 너무 맛있어서 그 다음 친구들과 모임 때 다시 찾았을 정도. 밤 늦은 시각, 조금 한산해져 그 곳 사장님과 술잔 나누다가 알게 된 몇 가지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어릴 적 친구들끼리 (약간의 좌절 상황에서) 강원도 삼척을 찾았다가 그 곳에서 문어를 먹게 됐고 문어 파시는 분과 친해져서 결국은 지금 식당까지 차리게 됐다고 한다. 원래는 마포점을 냈고 여의도는 두 번째로 문을 연 곳. 재료가 좋고 성실하게 손님을 대하니 식당은 잘 운영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친구들끼리 마음  맞춰하고 있다는 점이 좋아 보였다. 


식당 이름이 좀 뜬금없었다. 'e 문어 세상'이라니.... 모바일 시대에 왜 'e'를 붙였을까 생각했지만 그도 이유가 있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들이 모두 가수 이문세씨의 왕 팬이었다. 'e 문어 세상 = 이문세'. 그래서인지 식당에 이문세씨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다. 메뉴판도 '가로수 그늘 아래 해천탕', '광화문 연포탕' 그런 식이다. 생뚱맞은 조합인 것은 맞지만, 뭐 어떤가. 나  좋아하는 식당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이름 좀 써도 되지... 


여의도에서 유쾌하게 한 잔 할 때 추천하고 싶은 집이다. 하지만 조용한 분위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 


e 문어세상. 여의도 홍우빌딩 1층. 02-761-1765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동 |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78
도움말 Daum 지도

설정

트랙백

댓글

Buttertoffee 커피와의 만남

맛보기 2015.06.27 15:47

커피는 내 오랜 취미이다. 


사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커피를 마셨다. 그 땐 물론 인스턴트 커피에 설탕과 '프림'을 듬뿍 넣어 마셨다. 대학교 때부터 직장인이 되는 동안 맛없는 자판기 커피가 잠시 쉬어가는 순간의 친구가 되었다. 


커피는 기호품이기도 했지만 '여유로운 삶'의 상징과도 같았다. 직장인 시절, 결혼 후 집안 일과 회사일을 동시에 하느라 숨이 턱에 막힐 때 동병상련의 여자 선배들과 늘 '커피 향에 배인 일상'을 꿈꾸곤 했다. 


그 일상은 이런 것이었다. 아침에 커피 내리는 향을 맡으며 청소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커튼이 기분 좋게 들썩이는 것을 바라보며 예쁜 잔에 커피 한 잔 따라서 마신다. 커피 마시는 동안 여유롭게 하루를 계획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는, 그런 반짝 반짝 빛나는 일상이었다. 물론 그런 것은 현실에는 없었다. 평생 한 번쯤 아침에 여유 있게 커피를 내렸을 지언정 그 날은 아마도 추워서 창문을 열어놓지 못했거나, 창을 열어 살랑거리는 바람이 들어올 정도의 기분 좋은 날씨 였다면 계절에 맞는 커튼을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상이 늘 호떡집 불난 듯이 투닥 거려도 늘 커피는 내 곁에 있었다. 이전처럼 자판기 커피를 자주 마시지 않게 되었고 에스프레소 머신이 만들어낸 '아메리카노'를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 변했다. 물론 핸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가끔씩  누리기도한다.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맛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커피 맛을 미세하게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래 마시니 커피는 다 좋았다. 가끔씩 인스턴트 믹스 커피가 그리울 때도 있을 만큼 정선이 빠진 싼 맛에도 정이 들었다. 굳이 하나 꼽으라면 '하와이언 코나' 커피를 좋아하지만 흔하지도 않고 너무 비싸기도 해서 어쩌다 기회 닿을 때 한 잔씩 마시는 것으로 만족한다. 


내가 꼭 한 가지 커피를 고집하던 때가 있었다. 2002년 LA에서 유학할 때였다. 워낙 커피 종류가 많은 그 곳에서 약간 향이 첨가된 커피를 마셔 보았는데 너무 좋았다. Buttertoffee 커피. Don Francisco 회사에서 만든 것이었는데 캔에 들은 커피를 사서 커피메이커에 내려서 마셨다.


 4년 내내 집에서는 주로 이 커피만 마셨는데, 서울에서는 찾기 어려운 향이었다. 유학 생활을 접고 서울에 돌아올 때 몇 캔 사와서 먹었고 2008년 우리 남편이 LA로 잠시 나가서 일을 하게 되자 다시 사서 나르며 이 커피를 마셨다. 2011년 돌아올 때 여러 캔을 사가지고 와서 냉동실에 두고 마셨다. 간혹 그 후로도 미국 갈 일이 있으면 몇 개씩 사다 날랐다. 이제 마지막 캔을 땄다. 




이제 이 것을 비우면 그냥 다른 커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서운했다. 벌써 십 년도 넘었으니... 어느 덧 습관이 되었나 보다. 


이제 세월이 좋아졌다. 아마존닷컴에서 직구를 하면 된다. 오늘 벌써 아마존에 들어가서 카트에 넣어 두었다. 조만간 직구 해서 몇 통 냉동실에 넣어두면 된다.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고집하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그런 것 같다. 커피 하나도 익숙한 것, 습관이 된 것을 벗어나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커피 정도이니 그냥 벗어나지 않고 습관에 따라도 어떠랴 싶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해 숨이 찰 것 같은 시대에, 그냥 변함없는 내 것 하나쯤.. 괜찮지 싶다. 








설정

트랙백

댓글

새우마늘구이와 레몬소주

맛보기 2015.06.26 16:23

금요일이다. 주말을 맞는 기쁨이 가장 큰 순간이다. 퇴근무렵부터 '불금'을 외치는 SNS 친구들의 함성이 몰려온다. 나도 빠질 순 없다. 이번 주, 특히나 힘들고 고단했다. 그렇다고 맛집 검색해가며 다닐 기운도 없다. 좀 조용하게, 오붓하게, 그러나 '우아'함도 잃지 않으며 나만의 불금을 즐길 방법은 없을까? 


어떤 경우에도 불금엔 맛난 것을 먹는 게 최고다. 그렇다고 요리하느라 기운 빼는 건 노! 노! 


새우를 샀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장을 보면 가장 좋겠지만, 멀고 번거롭다면 그냥 마트에서 사도 된다. 흰다리새우, 그리 크지 않은 것 8~10마리만으로도 너끈히 피곤한 불금을 즐겁게 해줄 '새우마늘구이' 한 접시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새우마늘구이 레시피


준비물 : 새우 (너무 크지 않은 것도 충분히 맛있다) 10마리, 통마늘 (요즘 마늘이 맛있다), 올리브유 조금, 모양내기 위한 파슬리 가루 조금 (없어도 아무 문제없다)


만드는 법

① 팬을 달군 후 올리브 오일을 적당히 두르고 통마늘을 넣어 볶는다. 

② 새우는 껍질을 벗겨 손질해둔다. 새우 머리를 좋아한다면 따로 떼어서 준비한다. 

③ 1번에서 통마늘이 적당히 노릇하게 익어갈 때 새우를 넣고 익을 때까지 함께 볶는다. 

④ 만약 새우 머리를 따로 준비한 경우 다른 팬에서 볶아서 3번에 마지막에 넣어 합친다.

⑤ 접시에 예쁘게 담고 파슬리를 뿌려 장식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위의 '만드는 법'대로 하면 이런 비주얼이 나온다. (파슬리 가루는 깜박 잊고 넣지 않았다)




불금에 긴장을 풀어줄 술 한 잔이 빠질 수 없지. 요즘 과즙 소주가 유행이라던데 달게 모양만 낸 그런 거 말고 레몬을 직접 썰어서 만든 레몬소즈를 곁들였다.




이제, 일주일을 정리하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때! 그래야 다음주에도 열심히 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설정

트랙백

댓글

구슬 아이스크림과 서비스 패키징

생각하기 2015.06.24 16:01

외근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료가 구슬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우리 둘째가 어렸을때 구슬 아이스크림을 워낙 좋아했던 지라 구슬 아이스크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예전엔 구슬 아이스크림은 마트나 백화점에서 직접 담아주는 식으로만 팔았다. 포장된 형태로 스푼까지 용기에 담아서 편의점 등에서 팔게 됐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제품을 만날 수 있게 된 셈이다.





입안에서 구르고 터지며 여러 맛을 내는 구슬 아이스크림이 '상품'이라면 그것을 대량 유통할 수 있도록 용기를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은 '서비스'. 상품이 본질이라면 서비스는 본질을 싸고 있는 포장이다. 본질이 좋아야 잘 팔리는게 당연한 이치겠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포장이 중요해진 것도 사실이다.  


상품을 포장할 때 종종 기술을 활용하기도 한다. 포장을 넓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본다면 제품에 대해 알리고 SNS 채널을 통해 확산하는 것도 광범위하게는 여기에 속한다. 인터넷 시대이다 보니 상품에 대해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 하는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웹이라든지 앱이라든지 검색어라든지, 그 모든 것들도 기술이라고 분류할 수 있다. 요즘 O2O (Online to Offline)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넓게 보면 이것도 커뮤니케이션이고 포장이다.  O2O의 기본은 오프라인 활동에 앞서 미리 웹이나 앱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고, 예약하고, 결제하는 등 온라인 활동을 연결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본질'을 좀 더 잘 알게하고 관심갖게 하고 소비하게 하는 '포장/커뮤니케이션'으로 온라인이 역할한다. 앞으로 더욱 활용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영역이다


어쩌다보니 나도 O2O에 한걸음을 디뎠다. 지난 4월 중순부터 시작한 '미친물고기' 서비스가 바로 그것. 개념은 이렇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질 좋은 회(상품)를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메뉴개발, SNS 채널을 통한 홍보, 주문/결제 기능 갖는 모바일 앱 개발 (서비스)등으로 고객 층을 대폭 늘린다는 것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수산물 도매시장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이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덕에 서울 시민들은 바다에서 먼 곳이면서도 싱싱한 생선회와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1971년부터 현재 그 자리에 위치해있어 서울을 찾는 사람들에게 관광지 역할도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주 찾아서 단골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맛있는 회를 고르는 것은 조금 불편한 일이다. 시장을 둘러보는 재미는 있겠지만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을 비집고 속이지 않고 싱싱한 회를 파는 곳을 골라내야 한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십년 넘은 단골이 있는 나는 가끔 친구들에게 단골집을 소개하곤 했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좋은 회를 파는 것에 익숙해있는 단골집 사장님은 조근 조근 설명을 바라는 친구에겐 무뚝뚝하게 비춰졌을 테고 단돈 천원이라도 깍아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들에게는 별로 잘해주는 것 없는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었다


나는 노량진 수산시장을 이용할 때 '품질 좋은 제철 생선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다. 나의 십년 단골 사장님이 '품질좋은 생선회'라는 상품을 담당하고 여기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편리하게'라는 서비스를 덧붙여 많은 사람들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을 때 단골집을 이용하도록 하고 싶었다.


'미친물고기' 를 아이디어에서 시작해서 서비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물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초입부터도 평평하진 않았단 뜻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재래시장의 본질을 아직도 간직한 곳이다. '디지털'의 영역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수산시장에서 일하는 판매상인들은 새벽 한 시부터 이어지는 경매에 참석해서 소비자들과 만날 상품을 준비하고 아침 먹고 서비스에 필요한 물품들을 정리하고 점심 먹고 잠시 3-4시까지 여유를 갖는다. 이 시간에 보통 쪽잠을 자기도 한다. 5시 정도 부터는 본격적으로 손님들이 많아지는 시간. 9시 정도까지 정신없이 지낸다. 정리하고 하루를 마치면 또 새벽 경매부터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별도로 메뉴를 정리하지도 않고 판매고를 엑셀로 정리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스마트폰이 디지털 기기의 핵심. 전화,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수산시장에서 판매하는 품목도 날 것 그대로의 생선, 혹은 해산물. 뭔가 규격화하고 매뉴얼화 하기가 어려운 품목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은 '광어회 한마리'로 인식하지만 한마리라도 양도 다르고 맛도 다르고 당연히 가격도 다르다. 시세가 1Kg 기준으로 정해지지만 보통 사람들은 광어 한마리가 1kg인지 2Kg인지 알지 못한다. 광어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저울에 재고 가격을 치러도 뼈와 내장을 발라낸 생선회는 얼마나 양이 나오는지 그것도 가늠하기 어렵다


미친물고기라는 서비스를 만들어 기존에 광어, 도미 등 '한마리' 당으로 주문하던 것을 모듬회 방식으로 판매를 하자니 A 메뉴에는 광어가 몇 그램 도미가 몇 그램 들어가는지 정해진 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모듬회 한접시 얼마라는 정해진 '상품'으로 의미가 있고 그런 인식을 소비자에게 주는 것이 '서비스' 이니 말이다


시험삼아 몇 번을 주문해서 먹어 보았다. 솔직히 주문할 때마다 조금씩 양도 다르고 생선의 품질도 미세하게 차이가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수산시장의 판매상인들이 저울에 재서 판매하지 않는데다 생선이라는 것이 어느 날은 씨알이 굵어지기도 하고 작기도 하여 차이를 보였다


어렵사리 모듬메뉴를 구성하고 여러차례 테스트를 거쳐 '규격화' 해나가고 있다. 아직도 물론 갈 길은 멀다. 소비자들에게 더 편한 메뉴로 구성하고 쌈채소나 매운탕 양념도 곁들여 배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포장' 요소가 너무나 많다


근사하게 포장되어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게 된 구슬 아이스크림처럼 노량진 수산시장의 맛난 생선회도 서비스 패키지를 좀 더 가다듬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구슬 아이스크림 알갱이 만큼이나 미친물고기 서비스로 가다듬어야 할 요소들이 많은 것 같아, 아이스크림이 결코 달지 않았다

 

설정

트랙백

댓글

비긴 어게인 (Begin Again)이 제시한 새로운 컨텐트 성공 공식

맛보기 2014.09.20 19:55

토요일 아침, '여의도 CGV  프리미엄관에서 영화보기'는 내가 주말을 보내는 가장 편안한 시간 중 하나다. 다리 쭈욱 뻗고 의자에 눕듯이 앉아서 빵 한조각과 커피 마시면서 큰 화면 영화보기라니... 자유롭고, 편안하고,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 




비긴 어게인 (2014)

Begin Again 
8.8
감독
존 카니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애덤 리바인, 헤일리 스타인펠드, 제임스 코덴
정보
로맨스/멜로 | 미국 | 104 분 | 2014-08-13



이번 주말, 호사를 누리며 본 영화는 '비긴 어게인(Begin Again)'. 음악영화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원스'의 감독이 만든 작품이라는 것 만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이 영화는 8월 13일에 개봉한 이후 입소문을 타며 꾸준히 관람객 수가 늘고 있다. 9월 19일 기준으로 2백만을 넘어섰다. 





영화는 잔잔하게 재밌다. 자신의 세계를 중시하며 음악활동을 하는 그레타와 화려한 스타 시스템안에서 만들어지고 기획되는 음악 세계를 경험하는 그의 남자친구 데이브. 그레타는 데이브가 대형 음반사와 계약을 하게 되자 그와 함께 뉴욕에 오지만 곧 스타가 된 남친은 변심을 하고 그녀를 떠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연히 술집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 곳에서 또 다른 절망적인 삶을 이어오고 있는 음반 제작자 댄을 만난다. 

댄과 함께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노래하고, 작은 성공을 거두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그레타 자신을 포함해서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삶을 '다시 시작 (Begin Again)'할 기회를 얻어 가는 과정이 감동을 준다. 거기에 노래까지 곁들여졌으니...  아는 사람 중에는 노래가 너무 좋아 영화를 세 번이나 봤다는 이가 있을 정도로, 잔잔하지만 힘있는 감동이 전해지는 영화다. 



일종의 직업병일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가 제시하는 새로운 컨텐트 성공의 공식을 읽을 수 있었다. 


#01_ 서로 다른 컨텐트 방식의 통합 (Integration)


이제까지 음악은 레코딩을 통해 음반 형태로 구매해서 들었다. 물론 최근에는 인터넷 기반의 다운로드나 스트리밍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영화는 종합 예술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스토리 기반의 영상으로 소비했다. 그런데 갈수록 영상과 음악, 스토리가 통합되어서 소비되고 있는 추세다. 첫 부분에 데이브가 유명 음반사와 계약을 하게 된 것도 영화음악 작업을 통해서였다. 그레타가 음반을 만들어서 댄이 있었던 제작사와 미팅을 하는 자리에서 사울은 '영화 음악'에 넣을 수 있을 것같다며 음악의 성공을 얘기했다. 


물론 새로운 발견은 아니다. 이미 영화나 드라마 삽입곡이 대중과 만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으며 노래를 발표할 때도 뮤직 비디오 제작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별도의 작업이었던 녹음과정과 공연을 통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였다. 처음에 사울이 데모 CD 제작비를 지원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댄은 뉴욕을 돌면서 길거리 공연하는 자리에서 녹음을 하자고 제안한다. 센트럴 파크 거리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빌딩 옥상에서, 지하철에서, 슬럼가에서, 뉴욕의 일상을  배경삼아 녹음을 했다. 



#02_ 소비자의 인게이지먼트 (Engagement)


녹음 현장과 공연을 합치다 보니 그 즉석에서 현장의 참여가 음악에 자연스레 녹아 들었다. 길거리에서 소음을 내던 아이들도 화음을 맡게 되고 지나가던 자전거 차임 벨소리도 배경음악이 됐다. 사실 밴드 구성원들도 전문 세션맨들이 아니었다. '비발디' 연습에 지친 첼로, 바이올린 연주자들, 발레 배우는 아이들 반주하던 지루한 일상을 깨고 나온 피아노, 어색한 아빠와의 화해의 한 걸음으로 기타를 들게 되는 딸까지, 소박한 보통 사람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시켰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지. 이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소셜스러운' 영화라고 생각했다. 



#03_ 컨텐트 산업의 동력은 기술 (Tech)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기술의 진보다. 녹음실이 아니어도 음반으로 만들 수 있는 정도의 가용한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녹음 녹화 기술이 너무나 발달되어 있어서 일반 사람들도 누구나 (누구나는 아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영화를 만들고 노트북 만으로 라디오 방송을 할 수 있는 시장이 됐다. 


기술의 발전은 앞으로 훨씬 더 진보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컨텐트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 그런 점에서 '기술'의 활용이 컨텐트 산업의 한 축을 맡게 될 것이라는 것은 전망이 아니라 현재의 서술이다.  



#04_ 기획력 vs. 진정성 (Sincerity) 


그래서 더더욱, 컨텐트에서는 진정성이 중요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영화를 통해 얻은 내 나름대로의 결론이다. 음반산업이나 영화나 기획사들의 시스템, 거대자본과 함께 하는 제작 배급 체계가 산업을 움직여 왔다. 물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런 흐름이 붕괴되지는 않을 것같다. 하지만, 기획력이 아니라 진정성이 컨텐트의 핵심이라는 건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아야할 것같다. '기획'으로 만들어진 스타들이 단명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으니까. 중요한 것은 훌륭한 원석의 자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기획'에 기대서 원석의 빛을 바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레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신이 만든 노래 'Lost Stars'를 데이브에게 선물했다. 그 노래를 유명 음반사에서 제작한 앨범을 들으며 그레타는 너무 배경이 화려해져서 음악이 빛을 잃었다(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고 대략 이런 의미로)고 말한다. "이 노래는 목소리가 좀 더 강조돼야 하는 노래 아니었어?"라고 반문한다. 


너무 화려한 화장은 원래 얼굴이 가진 소박한 미소와 표정을 가리기 쉽다는 것 - 컨텐트의 힘은 진정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설정

트랙백

댓글

[생각읽기 15] 죽을 만큼 웃긴가? - 이동엽

책읽기 2014.08.01 15:19

문을 열고 이상한 공간에 들어섰다


평범한  차림의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는데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았다.  흔히  연예인들은  광채가  난다고  하지만,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오가는  사람들은  광채라는  미끈한  단어로는  표현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었다.  스치고  지나면서도  씩씩하게  안녕하십니까?’를  외치는  그  눈  빛에서,  그  웃음에서,  그  표정에서  활기찬  에너지가  전해졌다.  벽에  걸린  현수막에는 죽을 만큼 웃긴가?’  라고  적혀  있다.  죽을  만큼  웃기기  위해  모두가  땀을  흘리는  공간,  바로  SBS  개그  프로그램  웃찾사 (웃음을 찾는 사람들)’  대본  연습실이었다.



                        <웃찾사 대본 연습실에 걸려있는 현수막>


웃찾사의  대표  코너라  할  수  있는  누명의  추억을  이끌고  있는  이동엽씨를  만났다.  동그란  안경의  주인공은  상당히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개그맨으로  데뷔한지  십년  가까이  되는  웃찾사의  터주대감이다.


요즘은  동네  꼬마들이  저를 보면  출렁~ 출렁!’,  ‘넘실~ 넘실!’ 하고  누명의  추억에  나오는  대사로  반겨  줍니다.  웃찾사의 인기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죠.”


그는  개그  프로그램은  초등학생이  기억을  하느냐로  인기  여부가  판가름  난다며  웃찾사의  상승세를  자랑했다.



       <2012년 다시 부활한 웃찾사> 


웃찾사는  한  때 (2003/2004)  시청률  30%에  육박할  만큼  인기를  끌었던  SBS의  간판급  오락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가  이런  저런  악재들이  겹쳐  대박 코너없이  몇 년이  지났고,  시청률이  계속  떨어졌다.  시청률이  떨어지니  방송  시간대를 바꾸기  시작하고,  방송시간이  오락  가락  하니  더  사람들이  안보게  되는  악순환이  겹쳤다.  급기야  2010년부터  2년간은  방송이  폐지되는  고난의  시간도  겪었다.  2012년  다시  부활해서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 번  죽었던  프로그램,  금요일 밤  11시대의  편성, ‘개그 콘서트 (개콘)’ 라는  막강한  경쟁 상대 첩첩산중,  난제들이  쌓인  가운데  힘겹게  재출발한  웃찾사는  최근  들어  조금씩  시청률을  높이며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


요즘 들어  주변에서  웃찾사  방청권을  구해 달라는 지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웃찾사  언제하는지도  몰랐고, 심지어  다시  부활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조금씩  변화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 번  추락한  경험이  있어서  인지  상승세를  맞는  웃찾사 팀의  활기  속에는  '죽을 만큼 웃긴가?'라고 물을 만큼 비장함도  섞여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얻어 내는  일.  어떻게  웃음  거리를  찾는지  물었다.





아이디어  회의를  하지만,  사실상  일상이  모두  소재가  될  수가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개그의  촉각을  세워  두어야  합니다.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순간에  소재를  찾아  성공한  사례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죠.”


누명을  쓰고  무인도나  산  속에  숨어  사는  남자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누명의 추억’  코너의  탄생도  사실  첫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아이디어  회의를  하려고  모였는데  막내  후배가  한  시간  정도  늦게  나타났다.  그  후배는  너무나  민망했는지  90도로  고개를  숙이고는  여러  번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이동엽씨는  늦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야단도  치지  않고  넘어  갔는데,  주변에서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던졌다고 했다.


동엽이가 후배를 잡는군!”


너무 그렇게 애들 기합주지 말아라..”


사소한  일이었지만  자신이  누명을  쓰고  변명을  하는  과정에서  누명의 추억’  코너의  기본  얼개가  아이디어로  나왔다.  누명 쓴  얘기를  말로만  풀어내다  보니  너무  단조로워  출렁, 출렁’,  ‘넘실 넘실’  등의  의태어를  넣어  귀에  쏙쏙  박히는  효과를  만들어  냈다.





그가  일상의  순간  순간도  놓치지  않으며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것은  지금  하는  일이  어렵게  찾은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원래  이과생이었습니다.  기계공학과를  나왔죠.  취직하기  쉬운  과를  택하라는  부모님의  바램  대로  대학진학을  했지만,  결국  무대를  버릴  수는  없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그는  장기자랑의  스타였다.  대학  때도  전공과는  상관없는  연극  동아리  활동에  열중 했다.  하지만 틈틈이 무대에 섰던  이십  대 중반까지도  그는  늘  진로를  고민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큰  돈을  벌지  못해도  평생  이  일을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스물  아홉 살까지  한  달에  백만  원  만  벌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램이었습니다.”


그런  간절함을  놓지  않으니  절로  길은  찾아 졌다.  이제  남은  숙제는  장수하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다.


갈수록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사람들의  웃음을  끄집어  내는  게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  코너가  인기를 끌면  1, 2년은  무난하게  유지됐는데,  요즘은  1년  채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유행어  하나에  마음 껏  웃어주거나  넘어지는  장면  하나로  쉽게  웃어주는  시청자들은  이제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  익숙함  속에서도  뭔가  색다른  것을  전달해야  살아  남을  수  있어서  매일  매일을  공부하고  고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제  소원은  평생   이  일을  하는  겁니다.  한  십년  후에도  이렇게  제  프로그램에  대해서,  연기에  대해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십  년쯤이면  하고  있는  일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져서  시들해지기도  하건만,  자신이  하는  일에  지치지  않는 애정을  갖는 그가 멋져 보였다. 부러웠다. 

 

 

 

설정

트랙백

댓글

2014년 장마비 내리는 날의 일기

생각하기 2014.07.24 23:38

오늘은  어쩐지  일기를  쓰고  싶어지는  날이다. 


색깔다른  일들이  내  하루를  채웠고,  나는  오늘도  혼란 스러웠고,  선택을  했으며  아쉬움을  느꼈고,  배부를  만큼  음식을  먹었다.  그래도  다행 스러운 것은  많이  배운  하루였다. 


* 결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극성을  떠는  엄마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요즘  주목받고  있는  자사고에  아들을  보낸  학부모가  됐다. 공부  죽어라  안하는  둘째가  공부  죽어라  시킨다는  자사고에  가고  싶다고  해서  그냥  입시 원서  제출해준  것밖에  없었지만.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교육감이  당선되고  자사고  폐지에  대한  얘기가  뉴스에  오르내려도  나는  그냥  크게  나와  관계  없는  일로  여겼다. 


그런데  며칠전 부터  카톡  그룹  메시지가  바쁘게  울렸다.  내일  자사고  학부모  시위가  예정된  모양이었다.  아들을  자사고에  보냈고, 나름대로  아이의  학교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엄마  입장에서는  시위  참석은  못해도  마음으로  라도  응원을  보내는  것이 맞을  테지만  난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솔직히  자사고  폐지가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면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어떻든  나는  우리  아이가  자사고를 간  것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런  이율배반을  처음으로  눈 앞에서  마주한  것이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  끝에,  어쨌든  학교에서  학생들을  점수로  줄세우는  일은  그만  했으면  한다는  오랜  내  믿음을  다시  발견해냈다.  그러나  세상일이,  현실  앞에  닥친  문제에서는  결론  내기가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 봉숭아에  명반을  넣고  찧어  봉숭아  물을  들였다.  보통  남자들이  '아들'을  낳으면  목욕탕에  함께  가서  아들이  등밀어주는  호사를  누리고  싶어하는  것이  '아빠의 로망'이라면   딸을  낳아  봉숭아  물을  함께 들이고  싶다는  것이  나의  로망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난  쓸쓸히  내  발톱에  봉숭아를 얹었다. 덕분에  적은  양으로  이틀  연속  물을  들일  수  있겠다. 


어렸을  적부터  대학교까지  손과  발에  봉숭아  물을  들이곤  했다.  그  땐  언니들과  함께  였다.  결혼하면서  부터는  이런  것을  잊고  지냈는데,  다시  봉숭아  물을  들이기  시작한지  3년 째이다.  


아주  어렸을  때  틈틈이  우리  자매를  길러  주시던  큰이모를  우리는  '00(지명) 엄마'라고  불렀다.  6.25 때  혼자  되신  이모는  슬하에  자식이  없으셔서  우리 세자매를  딸처럼  여기셨다.  그러던  이모가  3년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는  정성껏  상을  치렀다.  장례를  치르던  날  절에서  봉숭아를  따다가  물을  들였다.  그  후  이모님  제사때마다  봉숭아  물을  들이게  됐다.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  기억하며  뭔가를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언제나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주는  것같다.  


* 오늘은  공부를  많이  한  날이다.  오후에  '혁신'에  관한  강의를  들었고  저녁에는  도시락  먹으며  디지털  미디어에서  CMS의  의미에  대해  공부했다.  혁신은  '일상적이지  않은  것'과  통한다.  물론  모든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혁신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생각과  관점의  변화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지.  그런  의미에서  '절박함에서  혁신이  나온다'는  말이  와  닿는다.  CMS는  디지털  미디어에서는  '혁신'으로  가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같은데,  국내  미디어들에서는  그  절박함을  못느끼는  듯하다.  아,  그리  본다면  혁신을  하려면  공부가  필요한  것같다.  모르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을 테니...



횡설수설을  접고  내일  하루도  최선을  다해야  겠다.  매일  출퇴근  길에  손석희  앵커의  뉴스9을  들으니  이런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들어간 것'은  나온다. 


  



설정

트랙백

댓글

블라디보스톡 여행기

맛보기 2014.07.18 17:02

지난  주말  블라디보스톡,  크라스키노  (블라디보스톡에서  남쪽으로  약 2시간  내려간  곳)  여행을  다녀왔다.  러시아는  처음  가  본  것이었고,  우연한  기회에  친구 따라  강남  간’  여행이었기에  여행지에  대한  예습은  전혀  없었고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일상을  떠난  다는  설레임이  있었을 뿐.

 

그런데  역시  여행은  견문을  넓히는  정말  좋은  방법인  듯하다.  이제까지  멀게만  생각했던  도시,  나라에 대한  거리가  한결  가까워진  것  같다.  기억에서  잊혀지기  전에  이번  여행에서  배운  점,  느낀  점을  정리  해본다.



(블라디보스톡 혁명광장)

 

러시아와 가까워지기


닥터  지바고차이코프스키,  톨스토이,  체조 선수,  고르바쵸프  대통령이  내가  러시아와  연결  짓는  단어들이었다. (물론 그밖에도 몇가지 더 있겠지만…)  뉴스나  영화,  책등  미디어를  통해서나  접할  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별로  없었다.  여행지로  유럽을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을  테지만,  특별히  러시아를  선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러시아를  가고  싶다면  모스크바나  세인트  피터스  버그를  먼저  떠올리겠지…)  어쨌든  러시아는  심정적으로  먼  나라이다.


그런데  연해주  지역은  한반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블라디보스톡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특히  블라디보스톡은  우리  역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도시다.  한일합방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무식한  나는  안중근  의사의  주  활동지가  중국이라고  생각했으나,  안중근  의사는  1907년부터  블라디보스토크를  근거지로  의병을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벌여왔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1909년  2월  7일에는  뜻을  같이  하는  11명의  동지들과  단지동맹을  맺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칠  것을  다짐했는데  이번  여행  중에  크라스키노에서  단지동맹비에  헌화하고  묵념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안중근 의사의  수인이  새겨진  비석 앞에  서는  순간,  숙연해지면서  동시에  시간을  돌려  역사의  현장에  섰던  것 마냥 말 할 수  없는  친밀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냥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인물이지만,  비석  앞에  선  순간,  그  분들의  조국  독립의  염원과  의지가 마음으로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크라스키노의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


블라디보스톡은  결코  화려한  도시는  아니다.  가장  날씨가  좋은  때인  7월에도  선선한  바람이  분다.  하지만,  소박한  속에서도  기백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대개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밥을  먹을  때,  한  사람씩  일어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건배를  제안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한 순배가 돌면,  다시  한  사람씩 이번에는  시를  읊으며  건배하는  순서로  이어진다.  대단한  주량과  말 솜씨가  필요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그  곳의  총영사님께  블라디보스톡에  대한  소개를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블라디보스톡은  2012 APEC 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이  도시의  가치를  재평가  받고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앞으로  10,  20년  안에  블라디보스톡의  날씨가  한반도  기후  정도로  바뀐다고  하니이  도시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같다.

 

농업에 대한 공부


이번  여행  기간중  유니베라의  농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땅에  씨를  뿌려  거두고,  그것을  가공하고,  다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농업  기반의  산업군에  대해서는  전혀  무외한  이었는데  조금은  상식을  채울  수  있는 기회였다.



(크라스키노 인근의 유니베라 농장. 밀크 시슬(엉겅퀴)을 재배하여 건강보조제의 원료로 이용.)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버추얼/사이버  세상을  향하던  내  시선이  땅에  머물  수  있는  좋은  계기였던  것  같다.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하는  업의  속성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이  먹을수록  땅이  좋아지고  자연이  익숙해진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늘  시골이  낯설고  불편했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  들어서는  아파트  보다는  불편하더라도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흙과 나무가  있는  곳이  좋아진다. (이러다가 말년에 귀농하는 건 아닐지…)

 

북한땅을 보다


토요일에는  크라스키노에서  버스로  두시간쯤  달려  국경지역인  하싼을  가게  됐다.  그  곳은  북한과 러시아,  중국 세  나라가  마주  보는  곳이다.  두만강이  보이는 국경지역에서  바라  본  북한  땅의  모습은,  늘  보던  우리  땅과  너무나  비슷했다.  익숙한  곳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낯설음이라니



(러시아 국경지대)

 


, 이제 여행은 끝났다. 사진만 남았다. 사진을 보며 그 때의 느낌을 추억하는 것만이… (사진 펼쳐 보실분은 More를 눌러주세요!)


사진 펼쳐보기


설정

트랙백

댓글

[생각읽기 14] 압구정 크리스의 갬블링 어드벤처 (Gambling Adventure) – 노상범

책읽기 2014.07.07 20:22

십년 전쯤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올인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워낙 주옥 같은 명 장면들이 많지만, 역시 주인공 김인하 (이병헌분)가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세계 포커대회에 참석해 마지막 베팅에 올인하며 우승하는 모습을 빼놓을 수가 없다. (드라마 제목이 올인이니…)  포커 게임의 룰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긴박한 순간에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칩을 밀어 넣으며 올인의 승부수를 띄우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하다.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대리만족을 주어서 일까? 도박을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 만화 등등)는 언제나 인기를 모은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포커나 고스톱 등의 도박은 어쩌다 명절에 한번씩 녹슨 베팅 감을 되살리는 정도의 게임일 뿐이니 도박사는 작품에서나 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서, ‘멀쩡한’ (평범하다는 의미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 가운데 프로 갬블러의 쪼는 맛이 어떤 것인지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이브레인 컨설팅의 노상범 대표가 그 주인공. 그는 한때 홍익인터넷이라는 잘나가는 에이전시를 설립했던 경력도 있고 현재는 OKJSP라는 개발자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그의 경력에는 압구정 크리스로 이름을 날렸던 도박사의 그것도 포함돼있다.



                  (하우스의 플레이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압구정 크리스')


본격적으로 포커판에 자주 드나들게 됐던 건 2005 12월 부터였는데, 다음 해 1월까지 언더 하우스를 돌아 다니며 40전 전승을 기록하기도 했었죠. 그 당시 약 한달 간 4천만원 정도를 따기도 했습니다. 압구정, 로데오 일대의 하우스에서는 크리스에게 걸리면 털린다는 말이 유행했죠


그의 주 종목은 텍사스 홀덤 (Texas Hold’em)’으로 현재 포커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다. 텍사스 홀덤은 각 플레이어가 2장의 카드를 들고 (pocket card) 테이블에 깔려있는 5장의 공유 카드 (community card)와 합쳐 총 7장의 카드 중에서 나올 수 있는 최상의 족보로 승패를 가른다. 자신의 패를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조합을 잘 고려해야 하는 고도의 두뇌 게임이다.


그가 처음 텍사스 홀덤 게임을 배우게 된 것은, 미국에서 였다. 86, 대학교 2학년때 가족이 함께 이민을 갔으나 사정이 바뀌어 혼자만 남게 됐다. 91 1월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실연의 아픔을 달래지 못해 폐인생활(본인의 표현으로)’ 을 하다가 룸메이트를 따라 카지노를 가게 됐던 것. LA 인근 커머스 카지노(Commerce Casino)에 드나 들며 텍사스 홀덤 게임을 처음으로 익히게 됐다. 초보에게 승리는 녹녹치 않았다. 세번에 한 번 꼴로 돈을 따면서 재미 삼아포커를 쳤다.


그러다가 94년 귀국을 했고 그 후 십년 정도는 포커를 잊고 살았다. 97년 홍익인터넷을 설립해, 열심히 사업도 했었고, 실패하는 아픔도 겪었다. 2005년 후배가 홀덤 게임을 개발한다고 해서 텍사스 홀덤의 룰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홀덤과의 재회를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강남역 부근의 카지노 바에서 재미 삼아 홀덤을 치게 됐어요. 그 당시 압구정동 일대에 언더 하우스가 우후죽순 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하우스에 가끔씩 들르기는 했었는데 그 해 말에는 우연히 회사의 직원이 모두 파견 근무를 가게 되고 부인도 아이들과 필리핀에 가게 되어 몇 달동안 혼자 지내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하우스 죽돌이가 된 거죠.”


이 때 그는 40전 전승을 올리기도 했고 한 달에 4, 5천만원을 따기도 했다.


정말 기세 좋게 판돈을 쓸어 담을 때였는데 한 번은 타짜에게 걸려 하루 밤에 천팔백만원을 잃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돈을 따는 것도, 잃는 것도 쉬운 곳이 바로 포커판이니까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림으로도 짐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40전 전승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당시는 텍사스 홀덤이 (국내에)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게임의 룰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LA에서 카지노를 드나들며 게임을 해 본 경험이 도움이 됐던 거죠. 게다가 자꾸 치니까 실력도 늘더라구요.”


압구정 크리스는 실력이 없이는 홀덤 게임에서 돈을 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흔히 운이 좋아서 원하는 카드가 들어와야 게임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포커 게임의 승패는 ‘베팅 실력이 좌우한다는 설명이다.


카드의 흐름을 보고 상대의 패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카드의 패가 펼쳐지면서 상대가 어떻게 베팅을 하는지, 상대의 스타일이 어떤지 아주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판단을 아주 짧은 시간에 내려야 하는 것이죠!”


게임을 하다 보면 참여한 사람들의 스타일이 드러나게 된다. 흔히 좋은 패인지 나쁜 패인지를 표정을 통해 읽을 수 없도록 포커 페이스 (Poker Face)’를 가져야 이길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자신의 스타일을 예측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상대가 자신에 대해 블러핑 (좋지 않은 카드를 가지고 배팅을 크게 해서 이기려 하는 속임수)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믿게 한 후 오히려 좋은 패를 가지고 승부를 건다든지, 다른 사람의 허를 찌를 수 있어야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다. 이렇게 포커 게임은 한 두 판으로 결정이 나는 것이 아니라 2-3 시간 동안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승부를 거는 드라마라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언더) 하우스에서 돈을 따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두 배 정도는 실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하우스에 주는 커미션이 정상적인 카지노의 다섯에서 열 배는 높았기 때문에 그런 커미션을 제외하고도 돈을 따기 위해서는 비등한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죠.”


결국 매일 저녁, 화려하지만 실속 없는 돈의 잔치를 계속하다가 그는 20066, 돌연 하우스 은퇴선언을 했다.


어느 순간 돈이 돈 같지가 않았습니다. 머리 써서 하는 카드 게임도 지겨워 졌죠. 함께 판돈을 놓고 겨루는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어요.”


다시, 하우스를 끊고 땀 흘려 하는 사업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직원들 월급 줄 돈이 떨어져 하우스를 다시 찾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하우스에서 딴 돈으로 급여를 지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세계적인 플레이어 마이크 킴 (Mike Kim)을 만나 이번에는 갬블 사업을 함께 하게 됐다.



(한때 사업 파트너였던 마이크 김의 포커 대결 영상)


2007 7월 워커힐 호텔 카지노 테이블 6개를 임대해 외국인 대상 포커룸을 운영하기도 했고 필리핀 마닐라로 무대를 옮겨 포커룸 사업도 했다. 아시아 최초의 토너먼트 대회인 아시안 포커 대회의 지분을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2009년 여름까지 도박을 사업으로 하다가 그만뒀다.


그만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당시 한국에 아이폰이 판매되고 SNS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는데 언제까지 일확천금의 신기루를 쫓아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것인지깊이 고민하다 보니 저절로 답이 찾아 지더군요.”


갬블러이기도 했고 도박을 사업으로도 해보았지만 가장 신물이 났던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었다. 포커는 기본적으로 블러핑이 존재하고 남을 속여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게임 테이블이 아닌 곳에서도 서로를 속이고 돈을 마음대로 쓰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게 싫어서 어느 순간 떠날 생각을 했고, 떠나서도 미련은 남지 않았다.


포커 플레이어로 오래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평소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합니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돈 관리를 잘해야 하고 체력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하죠. 저 같은 경우에는 도박을 사업으로 하다 보니 포커 게임에 대한 진지함은 오히려 약해졌던 것 같습니다.”


미련은 없지만 간혹 영화 주인공처럼 올인을 외치던 때의 흥분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느낌은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첫사랑의 설레임 같은 것이리라.

 

설정

트랙백

댓글

요즘 뜨는 영화 감상평

맛보기 2014.07.06 11:55

주말동안  극심한  목감기와  몸살에  항복하고  (등산은  엄두도  못내고)  집에서  뒹글링하다  보니  지금  극장가에서  예매 순위  1~4까지의  영화를  다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  언제  내가  이렇게  영화와  친해진건지.... 어쨌든  감기의  우울함을  달래려  써보는  인기 영화에  대한  내 맘대로의  감상이다. 


네  편의  영화를  한마디로  평가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트랜스포머'를 보려면 '끝까지 간다'는 굳은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에지 오브 투모로우'를 선택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자,  그럼  하나씩  나눠서  얘기해 보자.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2014)

Transformers: Age of Extinction 
6.8
감독
마이클 베이
출연
마크 월버그, 니콜라 펠츠, 잭 레이너, 스탠리 투치, 켈시 그래머
정보
SF | 미국 | 164 분 | 2014-06-25


우선,  나는  트랜스포머  매니아가  아니다.  매니아는  커녕,  비록  SF  장르를  좋아하지만,  이런  허무맹랑한  만화  같은  얘기라니...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  당연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우리집  남자들이  모두  트랜스포머  팬이어서,  어쩔  수없이  따라간  영화.  솔직히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다.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하는  장면이  쪼금  멋지기는  했는데  그것도  너무  자주 보니까,  아무런  감흥도  없고,  텍사스 - 시카고  -  중국  등으로  무대를  바꿔  가며  거의  비슷한  싸움을  계속  하는데... 아,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영화  끝나고  감상평을  물으니 우리  아들은  '개재미있었다!'고  답했다.   멀고  먼  세대와  취향의  차이! 




끝까지 간다 (2014)

A Hard Day 
8.6
감독
김성훈
출연
이선균, 조진웅, 신정근, 정만식, 신동미
정보
범죄, 액션 | 한국 | 111 분 | 2014-05-29

 

영화가  대단한  메시지와  감동을  전하지  않아도,  영화  보는  동안  나를  온전히  붙들어  놓아도,  그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딴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영화다.  때로는  긴장감으로,  때로는  웃음으로,  혹은  극적  반전의  놀라움으로! 


내  기억에는  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만  각인 되어  남아있던  이선균의  껄렁하고,  터프한  액션도  신선했고  뿌리깊은 나무에서 무휼로 등장했던  조진웅의  리얼한  악역도  멋졌다.  하지만, 딱히 내용이 남는 것 없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 (2014)

Edge of Tomorrow 
8.2
감독
더그 라이만
출연
톰 크루즈, 에밀리 블런트, 빌 팩스톤, 샬롯 라일리, 제레미 피븐
정보
액션, SF | 미국 | 113 분 | 2014-06-04


3D 영화를  보는  것이  숙제인  남편  따라  순전히  덤으로  본  영화.  그렇게라도  따라  나섰던  건  순전히  톰  크루즈 때문이었다. 


미래  외계인의  침공으로  어려워진  지구에서는  전세계적인  연합군을  꾸리고  외계인을  물리치기 위한  대규모  작전을  구상한다.  이  작전  때문에  영국으로  건너간 빌 케이지. 그는  군입대를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지,  실제로는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인물이지만  그의  뺀들거리는  모습이  보기  싫었던  사령관(정확한  직책은  모르겠지만)이  장교였던  그를  강등시켜  전쟁에  나가게 한다.  첫번째  전투에서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피를  뒤집어  쓴  후  그는  죽으면  삶이  리셋  되어  다시  참전 때로  돌아오는  마법에  걸린다. 


죽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설정은, 아,  정말  우리네  삶과  같다.  삶의  고통과  암울함이  그나마  죽으면  사라질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건만,  윤회의  굴레를  떨치지  못하는.... 너무  심각하게  비약할  필요는  없지만,  재미있는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많은  평론가들은  혹평을  했지만,  난  친구 따라  나선  쇼핑에서  의외의  득템을  한  것처럼  무척  재밌게 봤다. 강추! 




신의 한 수 (2014)

7.5
감독
조범구
출연
정우성, 이범수, 안성기, 김인권, 이시영
정보
범죄, 액션 | 한국 | 118 분 | 2014-07-03


정우성은  명품  배우다.  한  번도  열렬히  정우성을  좋아한  적은  없지만,  늘  명품이라고  생각해 왔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정우성의  액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값이  아깝지는  않다.  악역  이범수의  연기도  좋았고,  노신사  안성기의  매력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여주인공이라기에는  존재감이  없었지만  이시영은  예뻤다. 


흥행 요소로는  매력도가  낮은  바둑을  소재로  했다지만,  이  부분을  잘  살리지는  못한  것같다.  바둑을  모르는  내게도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고,  바둑을  조금  아는  사람도  소재를  잘  살리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보다  이  영화는  너무  피가  많다.  꼭  그렇게  잔인할  필요가  있는지.  목소리를  크게  한다고  뜻을  더  잘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그  부분이  가장  아쉽다. 



사실은  '그녀(Her)'를  보고  싶었는데,  상영관이  얼마  없어  못보고  있다.  보고  싶은  영화  보다  배급사가  추천해주는  영화를  봐야  하는  이런  구조는  맘에  안든다. 

 






설정

트랙백

댓글

진국 남도의 맛 - 남도제철맛집

맛보기 2014.07.04 17:34

세상을  먹는  낙으로  살아가는  사람중  하나다.  '맛집'이라면  일부러  시간내서  찾아  다닌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특히  해산물류를  좋아한다.  음식이  맛있으면  그만이지만,  못지  않게  분위기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분위기는  그  식당의  주인장의  믿음과  생각(굳이 '철학'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쓰지는  않겠지만)을  담고  있다.  꼭  의리짱한  인테리어가   아니어도  간판에서 부터,  식기에서 부터, 음식을  내놓는  것, 하다 못해  화장실에  걸려  있는  화장지와  수건까지도  모두  그  식당과  주인장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서론이  길었지만,  얼마전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흑산도  홍어' 만을  취급한다는  남도  음식점을  알게 됐다. 참  촌스러운  곳이다.  4인 식탁  기준으로  6개  남짓 있는  작은  실내  공간은  분식집이라고 해도  믿겠고,  삼겹살  집이라고  해도  믿을  것같다.  하지만  주인장을  만나는  순간  부터  이 집의  특징인  '진국'의  남도  맛을  볼  수 있다. 



                             (9호선 선유도역 1번출구 옆 한신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남도제철맛집')


이  집의  주인장은  흑산도  홍어만을  취급하며  소금이며,  고추가루며,  마늘이며  모두  최상급만을  고집한다.  적지  않은  금액을  받는  홍어를  팔면서  다른  식재료를  싼  것을  쓰면  맛과  손님의  믿음을 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식당에  들어서자  마자  주방으로  안내  한다. (겉으로  보아서는  역시  크게  자랑할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주방이다)  주방에는  도마가  40개가  있다고  한다.  생선용,  고기용,  야채용  등을  구분해서  쓰고 늘 햇빛에  말려서  쓴다는 것.  칼도 마찬가지다.  


위생과  좋은  재료를  고집하는  만큼  사실  밑반찬도  모두  맛있다.  목포에서  공수해  온다는  묵은지는 '제대로'이고  참나물,  파김치,  뜨거운  밥에  얹어  먹는 갈치젓까지. 물론 '흑산도  홍어' 점이니  홍어가  제일  맛있다!



        

사진  왼쪽에서  보이는  것처럼  흑산도  홍어는  바코드를  붙여  유통된다고  했다.  흑산도 산이라는  증명.  오른쪽은  삭히지  않은  홍어회.  삭히지 않아도  홍어  특유의 쏴~한  느낌은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먹어  봤던  홍어에  비해  훨씬  세련된  맛이  난다. (아,  맛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구나... )


홍어를  먹고  있자니  주인장이  합석을  했다.  처음엔  식당에서  쓰는  재료들을  엄선하고  있음을  자랑하다가  (손님이  우리  테이블 밖에 없었으므로)  아예 합석을 해서  한잔  나눴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홍어의  맛을  더하는 것같았다. 흥이  나니  이어서  홍어  코와  구섬치 (아가미 부위)를 내어 오셨다. (아래 사진 왼쪽이 홍어 코, 오른쪽이 구섬치)



소고기에만 '특수 부위'가  있는  줄  알았지,  홍어에도  특수  부위의  맛이  오묘한지는  처음  알았다.  홍어  코는,  뭐랄까  좀  더  삭힌  맛이 났고  구섬치는  홍어의  일반적인  맛과  달리  쫄깃한  식감이  좋았다. 


겉으로는  아주  평범한  식당이지만  좋은  재료를  고집하는  주인장의  믿음으로  좋은  식당이  만들어  진  것 같다.  촌스러워서  더욱  정겨운  식당 -  자주  가지는  않아도  오래도록  가게  될  것같다. 










설정

트랙백

댓글

아이폰에서 G3로 이사하기

맛보기 2014.07.02 12:02

2009년 아이폰 3G를 쓰게 된 이후 부터 꾸준히 한눈 팔지 않고 아이폰 사용자로 남아 있었다. 그동안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더 커진 화면에, 노트 기능에 대단해 보이는 폰들을 선보였지만 정말 한번도 그런 것에 혹해 본 적은 없었다. 내가 기술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름 디지털 기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것 저것 써 본 경험으로는, 아직은 (앞으로 몇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안드로이드 어떤 폰 보다도 아이폰이 성능, 디자인, 기타 등등 면에서 더 낫다는 나만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전 아이폰5가 간혹 수신 벨이 울리지 않고 끊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시작됐지만, 결코 안드로이드 쪽으로 옮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동안 애플이 보여준 수 많은 '와우(WOW)'의 순간을 기억하며  조용히 아이폰6를 기다리는 '으~리'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LG전자에서 새로나온 G3 폰을 써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일단 '아이폰6가 나올때까지 시험삼아' 써보자는 나름대로의 명분을 스스로에게 전하며 G3의 손을 잡고 안드로이드국으로 이사를 했다. (마치 남친이 군대에 제대할 때까지, 옆에서 챙겨주는 삼돌이와 밥도 먹고 영화도 본 들 무슨 문제야... 라는 심정이 아닐까.. -_-)


아이폰에서 G3로 옮겨가는 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OS가 달라지면서 여러가지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다시 익혀야 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안드로이드가 더 편한 기능도 있고 더 불편한 기능도 있어서 적응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4년 이상 쓰던 OS를 바꾸어 적응하는 과정은, 마치 캘리포니아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한 것같은 느낌이었다 (좀 이상한 비유지만, 내가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자, 그렇다면 G3 로 바꾸어 좋은 점은 무엇인가.  



+ 세련된 디자인 

내가 구글을 열심히 쓰면서도 그닥 그 브랜드에 열광하지 않는 이유는 '디자인'이 매력적이지 않아서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갤럭시폰에 눈도 돌리지 않았던 것도, 뭔가 배려심이 부족한 듯한 디자인 때문이었다. G3는 그런 면에서 디자인이 깔끔하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갤럭시와 비교해 보았는데 그립감도 좋고 가볍다. 바탕화면의 폴더 디자인도 맘에 든다. 디지틀 기기도 무조건 이뻐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 취향에 딱 맞는다.


+ 압도적인 카메라 성능

누군가 LG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카메라를 만들었다'라고 농담하던데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기능은 단연 카메라이다. 광고에는 레이저로 초점을 맞추고 어쩌고 하던데 그건 잘 모르겠고 어두운 곳에서도 밝게 잡아내는 힘은 확실히 있다. 게다가 '매직 포커스' 모드는 사진을 찍어서 원하는 포인트로 초점을 바꿀 수가 있다. 특히 휴대전화로 접사를 찍을때 초점을 정확히 맞추기 어렵고 초점 이외 부분을 아웃포커스 하는 기능이 떨어져서 대부분 앱으로 '흐리게 하기(Blur)' 처리를 했었는데 G3로 찍으면 이런 걱정이 깔끔하게 해결된다. 이미 카메라 기능이 좋다는 것을 알고 썼는데도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사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고민할 필요 없겠다. 



          (G3로 실내에서 찍은 사진)


(북한산 사모바위)


+ '안드로이드 온리' 앱을 쓰는 즐거움

그동안 아이폰을 쓰면서 불편했던 것중에 하나가 안드로이드에만 있는 앱들을 써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마치, LA에서는 신선한 회를 즐기기 어렵다거나, 팍 삭힌 홍어를 맛보기 힘들다거나 하는 것과 비슷하다 (역시 이상한 비유일테지만.. -_-). 이번에 안드로이드국으로 이사를 와서 요즘 대세라는 쏠메일과 쏠캘린더를 써봤는데 아주 맘에 들었다. 


지난번 서울디지털포럼에서 SKT 위의석 본부장님 발표를 듣고 T전화 한번 꼭 써보고 싶었는데, 그 바램도 이룰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T전화가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덧붙임: 이 글을 쓴 이후에 T전화 기능을 하나, 둘씩 익히게 되었는데 완전 좋다! 우선, '1566'으로 시작하는 스팸성 전화가 오는데 '00캐피탈' 전화임이 화면에 뜬다. 물론 받지 않았다. 전화기능과 연동된 연락처에 그룹 분류 기능도 좋고 연락처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를 찾을 수도 있다. 예를들어 '버거킹'이라고 치면 내 위치에서 가까운 버거킹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나온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다. 


- 너무 크다

첫번째, 내 손이 작은 것이지만 내게 네게 너무 크다. 항상 평균에 수렴하는 제품 개발 때문일까, 최근들어 스마트폰 화면이 모두 커지고 있는데 나는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아이폰이 그립다. 


 

- 보안에 대한 우려 

다른 앱들은 모두 깔았는데 모바일에서 사용하던 금융업무 관련 앱들은 안드로이드국으로 옮기지 않았다. 어짜피 인터넷 자체가 해킹에 노출되어 살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아직 안드로이드 앱의 보안성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를지도 모른다. 이제 겨우 삼일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인상은 "괜찮다!". 써니 캘리포니아가 그리워 돌아가게 될지, 이곳에 머물러 살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설정

트랙백

댓글

[생각읽기 13] 잉여로운 남자의 '조기 은퇴' 이야기 - 이형열

책읽기 2014.06.27 18:32

내가 페이스북에서 친구 맺고 있는 1,600여명 가운데 가장 잉여로운 사람이 있다. 그는 기술의 흐름에 관심을 갖고 과학의 대중화에 대한 글을 쓰며 클래식,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미술작품 감상을 즐긴다. 틈 나는 대로 트레킹을 하며 커피와 와인 등 기호 식품에 대한 식견도 수준 이상이다. 북적대는 서울에 비하면 모든 것이 여유로운 동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고양이를 기르며 살고 있다.


1999년 로스앤젤리스(LA)에서 알라딘 USA 설립부터 함께 하다가 일년 반전에 조기 은퇴를 선언한, 자유로운 잉여족이형열씨를 만났다. (이형열씨는 지난 4월부터 약 두 달간의 일정으로 서울에 머물고 있다)  사실 그에게 인터뷰를 청한 것은, 우리 마음 속의 로망이기도 한 한국을 떠나 살기조기 은퇴의 비법에 대해 듣고 싶어서 였다. 그러나 두 시간 여 얘기를 나눈 후에 든 생각은 그는 한국에서 함께 살고 있으며 조기 은퇴라는 형식을 빌어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운동권의 낭인으로 살았던 이십대


지금 오십대 중반기로 접어드는 사람들이 다 그랬겠지만, 저의 이십대는 사회의 변혁기에 민주화라는 설익은 사명감을 품고 낭인처럼 떠돌던 시기였습니다.”


1979년 서울대에 입학한 그는 80 5월 광주 민주화 사태가 벌어지고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공장에서 일을 했다. 어떤 조직적인 활동이었다기 보다는 겨울방학 때 러시아 혁명사를 읽고 난 후 민중들의 삶에 가까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후에는 언더 써클(지하조직)’ 학림의 조직원으로 세미나를 조직하고 정세 분석 등 활동을 했다. 곧 운동권에 대한 대대적인 수배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도망자 신세가 그리 고달프지만은 않았다. 지인들의 자취방을 전전하다 입주과외 (사실 이것도 불법이었지만) 자리를 소개 받아 나름 등 따시고 배부르게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두 명씩 친구나 선배들이 도망 중에 붙잡혀 군대를 가게 됐고, 그 역시도 입대(82)도바리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그러나 그의 방랑 생활은 입대로 마무리 되지는 않았다. 그가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기 까지는 그로부터 6년여의 세월이 더 걸렸다.


제게는 민주화 운동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세계관에 끌렸던 것이고, 뭔가 새로운 것을 조직해서 만들어 나가는 일이 나를 활기차게 만들었습니다.”


학교 보다는 바깥 세상에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많아서 일까. 그는 제대 후에도 택시를 몰며 운수 노조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택시기사로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분신했던 박종만 열사의 미망인과 추모 사업회 활동도 했다.


88 6.10 항쟁 이후 노동 현장에서 나온 그는 그 동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스스로 반성을 하면서 88년 가을에 3학년 1학기로 복학을 했다. 90년 여름에 졸업하기 까지 그렇게 그의 대학 생활은, 청춘을 불사르며 세상의 곳곳을 몸으로 부딪쳤던 경험까지를 포함해서, 십년 넘게 지속되었다.

 

서른 즈음에컴퓨터에 빠지다


88년 늦깎이 학생으로 복학한 후 6개월은 공부에 매진하며 열심히 학생으로 충실한 삶을 살았다. 대학원 진학원도 생각했다. 그런데 세미나 발제용으로 PC를 산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16비트 AT 컴퓨터를 산 이후 컴퓨터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더욱 더 깊이 빠져 드는 늪과 같았다.


대학원 시험 공부를 할 때 였죠. 집에 있으면 컴퓨터 앞에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다 보니 집을 떠나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자고 결심을 했어요. 그랬더니 공부하다가 지루해지면 부근의 동방서적에 가서 어느새 컴퓨터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렇게 도저히 컴퓨터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드디어, 대학원까지 포기하고 컴퓨터의 길을 택하게 됐다.

그가 컴퓨터에 빠지게 된 것은 사소한 사고로부터 시작됐다. 컴퓨터를 사고 얼마 되지 않아서 무엇을 잘 못 만졌는지 컴퓨터가 포맷이 됐다. 까만 화면에 커서만 깜박거릴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화면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무거운 본체를 들고 용산을 오고 가기를 몇 번씩 했다. 그랬더니 (귀찮았던지) 용산 컴퓨터 상가에서 OS를 다시 까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복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받쳐주니 겁날 것이 없었다. 급기야는 컴퓨터를 조립하는 수준에 까지 이르게 됐다.


그 당시 글쓰는 사람들도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컴퓨터를 잘 모르니까 자꾸 제게 물어왔습니다. 어떤 것을 사야 하냐는 조언부터 들어 드리다가 나중에는 컴퓨터를 만들어 드리는 단계가 됐죠. 인문 쪽에 계신 분들 가운데 제 손을 거친 컴퓨터를 쓰시는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최영미 시인 컴퓨터도 제가 조립해 드렸어요!”


한 두 번 취미로 시작한 것이 본업이 되기 시작했다. 컴퓨터 조립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91년부터는 컴퓨터 강의도 시작했다. 컴퓨터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컴퓨터의 원리를 가르쳐 주는 칼럼을 연재하다가 책도 냈다. “컴퓨터 한 달만 미쳐보자라는 책으로 컴퓨터 도사의 이미지를 굳히게 된 것.


책을 출간하면서 출판사 디딤돌 사장님과 가까워졌고 회사를 합쳐 디딤돌에서 전산실을 만들고 컨설팅, 벤처 투자 하는 일에도 관여하면서 그렇게 다가올 또 다른 운명의 물결에 조금씩 휩싸이고 있었다.

 

도미(渡美)’ 인터넷으로 책나르기


사실 저는 이민을 결심한 적은 없었어요. 그냥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 가게 됐고 그곳이 편하게 느껴졌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열심히 했고, 그렇게 좀 오랫동안 그곳에 살고 있을 뿐이죠.”


한국을 떠나 사는 것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을 했다.


기술의 발전과 그 흐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는 컴덱스 (80, 90년대 컴퓨터 산업의 흐름을 주도했던 전시회), 북 엑스포 등을 열심히 쫓아 다니며 선진문물을 익히는데 주력했다. 미국은, 그에게는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정보의 샘물인 셈이었다. 90년대 이런 저런 기회로 미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왠지 그 곳이 편안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엔 신기한 것이 많았죠. 라스베가스 호텔들의 인테리어나 장식들, 각 호텔마다 벌이는 쇼들은 새로운 경험을 던져 주었던 것같습니다. 비단 라스베가스 뿐 아니죠. 아무 서점에 들어가서 잡지만 펼쳐도 폰트의 비주얼도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얕은 지식을 가지고 우려 먹으며 산다는 생각이 들던 즈음이어서, 무언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연히 회사가 투자한 회사(미국 현지법인)에 머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6개월 정도 후에 MBA 공부를 해볼까 고민하던 차에 한국에서는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그 때 접고 서울로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그냥 그곳에 머물렀다. 꼭 그곳에서 살겠다는 뜻은 없었다. 다만 그는 어느 거리에나 재즈가 흐르고 갤러리가 가까이에 있는 곳, 와인을 상대적으로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곳이 그저 좋았다. 무엇보다 나이를 따지지 않고 상대를 존중해주는 사람들의 인식도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요인 이었다고 회상했다.


MBA 대신 MCSE (Microsoft Certificated System Engineer) 자격증을 따서 사설 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 사업의 기회를 만나게 됐다.


운동권 동지로 알게 된 조유식씨(인터넷 서점 알라딘 창업자)가 98년 미국에 머물면서 아마존과 같은 인터넷 서점을 만들겠다고 해서 아이디어를 보태다가 사업 파트너로 참여하게 됐다. 한국 알라딘 설립(99 7)에 이어 그해 12, LA에서 알라딘 USA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한인 커뮤니티에 인터넷 서점은 정말 요긴한 서비스였다. 재미 한인의 수는 210만명 (2010/외교통상부)을 넘어서는데 주요 도시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소규모 서점으로는 이들의 한국 책에 대한 다양한 수요를 맞출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근처에 서점에 가도 볼 책이 없고, 볼 책이 없다 보니 책을 읽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던 시기였다.


사업의 핵심은 미국 전역에 흩어진 한인 교포나 유학생들에게 알라딘USA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었다.


인터넷을 쓰면서 책에 대한 수요가 가장 많은 층을 공략했습니다. 바로 학교 였습니다. 야후 디렉토리 서비스에서 미국 전역의 주요 대학 리스트를 만들고 각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단과 별로 한국인들의 성, (Kim), (Lee), (Park), 이런 식으로 검색을 해서 약 4만명의 DB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에게 알라딘USA를 소개하는 이메일을 보냈죠.”


노가다이메일 마케팅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알라딘USA에서 책을 사본 사용자들에게 감사 편지도 많이 받았다. 한 사용자는 오랜만에 소설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며 장문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초기 3년간은 투자 비용이 커서 적자를 기록했지만 점차 사용자가 확보되고 재방문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그 이후 10년은 지속적인 흑자를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책을 통해 교포들이 다시 한국과의 끈을 잇게 됐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보니 알라딘USA는 본질은 문화 사업인데 너무 물류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서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부터 지속적으로 서부에 네 곳, 동부에 세 곳에 알라딘 서점을 냈죠.”


그는 오프라인 서점을 여는 일에 직접 나섰다. 일곱 개의 서점을 내고 나니 서서히 지치기도 했고 일의 재미도 줄었다.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기 시작한 때가 이 무렵이었다.

 

조기은퇴는 다음 여정의 방향을 찾는 과정


“2012 12월 말로 하던 일을 그만 두었는데 저를 잘 아는 선배가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 그럴 때도 되었지.. 십 년 주기로 삶을 포맷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지!’ 그 전까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말 같았습니다!”


알라딘USA에서 손을 떼고는 다른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 그는 조기 은퇴라고 자신의 상태를 표현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앞으로 꽤 많이 남은 후반부 인생의 방향을 찾는 과정이라고 읽힌다. 그런 범상치 않은 결정을 하게 된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뭔가 새로운 흐름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 생활이 전면적으로 디지털화되면서 모바일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고는 아이폰4가 출시될 때는 일부러 새벽부터 줄을 서는 부지런도 떨어 보았다. 거대한 모바일 생태계가 분명 세상의 변화의 한 축인 것만은 틀림 없었지만, 그게 전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80년대 후반처럼 무조건 기술의 트렌드에 몰입할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내 이십 대를 바쳐 민주화를 위해 나름 노력했고, 또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기도 했는데 이명박 정부 이후 한국 지배 세력은 너무나 속물화 되고, 일반 대중들은 살기 힘들어 지는 등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었죠.”


이런 정신적인 좌절이 그의 인생의 향방을 (모바일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술의 흐름에 집중할 수없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미국에 거주했지만 인터넷 서점 사업을 하면서, 한국에서 유행하는 책의 흐름을 뒤 쫓으며 살았다. 책의 흐름은, 사회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한국 사회의 변화를 그대로 느끼며 생활 했던 여파였는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내가 알아왔던 민주화, 사회를 보는 시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알라딘 USA 이후 서둘러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고 조기 은퇴를 선언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겠죠.”


조기 은퇴를 선언하고 그가 시작한 것은 공부였다.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우주에 대해서, 평소 자신이 관심있었던 자연과학에 대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해외 석학들의 책을 읽다 보니 레퍼런스로 거론된 책을 다시 찾게 되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이 생겼다. 1년에 약 100여권을 읽으며, 페이스북을 통해 생각을 나누며 그렇게 그는 다음 여정의 방향을 찾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사람들이 제게 조기 은퇴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고, 생계를 꾸리기 위한 것이 첫번째 이지만, 일 이외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 남성들은 지위에 대한 편향을 버릴 수가 없어서 나이 들어 일을 그만두고 노바디(nobody)’로 돌아가는 것을 못견뎌 하죠.”


그는 노바디의 불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덕분에 그냥 알고 싶은 것을 탐구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이 혼란의 시대에 한국 정치가 주는 절망감에 대해, 적어도 상식적인 민주 시민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지키면서,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있다.


*이형열씨 페이스북 바로가기 

 

 

 

설정

트랙백

댓글

매디슨 애비뉴(Madison Avenue)가 변화한다.

생각하기 2014.06.24 15:23

전통미디어의 영향력이 급격히 쇠하고 그 자리를 소셜 미디어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 소셜의 시대에 광고 산업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광고 산업의 변화는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는 주제이다.


지난주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신지웅 교수님(프로필 페이지 링크)의 소셜 시대의 광고 산업의 변화를 주제로 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일부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정리할 기회가 되었다. 강의 중 일부를 정리해봤다. 정리 내용은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에 일부 내용은 강의와 다를 수도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광고산업이 직면한 문제들


광고산업은 크게 보아 두가지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실제 광고 대행사의 업무는 더 상세하게 구분되지만 크게 보자면 두가지라는 의미). 한가지는 브랜드 메시지를 소비자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한 광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티브의 파트와 매체 집행 파티. 그런데 이 두 파트 모두 소셜 시대에서는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왜냐하면,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대중 미디어의 영향력이 무너지고 개인 미디어가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미디어 믹스 전략이 어렵다) 대중 매체를 활용해서 대량으로 브랜드 메시지를 확산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모든 소비자 미디어에 광고를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전략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제 매스 미디어 시대처럼 기업(브랜드)가 메시지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전달하기는 어려운 구조가 되었으니 소비자들이 직접 소비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이 부분은 소비자들에게 이야기 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일방적인 브랜드 메시지 보다 소비자들이 관심 있어 할만한 이야기 거리를 발굴해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다시 말하면 인게이지 (Engage)’ 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스토리텔링이 강조되는 것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인 입소문이 실제 매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사례로도 증명된 일이지만 아직까지 미국 기업들의 온라인 광고에서 소셜 미디어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도표 참조) 그 이유를 신지웅 교수님은 세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는 광고집행을 결정하는 기업의 의사결정자들이 아직도 매스 미디어에 익숙하고 소셜 미디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미국도 그렇다니..!) 두번째는 광고 효과 측정의 문제이다. 온라인 광고 (주로 배너광고와 검색광고)에서는 CPM, CPC 등의 광고 효과를 측정하는 수치들이 일반화 되었지만 아직 소셜 미디어 부분에서는 이 부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CPE (Cost Per Engagement) 처럼 참여에 대한 부분을 측정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세번째는 컨트롤 이슈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어떤 미디어를 통해 어떤 메시지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지를 기업에서 결정해 왔다면, 소셜 미디어 상황에서는 원칙적으로 통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소셜 미디어의 매력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서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니 만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만, 소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브랜드(기업)이 전적으로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소비자들은 브랜드가 전적으로 통제하는 메시지는 싫어 하지만, 브랜드와 소통을 원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반응을 보이는 브랜드를 원한다.

 

‘Let them talk about it’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도브 (Dove) 캠페인


이러한 미디어와 소비자의 인식 변화를 마케팅 캠페인에서 가장 잘 실천한 기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도브(Dove)이다. 도브는 유니레버 계열로 비누, 샴푸 등을 판매하는 브랜드다. 도브는 2천년대 초반부터 아름다움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브랜드로 광고 캠페인을 전개했다. 비누의 청결한 이미지, 브랜드의 특장점을 내세우는 대신에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그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내용을 광고로 제작했다. 예를 들어 미모의 모델이 아니라 30, 40대의 일반인 모델이 속옷 차림으로 광고에 등장(Real Beauty) 하기도 했고 아이들에게 자기존중 (Self Esteem)’ 을 찾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젝트를 광고로 제작하기도 했다. 다소 논쟁적인 광고를 광고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수퍼볼 광고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제품의 장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도 도브는 커다란 홍보 효과를 얻었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광고가 나간 이후 방송 뉴스나 투나잇쇼와 같은 토크쇼 진행자들이 도브의 캠페인에 대해 꽤 긴 시간 동안 언급을 하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화제를 삼았다. 이렇게 광고를 통해 제품이 주는 실질적인 이익을 강조하기 보다는 시각을 갖춘 브랜드로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 도브 마케팅 캠페인의 핵심이었다.


(도브의 캠페인 방향은 소셜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지난해에는 ‘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 라는 영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FBI에서 훈련받은 몽타쥬 작가와 실험을 했다. 두 장의 그림을 그리는데 한번은 본인이 직접 설명한 대로 얼굴을 그리고, 또 한번은 다른 사람이 설명해 준 대로 얼굴을 그렸다. 대부분 사람들이 본인의 설명 보다 다른 사람의 설명대로 그린 그림이 훨씬 아름다웠다.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감동을 준 동영상이었다.)



<Dove의 Real Beauty Sketches 캠페인>


이렇게 생각할 거리’, ‘이야기할 것을 던져주어 사람들이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 하도록 하는 것이 소셜 시대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방향이다.

 

유튜브기반의 바이럴 효과, 올드 스파이스


이제는 광고에서 그 어떤 방송매체 보다 유튜브가 중요해진 시대가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타난 재미있는 현상은 일반적인 광고의 구조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매스 미디어 시대에는 주로 빅모델을 써서 30 ~ 1분 내외의 CF를 만들고 이를 몇 개월 동안 방송에 광고를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런 구조가 변화하고 있는 것. 소셜 시대에는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 광고 (동영상)를 올리고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 확산시키는 구조이다. 수없이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고 사람들은 새로운 것, 재미있는 것에 주목한다. 따라서 품질 좋은 한 편을 가지고 몇 개월씩 확산시키는 것 보다는 다소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다양한 영상을 제작해서 유튜브를 통해 확산시키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동영상이 흥미를 모으면 자발적인 패러디 물이 등장하는데 이런 패러디가 바이럴의 성공요소가 된다. 사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를 휩쓸게 된 것도 초기에 수많은 패러디의 힘이었다. 



<Old Spice 광고, 2010>


미국의 남성용 데오도란트 브랜드 올드 스파이스 (Old Spice) 2010‘The Man Your Man Smell Like’라는 시리즈 광고를 선보였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배우 아이제아 무스타파 모델로 다소 재미있는 설정으로 영상을 구상했다. 광고가 등장하자 불과 4개월 만에 유튜브에는 180여건의 패러디 광고가 등장했고 6백만건 이상의 조회수와 22,500 정도의 사용자 댓글이 달릴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빅데이터 기술을 결합한 광고의 실험, Art, Copy & Code


소셜 미디어가 기존 광고의 공식을 깨고 있는 시대, 이제 다음은 어떤 흐름이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신지웅 교수님은 구글이 벌이고 있는 흥미로운 실험 ‘Art, Copy & Code’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rt, Copy & Code는 구글이 지난해 대외적으로 발표한 프로젝트로 예술, 창작의 영역에 기술을 접목 시키는 것이다



<구글의 Art, Copy & Code 프로젝트, 영상보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용자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 개개인의 컨텐스트에 최적화된 광고를 제공하는 것을 실험하고 있다. ‘영상보기 (Watch the film)’를 선택하면 지금 현재 사용자가 있는 장소, 날씨, 시간 등을 반영해서 서로 다른 영상이 보여진다. 아직까지는 몇가지의 데모용 버전을 만들어서 완전한 개인형 광고로 볼 수는 없지만 앞으로 사용자의 성향 분석을 반영한다면 훨씬 더 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광고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이 부분은 비단 광고 뿐 아니라 다른 콘텐츠로 확대 적용도 가능할 것이다. 이제까지는 개념으로만 얘기됐던 부분이 기술과 결합되면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과연, 광고대행사는 위기일까?


, 그렇다면 이렇게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고 대행사는 과연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 신지웅 교수님은 소셜의 시대에는 스토리텔링이 강조 되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콘텐츠 생산자 (Content Creator)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광고대행사의 경우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준비해 간다면 성장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덧붙였다.

 

국내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갈수록 브랜드 자체의 메시지 보다는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강조될 것이라는 흐름.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믿음으로 간직해야 할 것 같다.  




 

설정

트랙백

댓글

[생각읽기 12] 끝없는 성장을 꿈꾸는 ‘노마드 (Nomad) 키드’ - 강경훈

책읽기 2014.06.13 17:25

삼십 대 초반의 남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삶의 터전을 일곱 번이나 바꿨다. 서울에서 태어나 열두살때 미국 텍사스주의 휴스턴으로 유학을 떠났고 다시 캘리포니아 벤츄라로 이사를 했다. 대학 졸업후 홍콩에서 일을 했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는 싱가포르로 옮겨 인시아드 (INSEAD)에서 MBA 과정을 공부했다. 그 곳에서 사업도 했다. 그러다가 몇 달 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앱 기반의 차량 예약 서비스 우버 코리아 (Uber Korea)의 지사장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강경훈 대표를 만났을 때 노마드 키드라는 있지도 않은 두 단어의 조합이 떠오른 것은, 지구촌 곳곳을 옮겨 다니며 생활했던 그의 독특한 이력과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고 성장하고 싶어 하는 그의 눈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곱번의 이동에서 그는 무엇을 배웠는지, 흔치 않은 그의 성장 스토리를 들어보자.


말썽꾸러기 유학생이었던 청소년기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못된 학생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캘리포니아 벤추라에 살 때였는데, 당시 토니 안(HOT), 신혜성 (신화) 등의 뒤를 이어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죠.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면서도 열심히 오디션 쫓아 다니곤 했습니다. 한마디로 철없이 겉 멋만 들었던 거죠.”


그는 1세대 기러기 가족에 속한다. 아버지는 서울에 남아 있고 어머니는 자신의 유학생활을 뒷바라지 했다. 그런데도 공부에 매진하지 못하고 급기야 대학을 가지 않겠다며 부모님께 반항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그래도 그 때 함께 다니던 친구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지지해주며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아무데라도 대학에는 가라고 거의 사정하던 아버지의 말에 반항을 접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막상 대학에 입학을 하니 눈 앞이 깜깜했다. 그저 친구들이 좋아 함께 몰려 다녔을 뿐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은 별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몰려왔다.


대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아버지께서 부르시더니 이제 친구로 지내자고 하셨습니다. 순간, 만감이 교차했죠. 끝까지 아들을 믿어 주신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이제는 내 스스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도 느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변화가 그를 성장시키는 커다란 원동력이 됐다. 심리학 전공을 선택했던 그는 경제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하며 공부에 빠져 들었다. 차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진지하게 고민도 시작했다.


2005년 홍콩에 일자리를 얻게 됐다. J.P 모건 홍콩지점에서 주식 파생상품 관련 업무를 시작한 것. 처음 그가 입사할 때는 열 명 남짓했던 팀이 중국 시장이 성장하면서 1년새 30명까지 늘어났다. 아침 7시반부터 밤 9시까지 집중해야 하는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팀웍이 살아 있어 어려운 시기를 잘 버틸 수 있었다.


주식 파생업무는 숫자를 꼼꼼하게 점검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칫 한 두 곳에서 숫자가 차이가 나면 그 결과로 크게 손해를 볼 수도 있었죠. 크고 작은 실수도 했지만, 이 때의 경험을 통해 업무처리를 할 때 보고 또 보고 점검하는 습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질적인 욕망은 성장과는 다르다는 자각 


그 이후 모건 스탠리, HSBC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투자 업무까지 다양한 금융 관련 일을 배웠다. 일반 월급쟁이에 비해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노마드의 기질이 발휘된 것일까, 그는 뭔가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금융 쪽에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돈을 많이 법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버는 만큼 물질에 대한 욕망도 커진다는 것을 느꼈죠. 돈을 더 많이 벌면 더 좋은 차를 사고 싶어 하고, 더 큰 집을 원하고, 요트를 사고 싶어 하고,… 뭐 그런 식이었죠.”


좋은 자동차나 큰 집을 마다할 사람은 없겠지만, 얻고 싶은 것이 더 큰 집, 더 좋은 자동차, , 비행기로 발전하는 생활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가 선택한 다음 행선지는 공부였다. 마침 아들이 태어나, 공부를 하면서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많이 갖자는 생각도 했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어린 시절 아이와의 유대감을 쌓는 것이 지속적으로 부모 자식간의 관계 유지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로 터전을 옮겨 인시아드 (INSEAD) MBA 과정에 입학했다. 이 곳에서 자신이 일했던 금융쪽 뿐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배우게 된 것도 좋았지만 가장 큰 공부는 유럽 친구들로부터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 것이었다고 했다.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어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더 집중한다고 할까요? 그 친구들은 생활이 어려워도 공부를 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만약 취업이 안된다고 해도 태평하게 놀면서 배우는게 있겠지’, 라든지 언젠가는 취업이 되겠지이렇게 느긋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엔 많이 놀랐지만, 이들의 여유 있는 세계관으로부터 배운 것이 많았죠.”


인시아드를 졸업하고 그는 취업 대신 창업을 해보기로 했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강조하는 인시아드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창업에 관심이 많아졌던 것. 사업 아이템은 ‘Modern Korean Dining (현대적 감각의 한국 식당)’ 이었다.


싱가포르에 한국 사람들이 2만명 정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 식당도 200개 정도 되죠. 그런데 한국 식당은 대부분 고기집이거나 푸드코트에 있는 캐주얼한 곳들이었어요. 그런데 서울 와서 먹어보면 한국 음식이 다양하고 맛도 좋잖아요. 그래서 품위 있는 공간에서, 맛있는 한국 음식을 전파하고 싶었습니다.”


온실 속 화초에서 야생화로 


결론적으로 그의 식당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새로운 한식 메뉴 개발로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으며 관심을 모았지만 인테리어 등에 돈을 많이 쓰다 보니 고정비용이 지속적으로 부담이 됐다. 결국 일본의 레스토랑 체인인 와카누이(Wakanui)’에 일부 지분을 넘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를 정리한다. 절반의 성공이었던 식당 사업을 통해 그가 얻은 것은, 온실 속 화초에서 야생화로 변신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제 아내는 늘 제게 온실 속에서 곱게 살았다고 얘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식당을 할 때는 아침에 출근해서 새벽까지 식당 일에 매달려 있었고 장보는 것에서부터 식당 운영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보더니, ‘고생을 아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더군요.”


그에게는 고생해 본 경험이 너무 소중했다.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생존 본능을 배웠다고나 할까. 힘들게 살면서 오히려 사는 것의 진정한 을 체득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가장 살아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뜻밖에 대답이 나왔다.


전 로또에 당첨되거나 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없다면 미얀마 같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문명이 덜 발달해서 조금 힘들게 살아야 하는 곳에서 살면 삶의 에너지를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그러나 아직 미얀마로 향할 때는 아니었다. 올해 1월말 식당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두 달 간의 긴 인터뷰 끝에 우버 코리아 지사장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사실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에 대해 더 잘 알게 됐고,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늘 우버 티셔츠를 입고, 누구와 만나도 우버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한번도 안 써보신 분들에게는 해보라고 권유 드리고 써 보신 분들로부터는 소중한 의견을 듣습니다.”


우버는 리무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사 분들의 풀을 확보하고 소비자들이 차량이 필요할 때 모바일 앱을  통해 호출할 수 있게 해주는 차량 예약 서비스. 설립된 지 4년밖에 안됐지만 전세계 114개 도시에서 서비스 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변화가 많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그에게 활기를 준다고 했다.


(관련 글: 우버 탑승기 http://www.sunblogged.com/556


성장은 마음이 커지는 것


항상 배움과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에게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본인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좌절하지 않고 길을 찾아내는 것이 성장이라고 정의 했다.


마음이 커지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정의였다.

 

 

설정

트랙백

댓글

듀오링고로 스페인어 배우기 - 20일 체험기

맛보기 2014.06.11 14:28

살다보면  필요성을  느껴서  의식적으로  하는  일  보다  그냥  우연히,  하게  되는  일이  많다.  그런데  대개  그냥  하게  되는  일은 또  '그냥'  안하게  되기  십상이다. 그  만큼  필요성이  없으니  말이다. 


내게  '스페인어  배우기'는  단  한 번도  to do list에  오른  일이  없었다.  그러니  어쩌다  앱을  깔고  스페인어를  선택한  것은  그야말로  우연히, 그냥 그리 된  일이었다.  그런데  20일째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듀오링고 (DuoLingo) 앱을  켜고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있다.  이건  마치  한때  매일  밥먹고  놀이  삼아  '애니팡'  한 판을  해주던  것과  비슷하다.  별로  공부를  한다는  생각 없이  앱을  켜고  때로는  100문항  이상을  연습하곤 한다.  이제  3주를  계속하다  보니  내가  이렇게  몰입하는  것이  신기해서  몇가지  질문을  던져  보게된다.   





듀오링고는  왜  재미있을까? 


외국어  학습  앱이지만  듀오링고는  공부한다기  보다는  게임하는  기분으로  즐기는  것이다.  언어를  배울  때  먼저  철자와  발음에  대한  기본을  익힌  후에 단어나  어법 (문법) 으로  넘어가는  대신,  철저하게  처음부터  게임을  푸는  식으로  시작한다.  (1)번의  화면에서  연습할  세션을  선택한다.  처음 Basic으로  시작해  한  세션을  모두  풀면  다음  세션이  활성화 되는  그런  식이다.  각 세션을  실행해서  문제를  풀  때  마다  바가 하나씩  채워진다.  틀리면 (3)에 있는 하트가  없어진다.  하트를  모두  사용하면  그  세션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중단해야  한다.  세션이  마무리 되면  팡파레가  울리며  듀오링고 버드의  환호를  받게  된다 (4).  세개의  하트를  모두  지키면서  세션을 마치면 (5)에서처럼 보석을  하나  획득하게  되는데  이 보석을  모아  게임머니  쓰듯이  여러가지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다. (4)번에서 황금빛  깃털  옷과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코스튬은  당연히  기본으로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보석으로  구입한 것! (Yeah~!)   


듀오링고를  부담없이  매일 매일  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한  세션  문제  푸는데  5분 정도만 투자하면 된다는 것. 점심 먹고나서, 혹은  미팅  전후  짜투리  시간을  내어서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커다란  강점이다.  



듀오링고의 숨은 매력은 끝이 없다?! 


듀오링고에서  학습  세션을  마구  지나치다  보면  앞에서  배운  것을  잊어  버리고  다시  새로운  것을  주입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단순히  게임처럼  세션  뚫기 위해  하트  모으는  일에만  매달리면  '공부'의  의미가  사라진다.  이 때 쯤 (2)번 바에 있는 연습하기(Practice) 메뉴에  눈이  가게  된다.  이제까지  배웠던  내용에서  문제가  출제된다.  혼자서  할수도  있지만  로봇과  경쟁할  수도  있고  듀오링고에  연결된  다른  친구들과  겨룰  수도  있다.  그리고  조금  익숙해진  이후에는  번역  프로젝트에  참가해  언어도  익히고  듀오링고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도  열린다. 


이렇게  재미있는  앱이  무료로  제공되는  것에  대해  개발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면  번역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된다.  실제  듀오링고는  사용자들이  저마다  번역한  것을  모아  CNN 등의  기업들로  부터  수익을  낸다고  한다. 



듀오링고로 공부해서 과연 스페인어를 말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  가장  궁금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3주동안  스페인어  공부는  무척  재미있었는데,  그리고  게임을  하는  것  보다는  유익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한달,  두달  이렇게  계속했을 때 스페인어를  말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답을  구하려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꽃할배  순례길  여행이라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닐지... 


 




설정

트랙백

댓글

인생은 정치다!

책읽기 2014.06.10 19:02



인생은 정치다

저자
이종훈 지음
출판사
한스미디어 | 2014-05-30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이 책은 가정 내 정치, 직장 내 정치, 학교 내 정치, 그리고...
가격비교


'정치'라는 단어는 의미는 가치중립적이지만 느낌은 부정적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사회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정치적'이라는 의미는 소신이나 가치를 가지고 일을 처리한다는 느낌 보다는 상황에 맞춰 유리한 쪽으로 짜 맞추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사회 생활을 하면 할수록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정치적'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선은 정치적이라는 의미가 꼭 자신에게 유리한 쪽에 줄을 서서 이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어떻게 그들에게 나를 설득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 필요없이 욕먹을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어떻게 상대가 자발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이런 모든 것이 '정치력'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정치력을 발휘하는데는 대화나 소통과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도 중요하지만 관계의 밑바닥에서 관계의 지형도를 분석하는 나름대로의 계산과 통찰력도 중요할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인데,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꼭 직업으로 정치인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회사에서, 혹은 가정에서, 자식과의 관계 속에서도 정치력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때문에 정치는 우리 모두에게 일상에서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이며 행동이며 선택을 결정짓는 근간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깨달음은 나 스스로는 죽었다 깨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치에 담을 쌓고 살아온 ('나꼼수'를 듣기 전까지 정치 뉴스 조차도 외면했던) 나였기 때문이다. 이런 지혜는 이종훈 박사의 신간 '인생은 정치다'를 통해 얻은 것이다. 


이종훈 박사는 정통으로 정치를 공부한 사람이다.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회 연구관으로 일했으며 정치평론가,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가 '생활 정치'에 눈을 돌렸다. 직업 정치인에게만 정치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다. 


"간혹 선 후배 들 만나 저녁에 소주 한잔 하면서 신세한탄을 들어주곤 합니다. 제가 카운셀링을 잘하죠. 그런데 부부간의 갈등, 회사에서 윗사람 아랫사람과의 껄끄러운 관계에 대해 고민을 듣다 보면 하나 같이 사람 사이의 역학관계, 정치적 지형도를 읽기 못해서 생기는 일이더군요." 


이종훈 박사는 '생활 정치'의 중요성과 이것을 확산하기 위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책의 내용에는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위한 가정내 생활 정치에 대한 것에서 부터 학부모가 알아야할 학교 내 생활정치, 직장인이 알아야 할 회사내 생활정치 등 세 개 편으로 나눠져 있다. 입사의 정치학, 승진의 정치학, 갑의 정치학, 을의 정치학 등 세부 제목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3040 세대에게 필요한 생활정치 필독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특히 여성들이 꼭 눈여겨 보았으면 한다. 의욕도 넘치고 일도 열심히 하고, 능력도 출중하지만, 솔직히 나를 포함해서, 여성들에게 정치력은 좀 부족하지 않은가. 이제까지 '정치적'이라는 게 꼭 파벌을 만들고 줄을 서는 것으로 이해해서 멀리 했다면, 더더욱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정치력에 대한 생각부터 바꾸면서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훨씬 더 편안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맙게도 저자분이 직접 사인한 책을 들고 오셨다!) 





설정

트랙백

댓글

우버(Uber) 탑승기

맛보기 2014.06.05 14:51

새로운  서비스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차량을  호출하는  서비스  우버(Uber)를  써보았다.  우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해서  전세계  곳곳의  도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서비스로  실리콘밸리에서  주목받는  벤처기업이다. 





행선지는  논현동  사무실에서  시청까지.  우버  앱은  이전에  설치해  두었고  사용자  등록도  해둔  상태.  흔히  이용하는  콜택시와  비교해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불편한지  정리를  해보자. 


+ 앱으로 모든 것이 처리 되는 편리함


차량  호출이  확실히  편리하다.  콜택시는  회사에  전화걸고,  회사에서  기사분과  연결해주면  다시  통화해야  하고, 장소  설명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린다.  우버의 경우  앱을  열면  내가  있는  곳의  지도가  나오고  '탑승위치  설정' 메뉴가  나온다.  이  메뉴를  누르면  호출이  된다.   곧  이어  화면  상태는  아래  (1) 처럼 바뀐다.  '지금 모시러 갑니다!'라는 문구가  나오고  호출  차량이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이  표시된다 (3분).  차량이  도착할  때가  되면  곧  도착한다는  알람이  뜬다. 


차량이  도착하면  차에  타서  목적지  까지  가서  내리면  된다.  앱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신용카드  정보를  등록했기  때문에  따로  결제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 깨알같은 부가 서비스


위  사진의 (1)에서  처럼  우버에서  차량을  호출하면  차량의  정보가  왼쪽  아래  나타난다.  기사분  얼굴과  우버  탑승객들이  제출한  평점,  차종,  차량  번호  등등.  손쉽게  호출  차를  찾을  수  있을  뿐더러  지도에  보면  차량 움직임이  표시된다. (2)번에서 처럼  여러 명이  우버를  탔을 경우  요금을  각각  분할  할  수도  있다.  기사님을  연결할  수도  있고  결제수단도  미리  등록된  카드  말고  다른  것으로  변경할수도  있다. 


도착한  이후에는  영수증이  우버와  연계된  이메일로  수신되며  우버  차량이나  기사분에  대한  평가도  내릴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기사  분들도  손님에  대해  평점을  매긴다고  한다. 


차량은  물론  고급  차종이다.  나는  올때  갈때  모두  현대  에쿠우스를  이용했는데  벤츠나  BMW 등도  있다고 한다. 물론  차종을  선택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호출  당시  가장  가까운  차량이  움직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차를  타면  생수도  준비돼  있고  기사  분들의  매너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차의  문을  열어  주시는  익숙치  않은  서비스 까지도  받을  수  있다... -_-) 


- 이용 요금은 택시의 2배 정도


전체적으로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단,  요금은  일반  택시보다  2배  정도  비싼  듯하다.  요금은  시간  거리  병산제로  논현동 - 서울시청  구간에서  갈 때는  21,000원,  돌아올  때는  23,000원의  요금이  나왔다. 



우버를  이용하면서  기사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최근들어  이용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호출도  강남  지역  중심이었는데  최근에는  우버와  연결된  차량이  늘어나서  서울  기타  지역에서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  특히  여성들이  늦게  귀가할  때,  남자친구가  호출해 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여성들의  만족도가  특히  높다는  것이  기사분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별한  날의  데이트에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재미있는  서비스이다.  특히  한국  시장에  들어온  지  오래  되지  않아  프로모션도  많이  한다고  하니  테스트  삼아 이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같다. 


* 이 블로그를 읽고 '한번 써볼까...'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한 선물:  우연히  우버  관계자 분을  알게  되어  프로모션 코드를  받았다.  우버  설치할 때  프로모션  코드로  'EasySun'을  입력하면  소정의  크레딧이  지급된다니 많이  이용하시길! 

  


설정

트랙백

댓글

[생각읽기 11] 파란만장 '디지털 혁신' 도전기 - 김도식

책읽기 2014.06.03 21:59

얼마전 뉴욕타임즈의 혁신 보고서라는 내부 문건이 유출됐다. 미디어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언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은 셈이니 그 결론에 미디어의 미래가 그려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대단했던 것. 우선, 6개월간 354명을 인터뷰하고 정리한 내용이 97 페이지에 달한다는 것만으로도 무게 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뉴욕타임즈는 스노우폴이라는 인터랙티브 기사로 퓰리처 상을 받았을 정도로 디지털 분야에서 앞서가는 언론사 아니던가, 그런 뉴욕타임즈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이대로는 안된다는 자성에서 변화와 혁신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미 다른 언론들에게는 충격을 안겨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국내 미디어의 디지털 전략은 어디까지 와있을까? SBS 뉴미디어부 김도식 부장에게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들어 보았다.





뉴욕타임즈 혁신 보고서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뉴욕타임즈 처럼 앞서가는 미디어도 내부 조직 면에서는 여러가지 개선점이 많다는 점에서, 디지털 퍼스트의 길이 생각 보다 멀고 험난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가 고민하는 것을 뉴욕타임즈도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모바일 등의 기술이 미디어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정보의 생산, 확산, 기사의 가치 등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렇게 지축이 흔들리는 정도의 혼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데 있다.


채널이 다양해지고 뉴스와 정보가 넘쳐나는 뉴미디어시대에 어떻게 독자(시청자)층의 관심을 잡아 둘 수 있을 것인지전통 미디어가 풀어야 할 숙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고,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상황은 한 번 더 꼬여 있죠. 독점적인 지위를 갖는 네이버가 뉴스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다 보니 언론사가 독립적으로 디지털 전략을 고민할 여지 없이 네이버 의존적인 기형적인 구조가 지속돼 왔습니다.”


2013 5월부터 SBS 뉴미디어 팀을 맡아 밤낮없이 디지털, 모바일 전략에 대해 고민했지만 여전히 그는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그가 지향점으로 삼은 것은 ()네이버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였다.


네이버의 뉴스 스탠드 정책으로 네이버로부터 유입되는 방문자수가 줄기 시작하자 대부분의 미디어에서는 네이버에서 한 명이라도 더 방문자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충격’, ‘경악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이 남발되고 같은 기사를 여러 번 다시 발행하는 덮어쓰기 꼼수도 등장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의 전반적인 언론 매체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 그러나 그는 그와는 정반대 방향을 선택했다.

 

탈네이버는 뉴스 브랜드 강화


“’탈네이버라고 하지만 뉴스 유통 경로로서 네이버를 포기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네이버에 의존해 방문자수를 늘리는 것에 연연해하지는 않겠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탈네이버 전략의 핵심은 곧 SBS 뉴스의 브랜드와 신뢰도 강화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느꼈던 가장 커다란 위기감은, 뉴스를 만든 언론사의 브랜드 파워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비단 사람들이 방송을 보거나 신문을 읽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뉴스와 정보 유통이 네이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은 네이버에서 본 뉴스로 기억할 뿐, SBS 뉴스라는 인식을 하지 않게 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SBS 뉴스를 만드는 보도국의 대표 상품은 역시 저녁시간의 SBS 8뉴스 입니다. 하지만 우리 시청자 층은 하루 종일 회사에서, 혹은 지하철에서 뉴스와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죠. 그렇다면 뉴미디어부의 역할은 메인 뉴스 이외의 시간대에 우리 뉴스가 가진 브랜드를 유지하고 지켜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탈네이버를 위한 방법을 모바일 중심 (Mobile Centric)’에서 찾았다고 했다. 모바일 전략을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고 집중해야 하는 일에 전념했다.


우선 SBS 뉴스가 확산될 수 있도록 SNS 채널 강화를 목표로 잡았다. 포탈, 특히 네이버에 집중된 확산 채널을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 다양한 채널로 분산화 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페이스북 페이지에 집중해 활성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에 5월말 현재 23만명 이상의 팬을 확보하게 됐다. 동계 올림픽이나 사회 이슈 등 (최근 세월호 사건을 포함해서) 사회적인 관심사가 몰리는 포스트에 대해서는 좋아요’, 댓글 등이 몰렸다. 뉴스 소비층의 활발한 참여가 뉴스의 한 축이 되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뉴스 확산 채널 다양화도 중요한 전략방향이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였다. 방송뉴스에서 보여주는 방송 리포트를 인터넷에서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뉴스 소비자를 끌어 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결국 인터넷, 모바일, SNS 뉴미디어’ (방송과는 다른 미디어라는 의미에서) 채널에 익숙한 뉴스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뉴스 레시피를 연구했다.

 

뉴스 소비자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개발하라!


그것은 마치 식당에서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레시피를 달리하고 신메뉴를 개발하는 작업과 같았다


뉴미디어부에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현장 취재 기자가 취재 뒷얘기를 들려주는 취재파일현장 트윗이었다. 1, 2분 내외의 방송 리포트에서는 담아내지 못한 취재 뒷얘기나 기자의 의견 등을 전하는 취재파일은 고정 독자층을 확보한 SBS 인터넷 뉴스의 인기 메뉴가 됐다. 2014 2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다루면서 검찰 출입기자가 썼던 도다리쑥국 보다 못한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 사과 후에 올린 대통령의 눈물로 향한 어떤 시선등의 취재파일은 특히 SNS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며 공감을 얻었다.


이번 뉴욕타임즈 혁신 보고서에 보면 취재 뒷얘기를 스토리로 엮어야 한다며 취재파일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확실히 형식이 일정한 방송 보도와는 달리 기자들의 시선과 뒷얘기가 담긴 콘텐츠가 많은 공감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뉴스 소비층의 입맛을 파악하고 나니 좀 더 다양한 시도들을 해볼 수 있었다. 올해 초 동계 올림픽에 맞춰서 시작한 ‘8초 영상 SNS에 특화해서 만들어낸 콘텐츠이다.


“SNS를 운영한다는 것이 단순히 페이지 만들어서 방송 리포트를 실어 나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SNS에서 어떤 콘텐츠가 맞을까를 고민하다가 짧은 동영상 뉴스에 주목하게 된거죠. 8초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 핵심만 담아 낼 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SBS 8초 영상을 스포츠와 연계했다. 극적인 순간으로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야 말로 8초 동영상이 가장 잘 맞는 콘텐츠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밖에도 SBS 8 뉴스를 진행하는 김성준 앵커의 마무리 이야기를 전하는 김성준 앵커의 클로징 SNS를 겨냥해 기획된 콘텐츠로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깨알 같은뉴미디어에 특화된 콘텐츠를 기획했던 뉴미디어부는 지난 3월말에는 대표 메뉴도 선보였다. 바로 모바일 30, 스마트 리포트가 그 것이다.


2012년 뉴욕타임즈는 스노우 폴(Snow Fall)’이라는 인터랙티브 뉴스를 선보였다. 2012 2 19일에 있었던 케스케이드 산맥 (Cascade Mountains)에서의 눈사태를 오랜 기간 취재해 심도있는 스토리라인을 잡았고 거기에 생생한 사진과 동영상, 그 당시 기후도 변화, 사람들의 음성 녹음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엮어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한 획을 그었다. 이 보도로 NYT 2013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스노우폴을 본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해외에서 혹은 국내에서도 인터랙티브 뉴스가 상당히 많이 등장했지만, 일부는 스노우폴을 따라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죠. 하지만 형식만 따라해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고 전달하려는 스토리와 잘 맞으면서 뉴스 소비자들에게 입체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뉴스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SBS 스마트리포트 모바일 30년 첫화면. 바로가기>


때마침 올해가 우리나라의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된지 30년이라는데 착안해 모바일 30으로 주제를 잡았다. 김도식 부장은 방송 뉴스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TV 리포트를 기본 포맷으로 하되, 리포트 중간에 부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구성, ‘스마트 리포트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였다.


리포트 안에 그 리포트에서는 다루지 않는 다른 리포트와 웹툰, 취재파일, 인포그래픽 등 다양한 정보를 함께 담는 형식으로 제작을 했습니다. 비유하자면 스마트 TV의 기능을 포괄하는 리포트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는 스마트 리포트의 형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스마트 리포트는 새로운 형식을 구현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마트 리포트를 본 시청자들은 댓글 등을 통해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남기기도 했다. 한가지 단점은, 스마트 리포트 안에 다양한 관련 콘텐츠가 담긴 것을 모르고 지나친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새로운 형식인 만큼 시청자들이 익숙해지는데 그만큼 시간이 걸릴 것으로 자체적으로 평가 하고 있다. 스마트 리포트로 방송기자연합회로부터 이달의 방송기자상’ (수상자는 뉴미디어부 담당 기자)을 받았으니 노력한 것에 대한 인정은 받은 셈이었다. 스마트 리포트 이후에도 서울디지털포럼 (SDF) 연사들의 주요 스토리를 웹툰과 영상으로 함께 엮은 웹툰 리포트등 꾸준히 이 형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혁신의 열쇠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는 것


SBS 뉴미디어 부의 다양한 콘텐츠는 실제로 페이스북 등 SNS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 이유는 전통 미디어의 뉴미디어 전략의 핵심을 확산 채널(네이버와 같은)에서 찾지 않고 콘텐츠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미디어에 맞는 콘텐츠 전략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뉴미디어부 뿐아니라 보도국의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SNS를 활용하고 이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했기에 가능했다.  


제가 뉴미디어부를 맡고 처음 역점을 두고 진행했던 것이 디지털 미디어 직무교육이었습니다. 2013년 보도국 기자들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는데 그 당시 뉴욕타임즈의 스노우폴을 보여 주었더니 기자들이 다들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죠! 오랜 전통의 신문이 디지털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는 다들 더 늦기 전에 뭔가 해야 한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죠.”


그 때부터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를 이용하는 기자들도 대폭 늘어났고 취재파일 작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뉴미디어 시대, 디지털 시대에도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조직원 모두가 디지털 리터러시 (Digital Literacy)’를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뉴욕타임즈 혁신 보고서에서도 편집국과 기술 부서 등 다른 부서 간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뉴스 콘텐츠의 핵심 조직이 변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죠. 솔직히 기자생활 이십 사년째를 맞고 있지만, 저도 이 부서로 오기 전에는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서 크게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기자들의 눈 앞에 닥친 일 현장 취재해서 기사작성하고 리포트를 제작하는 -디지털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시대의 흐름, 특히 미디어의 혁명적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디지털, 혹은 소셜 미디어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직도 디지털이나 소셜과 낯선 많은 기자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조직적인 뒷받침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이끄는 SBS 뉴미디어부의 탈네이버’, ‘모바일 퍼스트모험기는 아직 목적지에 닿지는 못했을 지라도 참으로 힘든 첫걸음을 떼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는 좀 더 가속페달을 밟으며 디지털, 소셜의 가도를 달리는 일이 남아있다. 

 


설정

트랙백

댓글

[생각읽기 10]'다름'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 거기에 기회가 있다 – 토드 샘플 (Todd Sample)

책읽기 2014.05.22 10:01

토드 샘플 (Todd Sample), 그는 달랐다. ‘미쿡사람이니 여느 한국 남성과는 다르게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감추지도 않았다. 오히려 스타일로 한번에 뚜렷하게 드러나게 했다. 파란색 줄무늬 정장에 밝은 색 체크무늬 셔츠, 노란색 타이 차림의 그는 한 눈에도 두드러져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낯선 외국인만은 아니었다. 그와 만나 한 시간이 넘게 수다를 떠는 동안 우리의 티 테이블에 오른 이야기 거리는 한국의 갑과 을문화에서 시작해서, 유행에 대해, 우리나라 아저씨들의 전형적인 스타일에 대해, 마음 아픈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했다. 이렇게 격이 없이 대화를 나누며 맞장구 치고 눈시울도 붉히다 보니, 그는 이미 친구였다.


어디나 오래 살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서 나고 자란 토드 샘플(Todd Sample) 에게 한국은 이미 고향이다. 1995년 한국에 와서 19년을 이 곳에서 살았으니 말이다.


그가 처음 한국에 오게 된 것은 그야 말로 우연 이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토드 샘플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일년 정도 아시아에서 살아 봐야 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과 한국 두 곳을 염두에 두었는데 친구의 한마디가 한국을 선택하게 됐다.


일본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마음을 터놓고 친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친구는 말했죠. 대신 한국 사람들은 좋고 싫고가 그대로 드러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전 솔직한 태도가 더 좋을 것 같았고 그래서 한국으로 오게 되었어요.”


1년을 작정하고 왔는데 그 때부터 이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됐다. 그냥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이 곳이 좋았다고 그는 여행이 정착이 된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에서 많은 기회를 봤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데, 저는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것이 내 자신에게는 기회인 동시에 이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느꼈던 것이죠.”


한국 사람과는 다른 것이, 자신에게는 기회였다는 토드는 처음에는 다른 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건국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미국 사람이니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가장 당연했을 테지만, 그에게는 사실, 굉장히 따분한 시절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코트라(KOTRA), 한국전력 등에서 투자유치 및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담당 이사로 일했다. 외국에 한국을 알리는 일에 적극 나섰던 것. 한국은 수출로 성장한 나라인 만큼 해외로 뻗어나가고 싶어 하며 끊임없이 해외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하지만 종종 노력만큼 결실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독특한 한국 스타일의 소통 방식 때문이라고 토드 샘플은 진단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한국식 소통 스타일 입니다. 비빕밥 맛있으니 무조건 먹으라고 얘기하죠!”


이처럼 일방적인 대화법의 원인을 토드 샘플은 상대가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단일 민족으로 오랫동안 살다 보니 한국 내에서 당연하게 통하는 것이 해외에서도 먹힐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역할은 글로벌 마인드를 이해시키고 생각이나 행동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첨가시킨 것. 이 일을 하면서 지난 십수년간 대한민국의 위상이 세계 시장에서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확인 한 것은 보람이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그 위상에 걸 맞는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동료로부터 토드, 너무 나대지 마세요라고 눈총을 받을 때나 대충 대충 합시다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운이 빠졌죠.”


그는 가장 힘들었던 것이 튀는 사람을 참지 못하는 보수적이고 권위주의 적인 문화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다.


한국의 매력은 역동성에 있죠. 리더가 바꾸자고 하면 다들 움직여 한번에 성과를 내는 놀라운 저력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토드 샘플이 적극적으로 국내 언론 매체에 컬럼을 쓰고 기업들의 임원 강의에 나서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오피니언 리더 층에서부터 글로벌 마인드를 받아 들여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올해 4, 그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웰드레스트 (http://www.welldressed.co.kr/) 라는 회사를 만들어 스타일 코칭을 시작한 것. 웰드레스트는 단순히 옷을 만들어 주는 곳이 아니라 고객들이 자신의 강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스타일을 찾도록 돕는다.

그는 스타일은 유행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스타일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자신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때 일본에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란제리 붐이 일었습니다. 은행이나 대기업에서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는 직장 여성들이 적어도 속옷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들에게는 란제리 패션이 자신감을 얻는 또 다른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스타일을 변화시켜 튀지 않으려는 한국 사회의 마인드 셋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며 새롭게 도전한 자신의 일에 애정을 나타냈다.





설정

트랙백

댓글

SDF에 참석했다가 스페인어를 배우게 된 까닭? - 듀오링고 (DuoLingo)

맛보기 2014.05.21 16:40

올해로 열한번째 맞는 서울디지털포럼(Seoul Digital Forum) 2014를 보러갔다. Innovative Wisdom이 올해의 주제. 기술은 생활의 편의성을 위해 사용됐고, 그를 위해 많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그래, 이제는 기술이 일상품(commodity)이 되고 있으니 의미와 '공공의 선'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인터넷 대부'로 알려진 전길남 박사님 기조연설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다음에 강연한 루이스 폰 안(Luis von Ahn)의 이야기는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그는 과테말라 출신의 기업가이자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의 컴퓨터과학부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캡차 (CAPCHA)를 고안해 낸 인물이다.캡차는 웹사이트 회원가입 등에 자동 가입 방지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기술이다. 의미없는 것같은 글자나 숫자 조합으로 된 것을 입력해서 등록자가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 최근에는 캡차의 원리를 이용해서 스캔으로 컴퓨터에 저장된 고문서를 텍스트화하는데 활용된다고 한다. 전세계에서 캡차를 거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만큼 이들의 데이터를 활용해서 정확한 고문서 판독에 활용하는 것. (이런 활용을 리캡차라고 한다고...)



                                      <SDF 2014에서 강연중인 루이스 폰 안, 사진출처: 연합뉴스>


그는 '캡차 기술은 웹사이트 회원 가입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악용을 막는 중요한 기능을 가진 것으로 처음에는 이 기술을 고안해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지만 점차 우울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캡차 과정을 거치는 사용자들이 굉장히 성가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어짜피 거쳐야 하는 과정에서 뭔가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노력이 다 같이 모여 고문서 판독에 활용된다면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리캡차로 혁신을 일구어 낸 그는 리캡차가 2009년 구글에 인수된 이후 2011년부터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바로 듀오링고 (DuoLingo) 라는 외국어를 배우는 사이트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는 기술에서 '공공의 선'을 늘릴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구성했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영어를 배우는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를 통해 좀 더 나은 직업을 얻고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하는, 그리 잘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라 생각됐다."


그가 찾은 답은 듀오링고를 통해 외국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신에 외국어 학습 과정에 연습을 위한 번역을 포함시켰다. 그리고는 그 번역 서비스를 CNN과 같은 '기업'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린다. 정말 기발한 방법이라고 생각됐다. 기술을 훌륭하게 개발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기술을 활용해서, 한단계 높은 가치를 만드는 것까지 생각하다니! 


듀오링고는 웹은 물론이고 앱으로도 제공돼 스마트폰에서도 공부할 수 있다. 당장 회원가입하고 앱을 깔았다. 




 그리고 어떤 언어를 배울까 하다가 스페인어를 선택했다. 와우! 이렇게 쉬울 수가 없다. 처음으로 배운 스페인어를 따분하지 않게 설명에 따라 발음도 해보고 번역도 하면서 공부했다. 


SDF 강연에서 루이스 폰 안은 처음 교수과정 설계할 때 여러 책을 참고로 했으나 책은 마치 다이어트 지침 처럼 서로 상충되는 얘기들이 많았다고 했다. 이 책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는게 맞다고 했지만 다른 쪽에서는 다르게 얘기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해서, 이번에도 회원들을 통한 필드 테스트를 거쳤다. 그룹으로 나눠 서로 다른 과정 설계를 하고 학습효과가 높은 쪽을 채택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듀오링고 서비스가 5월 27일부터 우리나라 말로도 가능하다는게 가장 커다란 충격! 한국어로 영어를 배우거나 일본어, 중국어 등도 가능하게 된단다! 


물론 30분 남짓 써 본 서비스이지만, 듀오링고의 과정은 잘 설계된 것같았다. 이러다 정말 스페인어를 배우게 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기술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런지.  







설정

트랙백

댓글

[생각읽기 9] 아빠는 요리사 - 김택환

책읽기 2014.04.14 15:39

 얼마  전  집  근처  프리미엄  아울렛에  갔는데  포트메리온’  매장  앞에서  발이  얼어  붙었어요.  보타닉가든  홈세트에  마음을 빼앗겨  꼼짝할  수가  없더라구요…”


토요일  아침이면  장을  봐다가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남자,  한국  아줌마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테이블  웨어  브랜드  포트메리온을  위시  리스트에  넣는  남자를  만났다.  인터넷  비즈니스  컨설팅  업체인  시도우의  김택환  부사장.  평일에는  야근  많기로  유명한  IT업계에서  일하고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니며  공부도  하며  여느  남편,  아빠처럼  정신  없이  보내지만  주말에는  기꺼이  주방장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보통의  요리하는  아빠들’  처럼  된장찌개를  잘  끓인다거나  새우볶음밥을  맛있게  하는  정도가  아니다.  닭  가슴살로  구워  만드는  치킨 요리 - 치킨  밀라네즈,  칙피  쿠스쿠스와  아스파라거스  볶음을  곁들인  생선까스,  또띠아에  닭가슴살과  토마토를  넣고  구워  만든  치킨  엔칠라다,  맵지  않게  해물의  풍미를  살려  만든  해물찜  등이  최근에  그가  만든  대표  메뉴이다.  주부  9단들에게도  난이도  높은  요리이다.  게다가  주말용  간식으로  블루베리  스콘이나  비스켓도  준비한다.


한번도  요리를  배워  본  적도  없는  그가,  취미  라기에는  좀  거창한  요리  솜씨를  익히게  된  건  큰딸  소민이  덕이다.  딸  셋중에  맏이인  소민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토피가  너무  심해  밤에  자다가도  몇  번을  깨고  늘  몸을  긁적였다.  딸아이를  위해  공기  좋은  동네로  이사를  했고  먹는 것  입는  것,  생활  하나  하나를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김택환표 레시피로 만든 요리들: 사진 왼쪽 위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빠에야 – 치킨 엔칠라다 – 브로콜리 감자 프리타타>


소민이는  라면,  콜라  같은  음식은  먹어  본  적이  없어요.  체질상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되고  소고기는  별로  좋아하지를  않아서  게,  새우,  흰살  생선과  같은  해물을  주재료로  만들어야  하죠.  게다가  맵고  자극성이  강한  음식을  피하다  보니,  요리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한정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어야  하는  소민이에게  늘  먹는  엄마 밥’  보다  좀  더  색다른  맛을  선사하고  싶었다.  영양과 맛을  다  갖춘  음식을  직접  만들어  주기  위해  앞치마를  매기  시작한  게  1년  반  정도  됐다.  소민이를  위해  그가  찾아낸  해답은  스페인,  모로코  스타일의  요리였다.  해산물을  주  재료로  사용하며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그  많은  요리책  가운데  스페인  요리책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  인터넷을  스승  삼고  좋은  재료와  정성을  조미료  삼아  하나  하나  만들며  김택환표’  레시피를  쌓아  가고  있다.


스페인  대표  요리인  빠에야를  만드는데  육수가  필요했어요.  수산시장에서  서더리  한마리  2 5백원에  사다가  육수를  내어  만들었죠.  가족들이  모두  맛있게는  먹었지만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로  만들다  보니  확신이  서지  않아서  유명하다는  스페인  식당을  찾아  빠에야를  시켜  먹었는데…  단언컨대,  제가  만든  게  더 맛있더라고요!”


자신이  만든  요리의  맛을  자랑하는  눈빛에서  이제  그에게  요리는  딸을  위한  음식  만들기  이상의  기쁨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한  번,  두  번  만들다  보니  자신이  요리  하는  것을  너무  좋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이제  주말  메뉴를  정하고  장보고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일이  자신  뿐  아니라  가족의  활력이  되고  있다는  것.


음식을  만들어  예쁘게  그릇에  담아  낼  때의  그  뿌듯함은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다같이  모여  즐겁게  음식을  나누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죠.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  마치고  행주까지  깨끗하게  빨아서  마무리했을  때이죠.  화룡점정의  기분이랄까요…”


그는  디자인을  전공한  것이  음식의  색상을  맞추고  맛깔  나게  담아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김택환  부사장은  다른  아빠들에게도  요리를  권한다.  백마디  말  보다도  한  접시,  정성과  맛이  살아있는  음식이  가족과  아빠를  이어주는  훌륭한  소통도구라고  강조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한국의  아빠들에게  요리가  왕따를  극복하는  비법이  되었으면  좋겠다.  요리하는  아빠가  늘어  가정의  행복도가  높아 질  수만  있다면… 



설정

트랙백

댓글

핏비트(Fitbit)와 함께 놀기

맛보기 2014.04.05 17:48

이번 주말을 나와 함께 한 친구는 핏비트 (Fitbit, 발음은 핏빗이나 핏비트가 맞는 표현인듯…). 핏비트가 무언가 하면… ‘건강팔찌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물론 요즘은 팔찌 모양이 아닌 제품도 나와 있지만 내가 산 것은 팔찌 모양의 핏비트 플렉스이므로 건강팔찌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같다. 그런데 은나노.. 등등의 어떤 성분이 있어 건강에 좋은것이 아니라 몸에 부착하면 센서로 건강 상태나 움직임 등등을 체크해 건강을 관리해주는 기기이다.


구매 이유


온갖 새로운 기기에 관심이 많은 편인 나는 오래 전부터 핏비트와 같이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손목 밴드형은 팔목이 가는 내게는 너무 디자인이 안맞는다는 생각 때문에 애써 모른척 하고 있었는데, 펀샵을 구경하다 밴드가 소형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구매!


대세 흐름인 웨어러블 디바이스도 경험하고 IT와 헬쓰케어의 융합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자는 대외적인 명분이 큰 위안이 되었다.


구매와 배송, 내 팔목에 차기까지


처음엔 아마존에서 직구를 할지 국내 쇼핑몰에서 살지 찾아 보았다. 아마존 가격은 99달러이고 국내 쇼핑몰(펀샵) 가격은 139,000. 얼핏 보면 아마존이 싸보이지만 아마존 가격에 배송료와 세금을 더하면 결코 싸지 않겠다 싶어서 펀샵에서 샀다. 펀샵에서 고르다 보니 최근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샤인이라는 제품이 있었다. 예쁘긴 하던데.. 뭔가 복잡한 것같이 패스! 그냥 핏비트로 결정!


이틀만에 (총알까지는 아니어도) 꽤나 빠른 배송. 수요일에 주문하고 금요일 저녁에 받았으니 아마존을 택하지 않은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물이 더 이뻤다. 아이, 좋아라!


제품 구성과 등록


제품 포장을 뜯으면 대략 다음과 같이 구성돼 있다. (사진은 펀샵 제품 소개 페이지에서 캡처)





팔목밴드가 2개가 기본으로 들어 있고 핵심기능을 하는 트래커, USB로 연결하는 충전기, 무선동기화 동글. 포장 안에는 마땅한 설명서도 없다. 다만 비밀 암호와 같은 URL – www.fitbit.com/setup 이 있을뿐.

핏비트 사이트에 들어가 계정을 만들고 트래커 연결작업을 한다.



비교적 단계마다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핏비트로 할수 있는 일


핏비트로 할 수 있는 일은 활동량과 이동거리를 측정하고 먹은 음식 데이터를 입력하면 칼로리 소모량을 측정해준다. 소셜과 연동해 친구들과 함께 경쟁하듯 건강관리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공유할 수 있다. 잘 때는 수면 시간과 뒤척임을 측정해서 얼마나 숙면을 취했는지도 모니터링 해준다. 그런데 얼마나 정확한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핏비트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은데, 또 막상 본인이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입력하지 않으면 첨단화된 만보계 역할 이상은 할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본인의 적극성참 여러운 일인데 말이다.


오늘 하루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핏비트와 놀았다. 먹은 음식도 열심히 찾아서 입력했지만음식명을 영어로 검색해야 하는 것이 함정. OTL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는다면 어떻게 칼로리를 계산해야할지 난감하다.


Quantified Self


건강관리해주는 손목밴드 형태의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Quantified Self’ – 개인의 일상을 데이터화해서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에 대한 얘기들이 많아 졌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페이스북에 담고 내 몸 상태는 핏비트에 담아내는 시대. 이런게 진정한 ‘Being Digital’인가.


새로운 흐름을 느껴보고 싶어서 시작한 나에 대한 데이터화. 아직은 재밌다. 그런데 숫자가 나를 규정하는 것에 대해 언젠가는 싫증이 날 것같다.


, 마지막으로 인증샷!


                     (사진은 Black 처럼 나왔지만 사실은 Slate)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