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즐기는 보졸레누보의 경쾌함

맛보기 2008.11.20 18:35
마케팅/PR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seasonal issue'를 챙긴다는 것은 거의 생명과 같은 일이다. 첫 눈 내리는 날에는 그에 걸맞는 연계 아이템을 고민해야 하고 빼빼로 데이에는 그와 어울리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와인의 세계에서 (물론 아직 잘 모르지만) 보졸레 누보 만큼이나 PR/마케팅적인 개념을 잘 반영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보졸레 누보가 전세계적으로 발매된 날 내가 이 와인을 마시는 유일한 이유다.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 부르고뉴주의 보졸레 지방에서  매년 그해 9월에 수확한 포도를 11월 말까지 저장했다가 숙성시킨 뒤, 11월 셋째 주 목요일부터 출시하는 포도주(와인)의 상품명이다. 원료는 이 지역에서 재배하는 포도인 '가메(Gamey)'로, 온화하고 따뜻한 기후와 화강암·석회질 등으로 이루어진 토양으로 인해 약간 산성을 띠면서도 과일 향이 풍부하다.

보졸레누보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51년 11월 13일 처음으로 보졸레누보 축제를 개최하면서부터이다. 보졸레 지역에서는 그해에 갓생산된 포도주를 포도주통에서 바로 부어 마시는 전통이 있었는데, 1951년 이러한 전통을 지역 축제로 승화시키면서 프랑스 전역의 축제로 확대되었고, 1970년대 이후에는 세계적인 포도주 축제로 자리잡았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포도주는 '숙성'을 기본 코드로 값이 매겨지는 상품이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포도주, 오래 보관된 포도주가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은 포도주 시장에서는 불문율처럼 당연시되고 있다. 그런데 9월에 수확한 포도를 숙성과정 없이 11월에 바로 내놓다니.. 아마 처음에는 상품 가치 보다는 그 마을의 축제 정도로 의미가 있었을 것인 보졸레 누보를 매년 11월 세째주 목요일을 내세워 세계인들이 목마르게 기다리는 와인으로 탈바꿈시켰다. 정말 유쾌한 마술이 아닐수 없다.

오늘 오후에 문자가 왔다. '오늘은 보졸레 누보 출시날...'로 시작되는 문자를 받고.. 망설임없이 보졸레 누보를 사러 나섰다. 오히려 와인샵보다 편의점에서 더 구하기 편할 정도로 보졸레 누보는 대중화되어 있었다.


보졸레 누보와 치즈, 소시지의 간단한 조합으로 간식 자리를 마련했다. 보졸레 누보는 다른 와인에 비해 '와인색' (자줏빛에 가까운) 보다는 '포도색'에 가까웠다. 맛도 가볍고 포도주스를 마시는 듯한 새콤함과 경쾌함이 어우러졌다.

보졸레 누보의 상쾌함이 식탁위 대화에서도 이어졌다. 비록, '5대 샤또처럼 간절한 바램'으로 크게 맘먹고 어쩌다 한번 맛보는, 그래서 일종의 경외감을 가지고 맛보는 프리미엄 와인은 아니더라도 가볍게 즐기며, 보졸레 누보의 의미에 대해 아는 척하며 지나칠 수 있는 그런 와인이라도 참 의미있다 싶다.

오늘 마신 보졸레 누보는 특히 신맛이 덜하고 숙성이 덜되었지만 떫지는 않은, 그래서 더욱 즐거울 수 있었다.  보졸레 누보를 마시며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을 믿음(11월 몇째 목요일에는 보졸레 누보를 마셔야 한다는..)을 심어주고, 실제로 그 속에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홍보 캠페인을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아 이건 일종의 '직업병'일까...)



설정

트랙백

댓글

만약에 내가...

맛보기 2007.09.04 20:58
세상일에 "만일에.."라는 가정은 소용이 없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내가 만약 그랬더라면 하는 가정을 품어 보는 것은 밥통에 애매하게 남은 밥한덩이처럼 미련 한자락 남은 것을 처치하지 못하는 때문일게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내가 만일..'하는 가정을 종종 하곤한다. 바보 같아 보일 지라도 또 그게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니 말이다.

요즘 내가 '만약에 내가..'하며 과거를 되짚어 가정을 해보는 단골 메뉴가 있다. 그것은, 만약에 내가 계속 나의 첫번째 회사인 드림을 하고 있다면.. 하는 가정이다.

96년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창업을 했던 나는 죽기 살기로 정말 열심히 일했고, 회사의 성장을  그에 대한 댓가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내 스스로 지쳐 유학을 핑계로 내가 창업한 회사를 떠났다. 물론 그만 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그 당시 나는 드림의 미래 전망을 명확하게 그려내지 못한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다.

여유가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혹은 능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지속적으로 빠른 성장을 거둔 회사의 미래 전망을, 직원들이 내게 보여 달라고 졸라대었던 회사와 그들 미래의 '비전'을 나는 명확하게 그려 보여 줄 수가 없었다.

드림의 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드림을 떠나기 몇 달전쯤 드림 전체 직원이 워크샵에 가서 우리의 10년 비전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Dream Communications Group, 즉 DCG라는 종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그룹의 비전을 그려 내었다. 하지만 드림의 CEO였던 내게 DCG의 비전은 너무 막막하고 중간 다리가 보이지 않는 동떨어진 섬이었다. 물론 그 비전은 드리머들과 함께 길을 찾아 나섰더라면 그런대로 찾아 질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급했던 나는 결국 중도 하차라는 선택을 할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내가 '만일 아직도..'라는 가정을 되뇌이는 것은, 흔히 사람들이 하는 식의 미련 때문은 아니다. 최근들어 홍보대행사에 계신 분들이나 혹은 기업 홍보 담당들을 종종 만나게 되면서 나는 5년전으로 돌아가 드림의 비전을 찾아 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만약 내가 다시 그때의 드림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당장 IT 전문인력으로 팀을 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우선 기업의 홈페이지 작업을 전문 컨텐츠 팀과 결합해서 구축하는 것으로 비즈니스 체계를 정립했을 것이다. 반드시 홈페이지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핵심은 기업이 가진 컨텐츠를 IT를 활용해 보다 많은 잠재 고객들에게 전달하는 일에 관심을 쏟았을 것이다. 결국은 홍보에 어떻게 인터넷과 IT를 접목할 것인가에서 답을 구하려 할 것이다.

최근들어 웹2.0시대의 홍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의미로 PR2.0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는데 결국 그렇게 발전하면 그 회사는 PR2.0 회사로 성장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이름도 생소한 PR2.0에 대해서 기업체 홍보 담당을 대상으로 설명하면서, 홍보대행사 팀장급 대상으로 논의를 발전시키면서 나는 10년전 내가 시작했던 일이 오늘에 녹아있음을 발견한다.

회사의 이름은 바뀌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10년을 몸담았던 신문사에서의 내 흔적과 드림에서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고민했던 그 노력들이 미디어U의 PR 2.0 서비스에 담겨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 된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