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의 두려움

맛보기 2007.09.10 22:40
회사에서 짤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것이 보통 샐러리맨의 정서이고 고객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고심하는 것이 물건을 파는 상인의 걱정일텐데 나는 가끔씩 그 반대의 두려움에 빠질 때가 있다.

지금의 미디어U야 이제 막 시작해서 직원들이 이직할 틈이 없었지만 이직률이 상당했던 예전에는 직원이 심각하게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라고 메신저로 말을 걸어 오면 가슴이 철렁 하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혹시 회사를 그만 둔다는 것은 아닐지.. 만약 그렇다면 이 친구를 잡아야 할지.. 잡으려면 어떤 조건을 내세워야 할지.. 그랬을때 입장이 난처해지는 다른 직원은 없을지..하는 몇가지의 연속적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간적으로 내 머리속에서 많은 연산을 하도록 시킨다. 그 친구가 메신저를 끝내고 자리에서 내 앞에 앉는 순간까지 결론을 내고 답을 가지고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혹여, 대학원 입학을 하려는데 추천서를 써줄수 있냐든지, 혹은 기타 내가 손쉽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을 할때에는 너무나 흔쾌히, 예스를 하고는 가슴을 쓸어 내리곤 했다.

더욱이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경우는, 물건을 사면서 판매원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어느날 잡지를 보고 최신 유행에 따라 볼까 하여 어떤 화장품을 사러 갔다. 발음도 어려운 그 제품을 달라고 얘기했더니 키메라 급의 전문 화장을 한 판매원이 그 제품의 종류를 열거하며 A냐,B냐 C냐를 묻는 거였다. 일테면 "맥주 한병 주세요" 했더니 "카스를 드릴까요, 밀러를 드릴까요, 혹은 생맥주나 흑맥주도 있어요."라고 되묻는 그런 식이었다.  고백하건데 나는 화장품에 대한 전문 지식이 별로 없어서 "매트한 느낌"이라든지, "쉬크한 표현"이라든지 하는 용어들의 숨은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문외한일 뿐이다 (물론 맥주는 병맥주, 생맥주, 흑맥주를 구분하지만 -_-). 어쨌든 머뭇거리며 "그게.. 머죠..? 어느게 좋아요?" 라고 어눌하게 대답하는 내게 멋진 키메라 아가씨는 "취향에 따라 다르시죠" 하며 제품 샘플을 내게 보여주고는 다른 손님에게 넘어가 매트니 쉬크니 하는 단어들을 섞어 열심히 상담을 하는 것이었다. 주눅든 나는 그날 화장품을 사지 못했다. 판매원이 사전 지식이 없는 나를 보살펴 주지 못할 것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판매원이 잘 응대해주지 않아서 사고 싶은 물건을 못사고 돌아선 경험이 몇 번 있다.

웃기는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되짚어 보면 보편적인 '갑'이 갑이 아니고 '을'이 을이 아닐때가 많다. 기본적으로 나는 갑과 을로 관계를 규정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믿지도 않는다 (내가 '을'인 경우에는 너무나 그 관계의 규정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 조금 슬프기는 하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늘 '을'일때 갑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고 구도상 갑일때 조차도 을의 눈치를 보는데 익숙하게 살아왔다.

뜬금없이 지난 경험을 되살리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소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다가 바로 그것이 양방향 열린 대화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갑이니 을이니의 커뮤니케이션 구도를 완전히 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품의, 혹은 서비스의 좋은 점만을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싶어하고 불만은 아예 숨겨 버리고 싶어 했던 기업들이, 일방적인 정보의 제공에 익숙해있던 기업 입장에서도 이제 대등한 커뮤니케이션을 원하는 시대가 왔다는 바로 그런 생각이다. 그런게 가장 일차적인 소셜 미디어의 정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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