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 현상의 이해: '제도권'과 '장외'의 부딪침에 대하여...

생각하기 2011.10.14 18:19
어느새 '나는 꼼수다' 열혈 팬이 되었다.  정치와는 담쌓고 살던 내가 정치인에 대한 관심도 생겨났고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 들에 대해서도 내 의견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선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모든 변화가 나꼼수로부터 시작됐다. 정치 문외한인 나를 변화시킨 힘으로 나꼼수는 전세계 팟캐스팅 1위 석권을 넘보고 있다. (아마 에피소드 별로는 이미 1위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꼼수가 서울시장 선거와 같은 정치 이슈에 영향을 미치는 '유력한' 세력이 됐다. 세력이라 표현해야할지, 혹은 방송이라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꼼수의 영향력이 날로 커져가니 드디어 나꼼수에 대해 소위 '제도권' 진영에서도 관심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 대표가 인터뷰를 자청해 나꼼수에 출현을 했다고 하고 오늘자 동아일보에는 정치부장의 컬럼도 실렸다. ('내맘대로 언론' 그들이 부럽다... 보러가기 사실 이 컬럼이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했고 이 컬럼의 비유대로 '제도권'과 '장외'라고 제목을 지었다) 그뿐아니다. 엊그제 술자리에서 만난 검사님도 나꼼수를 챙겨 듣는다며 당혹스러운 입장을 얘기했다. 

그렇다. 지금 '제도권'은 나꼼수 현상에 대해 상당히 당황해하고 있다. (아직도) 유력일간지로 손꼽히는 동아일보 칼럼은 현재 제도권이 느끼고 있는 당혹스러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핵심 메시지는 대략 이런 것이다. "장외는 정통 언론이 아니니까 함부로 얘기할 수 있고 함부로 얘기할 수 있으니 재미있고, 그러니 인기 있는 것이다. 정통 언론은 지켜야할 본분이 있고 장외와는 급이 다르다. 차라리 마음껏 생각나는 대로 얘기할 수 있는 장외가 부럽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제도권'에서는 박수를 쳤을 것이다. 그리고 안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코 이런 방식으로는 당혹감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꼼수'로 대표되는 장외의 영향력이 결코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권 언론이 '나꼼수는 제대로 사실 확인도 안된 얘기들을 책임감없이 내뱉는다, 편협된 시각이다, 거시적으로 보지 못한다. 그런데 재미가 있으니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러니 장외에서 그냥 떠들뿐이다.'라고 나꼼수 현상을 간단하게 정리해버린다면, 나꼼수 현상의 핵심에도 근접하지 못한 것이다.

나꼼수의 힘은 팟캐스트를 찾아 듣고, 그 내용을 일상생활에서 전파하는 청취자들에서 나온다. 물론 그들을 움직이는 건 나꼼수의 컨텐츠이고, 그것의 핵심은 재미일테지만 말이다. 김어준 총수는 십년도 훨씬 전부터 '딴지일보'에서 제도권이 들으면 못마땅해할 얘기들을 해왔고, 팬층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때도 그의 시각은 신선하고 재미있었으나, 그땐 정말 그야말로 '장외' 였을 뿐이다. (총수님, 죄송!) 하지만, 지금의 나꼼수는 서울시장 야권 후보경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많은 이들의 정치적 시각잡기에 단서를 제공하는 강력한 채널로 성장했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를 면밀히 살펴볼 일이다. 나꼼수 현상을 분석해보면 몇가지 핵심적인 요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컨텐츠
첫번째는 물론 컨텐츠의 힘이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상황과 연결해서 분석을 해놓았다. 정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다 보니 속시원히 해석하고 정리해주는 4인방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꼭 반정부적인 얘기를 속시원하게 한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정부 비판적인 미디어는 과거에도 넘쳐났다. 그런데 4인방은 각자의 위치에서 통찰을 전해준다. 그것도 유쾌하게 시원하게 전달한다. 직설법과 솔직함이 먹히는 것이다. 그래서 유쾌하다. 청취자들은 그리 바보가 아니다. 일부 나꼼수 내용 중에 편향적인 시각이라거나 과장이 있다는 점도 아마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판단도 청취자에게 넘긴다. "싫으면 듣지마" 자신 만만함도 호감이 배가되는 이유다.

영향력을 가진 개인들의 집합
나꼼수가 컨텐츠 경쟁력을 갖는 이유는 등장하는 4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정보를 모으기 때문이다. 제도권 언론이 아니라고, 그들에게 언론인이 아니라 예능인이라고 누가 쉽게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들은 결코 이 가볍게 이 프로그램을 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꼼수 뿐만 아니다. 트위터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자신의 자리에서 정보를 열심히 모아서 남들에게 제공하는 사람들. 물론, 때때로 언론의 '엄격한' 잣대로 보자면 주관적일 수 있는 얘기들과, 사실 확인 안된 얘기를 올릴 수는 있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있다. 그렇게 영향력을 가진 개인들이 생겨나고, 늘어나고, 그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지렛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나꼼수는 그렇게 영향력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서 활동을 하는 하나의 대표적인 프로젝트일 뿐이다. 핵심은 이제까지 제도권 언론이 가졌던 영향력이 많은 부분 개인들로 넘어가는 추세라는 점이다. 제도권 언론이 관성을 내세워 영향력 가진 개인들의 힘을 부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대세를 바꿀수는 없을 것이다.

사회적 관계망 
영향력있는 개인들이 모여서 시의적절한 컨텐츠를 담아내는 나꼼수 만으로도 훌륭한 방송이 될테지만,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의 폭발력은 사실, 나꼼수를 듣는 청취자들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이들은 모두 사회적 관계망으로 묶여 있다. 그건 늘 그래왔다. 다만, 결속력이 부족했다. 그런데 SNS 처럼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되지 않도록 이어주고 좀 더 확장시켜주는 사회 인프라가 형성이 되면서 이들의 사회적 관계망은 단시일내에 '파도타기'가 가능할 정도로 힘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얘기한 영향력있는 개인들이 동맥, 정맥의 역할을 한다면 SNS를 통한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실핏줄들이 움직여 근육을 움직여낼 힘을 얻는 것과 같다. 

나는 나꼼수 현상은 '소셜의 시대는 개개인들이 미디어 파워를 갖는다'는 개념적인 얘기를 실체로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나꼼수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제도권'의 틀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각이 너무 많다. 흐름을 보기 위해서는 틀을 깨야할 때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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