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VISA에 얽힌 아픈 기억

산에오르기 2007. 1. 28. 00:39
얼마전 만료된 B1/B2 비자를 다시 받기 위해 미국 대사관을 다시 찾았다. 95년 처음 미국 출장을 위해 B1/B2 비자 인터뷰를 했고 2002년 유학전 F1 비자 인터뷰를 했으니 이번이 세번째였다. 미 대사관 담길은 여전히 미국 방문을 위해 줄서는 사람들로 붐비었고, 그 주변에 전경차와 커피 아줌마(요즘은 아저씨도 많아 졌다), 그리고 '거절된 비자 책임지고 받아들입니다'하는 알쏭달쏭한 전단지를 뿌리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모퉁이를 돌아 늘어선 줄의 끝을 찾아 서면서부터 나는 문득 2002년의 악몽이 되살아 나서 겨울 아침의 한기를 더욱 세차게 느꼈다. 2002년 4월에 USC Marshall School로부터 입학허가서와 I-20등 서류를 받았다. 8월 중순부터 학기가 시작되니 준비 기간으로는 빠듯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더군다나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기 위해서는 신임 사장도 물색해야 했고 주주들과 직원들의 동요를 없애는 등등의 대외적인 업무도 많았다. 그래도 타임라인을 잡는 것에 익숙한 터라 나름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7월 19일 미국으로 가는 편도 티켓도 사두었고, 짐도 부치고 (물론 그 중간에 LA에서 살게될 아파트도 구해 놓았고) 주총도 열어 6월 30일자로 사임의사를 밝혔고 후임에게 인수인계 작업도 시작했다. 그러던 중 6월 25일(날짜도 잊혀지지 않는 625 기념일이었다)에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대사관을 찾았다. 솔직히 비자 받는 일은 내가 기간내에 해야하는 일 가운데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일단 USC I-20 도 있었고 원하는 서류에서 별로 빠지는 것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보통 비자 인터뷰를 미국인들이 하는게 보통이었는데, 나를 인터뷰했던 사람은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한국 여자분이었다. 서류를 검토하던 그 분이 내게 던진 첫 질문은 왜 87년에 졸업한 사람이 15년이나 지나서 이제야 공부를 다시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내 맘에 있는대로 "회사를 하다 보니 이것저것 부족한 것이 많은 듯하여 더 늦기 전에 배우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늦깍이의 향학열을 높이 칭찬해줄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적어도 어떤 문제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였다. 두번째 질문은 더욱 이상했다. "왜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경영학 공부를 하러 가느냐"는 것이었다. 음.. 졸업한 이후 취업을 하면서부터 영문학 전공과는 크게 관련이 없었고, 회사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경영에 관계된 일이기에 경영학을 더 배우는게 맞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나의 답이었다.

그 외 몇가지를 더 질문하더니, 그 분은 청천벽력과 같은 한마디를 던졌다. "선생님 께는 비자를 발급해 드릴수가 없습니다. 대학 졸업후 십몇년이 지난후에 다시 공부를 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으며, 대학원 공부를 전공을 바꿔 한다는 것도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서 그 말뜻을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직접 그런 표현을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이들을 미국 유학시킬 요량으로 엄마가 대학의 I-20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유학비자를 줄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분이 자신의 한마디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과연 짐작이나 했을까..본인의 오판으로 한사람의 인생의 계획이 일그러진다는 것을 가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항의를 했다. 생물학을 하던 사람이 수학을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를 경영했다는 것은 경영을 늘 고민했다는 것이니, 경영학 전공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과, USC에서 발급한 I-20가 있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마지막으로 나의 주장을 "요즘은 LA에 수많은 학교들이 있고 어디서나 I-20는 받을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하얀 종이를 주었다. 보통 비자 거절 사유를 얘기할때 Green Paper나 White Paper를 받게 된다. 그린 종이는 보통 서류가 미비할때 주는 것으로 원하는 서류를 보강해서 제출하면 무리없이 비자를 발급해준다. 그러나 하얀 종이는 인터뷰 심사자의 "의견"이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서류를 보강해서 다시 제출할수는 있으나, 웬만해서는 그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상례라고 한다. 다시 말해, 서류를 내어도 거절 의견이 나올 확률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USC가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명문중의 명문은 아니라고 해도, 미국내에서는 잘 알려진, 적어도 I-20를 대강 아무에게나 발급할 정도의 학교는 아니라는 사실을, 아마도 그 분은 몰랐던 것같다.

미국 대사관을 나오면서 나는 의외의 곳에서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5일후면 졸지에 백수가 될터였고, 비행기표는 취소 한다 해도 이미 부친 짐은 어찌해야 하는지, 잘못하면 짐 찾으러 LA를 가야하는 불상사가 생기겠구나 부터.. 이런 저런 상념이 끊이질 않았다.

그 이후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드림 커뮤니케이션즈에 대한 소개 (세금 납부 실적 등등을 포함하여), 그동안 신문기사에 다뤄졌던 인터뷰 내용 등등과 나름 명망있는 분의 말하자면 탄원서 등등을 모두 영문으로 작성하여 서류 다시 접수했다. 다행히도 어렵게 비자를 받을 수 있었고 7월 16일 비자를 받아 19일 비행기를 탈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의 갈림길에 서서 수많은 생각들을 조그만 머리 속에서 처리해내야 했던 20일간의 악몽은 아직도 맘 한구석에 상처로 남아 있다.

이번 B1/B2 비자는 큰 무리 없이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대사관은 이유없이 나를 주눅들게 하는 맘 편치 않은 곳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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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Favicon of http://www.kkonal.com BlogIcon 꼬날 2007.01.28 21:19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는 25살 때 첫직장에서 회사 업무로 갑자기 미국에 가게 되었었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비자가 하루 늦게 나와서 남들보다 하루 늦게 비행기 타고 갔다가 하루 늦게 혼자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땐 엄청 순진할 때라서 그게 왜 그랬었는지 잘 몰랐었는데, 나중에야 .. 미국 비자 받는데 최악 중 최악의 조건이었었다는 걸 깨달았더랍니다. 이젠 좀 나으려나 싶기도 하지만, 저 역시 어딘지 주눅들게 하는 곳이라는 기억이 남아 있어요. ㅎㅎ

  • Favicon of http://www.moreover.co.kr BlogIcon Chester 2007.01.31 03:15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러게요.. 운빨따라가는 것 같아요. 저는 미국비자 받을때, 서류는 펴보지도 않고 농담 두세마디 하고 끝났는데 말이죠. 물론 놀러가비자이기도 하였지만. 반면에 후배동료는 아무런 이유없이 떨어져서, 일정차질이 생겼었죠.

  • 지니가다 2007.03.16 03:52 ADDR 수정/삭제 답글

    원래 한국인이 인터뷰 하는 쪽이 비자 발급율이 더 떨어지는 편이죠. 같은 한국인일수록 묘한 우월감 같은걸 가지고 심사대에 앉아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