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손가정에서 살아가기...

산에오르기 2009. 9. 18. 16:26
며칠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선배(A씨)와,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나의 선배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과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지인(B씨)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편하게 수다떠는 자리였는데 얘기를 나누다보니 우리 셋 모두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이른바 '결손가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떨어져 살아가는 것의 고단함을 주제로 한참 대화의 꼬리를 이어 갔는데, 그날 얘기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실명을 짐작하기 어렵게 하기 위해 아주 '약간' 각색을 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등장인물 A씨는 남매를 유학시키고 있었고 부인도 아이들 돌보느라 떨어져 살게 된지 6년이 되었고 B씨는 외국에서 공부하는 아내를 뒷바라지 하면서 딸 둘을 함께 보낸지 3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업무상 LA 가있는 남편과 떨어져 살게 된 것이 1.5년이네요.

먼저 A씨의 사연입니다.

이번 여름방학에 말이다 근 6개월도 넘게 못보다가 애들과 엄마가 서울에 오게 되었어. 그래서 나는 한달전부터 몸과 마음을 모두 환영준비에 쏟아 부었지. 오면 이걸 할까, 저걸 할까 고민도 많이 했고, 돈도 좀 꼬불쳐 두고 늘 설레이며 만날날을 고대하고 있었지.

그런데 정작, 방학을 해서 애들과 애들 엄마를 공항에서 맞이 했는데, 우리 아들눔은 짐만 차에 싣고는 머리하기 위해 이대앞을 가야한다는 거였어. 첫날부터 나는 뒷전이더니 서울에 머무르는 내내 온갖 친구들 약속에 바빴지. 딸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히는 건, 우리 마눌님이었단다.

애들이야 뭐 어느 정도 예상도 했고 이해도 했지만 (이눔의) 마눌님도 아침 꼭두 새벽부터 기도한다고 나가서는 12시나 돼야 나타나는 거야. 사실 나는, 가족들 온다고 휴가도 받아 놨는데 정작 식구들은 다들 나가서 노느라고 나는 휴가 내내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집에서 빈둥빈둥, 낮잠만 잤던 거야.. OTL

그렇다고 가장이 쫀쫀하게 나랑 놀아 달라는 둥 어찌 그런말을 하겠냐. 그래서 참고만 있다가 어느날 드디어 폭발을 했다. 딸, 아들, 마눌님 다 불러 앉혀놓고 징징대기 시작한거지. "니들 정말 너무한다. 몇달만에 겨우 우리 가족이 만났는데 다들 초등학교부터 동창들 찾아 다니기 바쁘고 아빠와는 정작 얼굴 마주치기 어려웠잖니..." 애들은 잠시 숙연한 표정을 짓더구나..

"그리고 당신, 정말 너무하는거 아냐. 언제 한번 내 밥 한끼 챙겨준 적이 있냐고.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지난 중복날.. 나 회사 사람들이 삼계탕 먹으러 가자는 걸.. 당신이 그래도 저녁에 들어가면 닭한마리 고아놨겠지 싶어.. 회사 사람들 다 설득해서 짜장면 먹었어. 그런데 집에 와보니 웬걸.. 당신은 밤늦도록 들어오지도 않고... 나 저녁으로 뭐먹었는지 알아? 짜파게티 끓여 먹었다!" 우리 마눌님 뭐라는지 아냐? "그래? 난 삼계탕 먹었는데 >.<" ....

결국 그날 내가 가족회의 소집해서 남은 이틀동안 다들 약속 취소하고 가족 외식 4번하고 보냈지. 가장이 좀 폼잡아 가며 잘해주고 싶었는데.. 구걸을 한 셈이 된거야.. ㅠㅠ
 
와 정말 눈물나도록 슬픈 얘기였습니다. 이에 3년차 B씨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저도 비슷한데요. 부인이 방학을 맞아서 애들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멋진 남편으로 보이고 싶어서 제가 봉투를 준비했죠. 봉투에 일금(=거금) 백만원을 딱 넣고 - 그거 모으느라 정말 힘들었죠 ㅠㅠ - 손에 쥐어 주면서 "당신 있는 동안 써!" 근엄하게 한마디 했습니다. 그리곤 카드도 건넸죠. "모자라면 카드도 있고!" 아 정말, 뿌듯한 순간이었죠.

그런데 다음날 부인이 봉투를 들고 콧노래 부르면서 나갔는데.. 저녁에 들어와 보니 머리 스타일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당신, 머리 했네!" 그러면서 아는 척을 했더니.. 강남 어디에서 하느라고 45만원을 썼다는 겁니다! 허걱! 순간 어렵게 알바뛰고 온갖 노력 다해서 마련해준 펀드가 반토막이 났다고 생각하니 정말 허탈하더라구요. 

사실 카드는 남편으로서의 허세 부리려고 준것이었는데 며칠 안돼 바로 카드 사용 들어가더군요. 카드값 갚느라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에효~! 

다들 아픔이 있는 거죠. 떨어져 사는 애틋함도 모자라서 비용도, 많이 드는게 결손가정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결손가정에서 살다보면 혼자서 넓은 침대를 차지 하다보니 잠버릇이 고약해진다는게 그날의 또다른 결론이었는데요..

B씨: 저는 3년쯤 되니까 허전한가봐요. 창피한 얘기지만 요즘은 베개같은 거를 끌어안고 자게 되더라구요..

A씨: 그것도 몇년지나면 시들해져. 나는 첨에는 이불을 돌돌 말고 자다가 지금은 이불이고 베개도 다 내동댕이 쳐서 일어나보면 다 침대 밖으로 떨어져 있더라고..

나: 오라버니드을~! '가로본능'을 아세요? 전 침대에서 가로로 잡니다. -_- (물론 제 신체 조건이 그러하니 가능한 일이지만요..)

흑.. 결손가정 후원회라도 만들어야 겠어요..

A씨와 B씨가 이 글을 읽더라도 그날 대화내용의 무단게재를 문제삼지 말아주시기를... 그냥 웃자고 쓴 글이니까요^^


 

설정

트랙백

댓글

  • Favicon of http://blog.naver.com/closeme2 BlogIcon 광고인 영민c 2009.09.18 17:08 ADDR 수정/삭제 답글

    집에 보일러 하나씩 놓아드려야 할거 같은 이야기네요.. ㅎㅎ

  • 필로스 2009.09.18 17:15 ADDR 수정/삭제 답글

    같이 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 Favicon of https://easysun.tistory.com BlogIcon easysun 2009.09.19 17:30 신고 수정/삭제

      ㅎ 떨어지면 더욱 그리운 법이죠..

  • Favicon of http://greendayslog.tistory.com BlogIcon 그린데이 2009.09.18 17:37 ADDR 수정/삭제 답글

    눈물이 찔끔~ 멀리있는 아들 위해 유학비용 마련하시는 부모님을 대하는 제 막둥이 동생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합니다...ㅠㅠ

    • Favicon of https://easysun.tistory.com BlogIcon easysun 2009.09.19 17:31 신고 수정/삭제

      그러니까요.. 부모님 마음을 자식이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 Favicon of http://inuit.co.kr BlogIcon inuit 2009.09.19 14:51 ADDR 수정/삭제 답글

    누님.. 고생하시는군요. 가로본능이라니..

    식구가 함께 사는게 제일 좋은데 말이죠. ^^

    • Favicon of https://easysun.tistory.com BlogIcon easysun 2009.09.19 17:32 신고 수정/삭제

      사실 저는 비교적 무덤덤한 편인데도..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듯합니다.

  • Favicon of http://recollect.egloos.com BlogIcon 희정씨 2009.09.20 10:10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완전 공감입니다. 저희 가족도...
    저중학교땐 아빠혼자 중국에.
    저 고등학교땐 아빠/저 중국에. 나머진 한국.
    20대를 살짝 벗어났을 땐 저만 뉴질랜드에 가족은 중국에.
    여차저차 지금은 엄마아빠는 중국에/ 전 동생들과 여기에.
    계속 뭔가 비는 결손가정으로살아가고 있다지요...;;

    뭔가 비는 거에 참 무덤덤하게 지내왔는데 이거보니 급 공감되요@_@

    • Favicon of https://easysun.tistory.com BlogIcon easysun 2009.09.21 14:50 신고 수정/삭제

      흠.. 정말 총체적이며 확산적인 결손가정인걸요 -_- 우리나라에도 떨어져 사는 가족들 정말 많은 거 같아요.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9.20 20:26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래도 결손가정이라는 표현은.. ㅜ.ㅜ 우울해지는군요..
    저.. 요즘 베개 끌어앉고 자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침대는 떨어질 공간이 없습니다.. 거의 반 밀패식으로 배치를 해봐서.. 그건 다행이군요..

    • Favicon of https://easysun.tistory.com BlogIcon easysun 2009.09.21 14:51 신고 수정/삭제

      ㅎㅎ 베개 끌어안고 자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니 너무 처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 Favicon of http://j4blog.tistory.com BlogIcon j준 2009.09.21 21:28 ADDR 수정/삭제 답글

    이곳에서 보는 그들의 삶도 곤고해보입니다. 이런 현실이 씁쓸하네요.

    • Favicon of https://easysun.tistory.com BlogIcon easysun 2009.09.22 10:01 신고 수정/삭제

      ㅎㅎ 저는 꼭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색다른 경험을 통해 또 다른 것을 배우는 거죠^^ 좀 더 애틋해지기도 하고 소중함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그럴수 있다면 좋은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