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 찬 대화법

맛보기 2008.02.23 18:38

원고청탁을 하는 신문사에서 묻는다. "내일까지는 마감을 해주시겠습니까?" 나는 그 정도면 충분히 쓸 시간이 되므로 "예, 그럼요!" 하고 확신에 찬 답을 줄 수 있다.

아들이 묻는다. "엄마가 아빠한테 얘기해서 머리 파마를 좀 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 물론 평상시 '아빠'가 '엄마' 말을 존중해 주고 또 '방학이니 허락해주자'는 명분도 있지만, 나는 "그래, 엄마가 허락 받아줄께"라는 확신에 찬 대답대신 "엄마가 최선을 다해 해볼께"라고 말한다. 허락은 내가 내리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리 가능성 면에서 자신을 가진다고 해도 확신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격에 따라서는 모든 것이 확신에 차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특히나 업무상 파트너들 간의 대화에서는 결과를 확신하는 일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쨌든 성격이 그러하다 보니 함부로 확신하는 얘기를 잘 하지 못한다.

그런데 업무상 대화를 나눌때 신중을 기하는 습관이 가끔씩 마음을 답답하게 할 때가 있다. 어제는 두 번씩이나 나의 대화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있었다.

모 기업과의 미팅에서 온라인 PR에 대한 계획들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결과를 개런티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나는 비록 우리 제안한 전략들과 실행안에 대해 '자신'있었지만 그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아, 어느 누가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를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새삼스레 옛생각이 났다. 드림 커뮤니케이션즈를 운영할때 홍보대행사에서 고객사에 홍보계획을 제안하면 종종 조선일보에 기사를 낼 수 있는지를 묻곤했다. 홍보 일은 전체의 트렌드와 기업의 현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매체분석을 통해 미디어에 전달할 자료(컨텐츠)의 시각을 잡는 일을 중점적으로 한다. 시류에 맞고 기업 활동에 팩트를 전달하면서 매체가 주로 다루는 성격의 자료를 전달한다면 큰 무리 없이 게재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마법의 주문같은 '조선일보 기사 개런티'를 하지 못했다. 비록 내가 조선일보에 있을때 조차도 내 기사가 지면에 실릴지 말지를 개런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광고가 많아져 지면이 축소되거나 갑자기 더 중요한 기사가 등장하면 언제라도 지면게재가 취소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요한 미팅에서 '개런티'를 외치지 못한 나의 소심함 - 물론 별로 극복하고 싶지 않은 소심함이다 -을 자책을 했는데 이후에 다른 업무 미팅을 갖는 자리에서 또 한번 나의 소심 대화법이 이슈가 된 일이 있었다. 이전 미팅에서 나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 '생각해보겠다'고 했던 것을 상대는 '관심이 없다'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후에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진의를 이해시키기는 했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고 보니 기운이 빠졌다.

갈수록 사람들은 확신을 원한다. 물론 나도 확신을 원한다. 그런데, 확신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확신한다 말할 수 있는가. 자신감을 갖는 것과 확신에 찬 답을 주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일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런 대화법의 오류가 종종 커다란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이유가 되곤 하니, 소심 대화법은 확실히 초스피드 시대를 살아가는데는 장애 요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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