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청바지의 추억

산에오르기 2007. 10. 23. 17:24
(이 글은 전자신문 '아침을 열며'에 기고한 '청바지 예찬'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유독 청바지를 좋아했다. 그때야 누구나 편의성 때문에 청바지를 즐겨 입고 다녔지만 나의 '청바지 사랑'은 유별났다. 그땐 워싱된 청바지를 찾아 보기 힘든 때였는데 워낙 청바지를 많이 입어서 색이 변하고 솔기가 닳은 것을 제 멋에 겨워 입고 다녔으니 청바지 면에서는 패션을 앞서간 셈이다.

졸업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청바지만 보면 사고 싶어지는 병을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2001년의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빈티지' 패션이 유행하면서 낡다 못해 찢어진 청바지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아무리 청바지 광이었지만 선뜻 찢어진 청바지를 입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뭔가 반항과 저항, 혹은 일상적인 규범과 관습에 대한 부정을 내포하는 듯하여, 30대 후반의, 고객을 만나야하는 사람의 의상으로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유학을 결심하고 입학원서와 지원서(Essay)를 쓰던 때쯤, 난 큰 맘 먹고 찢어진 청바지를 사서 입었다. 어머니는 "애도 아니고..."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셨지만 나는 마치 크게 벼르던 예를들어 카메라나, 노트북이나, 혹은 자동차를 장만한 뿌듯함에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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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헌팅턴 라이브러리에서>

늦깍이 학생의 유학생활은 찢어진 청바지의 '파격' 만큼이나 '파격적으로' 힘이 들었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파격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버텼던 것 같다.

대학원 과정을 마칠 즈음 나는, '청바지'와 같은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다. 경험도 전혀 없이 의류업을 시작하겠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었다. 청바지는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에 등장한 성공 비즈니스의 대표 격이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는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금광을 발견하기 위해 미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도전과 모험에 바탕을 둔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진짜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탄생한 것은 청바지사업이었다.

청바지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레비 스트로스(Levi Strauss)는 어느날 금광촌의 인부들이 늘 헤어진 바지 꿰매기에 여념이 없는 것에서 착안해서 천막을 만드는 천으로 쉽게 닳지 않는 바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골드러쉬로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 실제 금맥을 찾아 성공한 사람들의 수십 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청바지를 사서 입게 되었으니 청바지가 얼마나 성공적인 비즈니스 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범용성'을 가지면서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을 원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작업복'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끊임없는 변신을 이루었던 그 혁신의 정신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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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Favicon of http://happicialist.tistory.com BlogIcon Energizer Jinmi 2007.10.23 18:06 ADDR 수정/삭제 답글

    사장님 청바지 중에 뒷 주머니 없는 거 있잖아요~
    그게 잘 어울리시는거 같아요^^

    아, 그리고 오늘 베니건스 넘넘 맛났어요^^

  • Favicon of http://ilovecontents.com BlogIcon ILoveContents 2007.10.23 18:39 ADDR 수정/삭제 답글

    찢어진 청바지 경영학 이군요.
    전자신문 빠지지 않고 보는데 글을 놓쳤군요..
    재미있는 글 입니다.

    • Favicon of https://easysun.tistory.com BlogIcon easysun 2007.10.23 18:45 신고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 전자신문에는 내일자로 나올 예정입니다.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10.23 22:45 ADDR 수정/삭제 답글

    어제 저.. 청바지였습니다.. ^^
    워낙 주책없어서 공식이든 비공식적인 자리던 청바지에 셔츠 차림을 즐겨하니.. 어쩔 수가 없네요.. ^^ 그래서 아직 성공을 못하나?.. ^^

    • Favicon of https://easysun.tistory.com BlogIcon easysun 2007.10.23 23:22 신고 수정/삭제

      예. 알고 있었어요. 기회를 놓쳐 아는 척을 못했지만요^^. 청바지 좋죠. 청바지파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 Favicon of http://ilovecontents.com BlogIcon ILoveContents 2007.10.24 11:51 ADDR 수정/삭제 답글

    방금 전자신문을 읽었습니다. 80년대 대학에서 브랜드 청바지를 입으면서 갈등,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나서의 해방감의 표현 공감이 갑니다. 저 대학때는 나이키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공격의 대상이었고 그럼에도 그 공격받는 것 까지 좋아해서 나이키를 신는 튀는 친구가 있었죠.
    요즘 부쩍 넥타이와 양복을 거추장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여름까지도 캐주얼하게 다녔는데 날씨가 차지면서 다시 정장인데 벗어 던지고 해방되고 싶군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옷장에 근무하면서 입을만한 캐주얼이 없으니 새로 사야하는 고민이 생깁니다. ^^ ㅎㅎ

  • Favicon of http://micegrey.com BlogIcon 박노아 2007.10.26 00:41 ADDR 수정/삭제 답글

    뉴욕에 살면서 어느날 보니 1년을 청바지 2개로 나고 있더군요.
    '청바지'가 아니라 제가 입는 '모든 바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AG라는 Adriano Goldschmied는 지금은 입지 못할 상태가 되었지만 계속 가지고 있을만큼 애정이 붙었지요.

    청바지에 하얀 운동화은 정말 멋진 순수조합입니다.

    • Favicon of http://www.sunblogged.com BlogIcon easysun 2007.10.26 10:23 수정/삭제

      청바지에 하얀 셔츠도 괜찮은 조합이죠. 박노아님도 청바지파의 일원이시네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