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읽기 15] 죽을 만큼 웃긴가? - 이동엽

책읽기 2014.08.01 15:19

문을 열고 이상한 공간에 들어섰다


평범한  차림의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는데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았다.  흔히  연예인들은  광채가  난다고  하지만,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오가는  사람들은  광채라는  미끈한  단어로는  표현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었다.  스치고  지나면서도  씩씩하게  안녕하십니까?’를  외치는  그  눈  빛에서,  그  웃음에서,  그  표정에서  활기찬  에너지가  전해졌다.  벽에  걸린  현수막에는 죽을 만큼 웃긴가?’  라고  적혀  있다.  죽을  만큼  웃기기  위해  모두가  땀을  흘리는  공간,  바로  SBS  개그  프로그램  웃찾사 (웃음을 찾는 사람들)’  대본  연습실이었다.



                        <웃찾사 대본 연습실에 걸려있는 현수막>


웃찾사의  대표  코너라  할  수  있는  누명의  추억을  이끌고  있는  이동엽씨를  만났다.  동그란  안경의  주인공은  상당히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개그맨으로  데뷔한지  십년  가까이  되는  웃찾사의  터주대감이다.


요즘은  동네  꼬마들이  저를 보면  출렁~ 출렁!’,  ‘넘실~ 넘실!’ 하고  누명의  추억에  나오는  대사로  반겨  줍니다.  웃찾사의 인기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죠.”


그는  개그  프로그램은  초등학생이  기억을  하느냐로  인기  여부가  판가름  난다며  웃찾사의  상승세를  자랑했다.



       <2012년 다시 부활한 웃찾사> 


웃찾사는  한  때 (2003/2004)  시청률  30%에  육박할  만큼  인기를  끌었던  SBS의  간판급  오락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가  이런  저런  악재들이  겹쳐  대박 코너없이  몇 년이  지났고,  시청률이  계속  떨어졌다.  시청률이  떨어지니  방송  시간대를 바꾸기  시작하고,  방송시간이  오락  가락  하니  더  사람들이  안보게  되는  악순환이  겹쳤다.  급기야  2010년부터  2년간은  방송이  폐지되는  고난의  시간도  겪었다.  2012년  다시  부활해서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 번  죽었던  프로그램,  금요일 밤  11시대의  편성, ‘개그 콘서트 (개콘)’ 라는  막강한  경쟁 상대 첩첩산중,  난제들이  쌓인  가운데  힘겹게  재출발한  웃찾사는  최근  들어  조금씩  시청률을  높이며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


요즘 들어  주변에서  웃찾사  방청권을  구해 달라는 지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웃찾사  언제하는지도  몰랐고, 심지어  다시  부활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조금씩  변화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 번  추락한  경험이  있어서  인지  상승세를  맞는  웃찾사 팀의  활기  속에는  '죽을 만큼 웃긴가?'라고 물을 만큼 비장함도  섞여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얻어 내는  일.  어떻게  웃음  거리를  찾는지  물었다.





아이디어  회의를  하지만,  사실상  일상이  모두  소재가  될  수가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개그의  촉각을  세워  두어야  합니다.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순간에  소재를  찾아  성공한  사례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죠.”


누명을  쓰고  무인도나  산  속에  숨어  사는  남자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누명의 추억’  코너의  탄생도  사실  첫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아이디어  회의를  하려고  모였는데  막내  후배가  한  시간  정도  늦게  나타났다.  그  후배는  너무나  민망했는지  90도로  고개를  숙이고는  여러  번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이동엽씨는  늦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야단도  치지  않고  넘어  갔는데,  주변에서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던졌다고 했다.


동엽이가 후배를 잡는군!”


너무 그렇게 애들 기합주지 말아라..”


사소한  일이었지만  자신이  누명을  쓰고  변명을  하는  과정에서  누명의 추억’  코너의  기본  얼개가  아이디어로  나왔다.  누명 쓴  얘기를  말로만  풀어내다  보니  너무  단조로워  출렁, 출렁’,  ‘넘실 넘실’  등의  의태어를  넣어  귀에  쏙쏙  박히는  효과를  만들어  냈다.





그가  일상의  순간  순간도  놓치지  않으며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것은  지금  하는  일이  어렵게  찾은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원래  이과생이었습니다.  기계공학과를  나왔죠.  취직하기  쉬운  과를  택하라는  부모님의  바램  대로  대학진학을  했지만,  결국  무대를  버릴  수는  없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그는  장기자랑의  스타였다.  대학  때도  전공과는  상관없는  연극  동아리  활동에  열중 했다.  하지만 틈틈이 무대에 섰던  이십  대 중반까지도  그는  늘  진로를  고민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큰  돈을  벌지  못해도  평생  이  일을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스물  아홉 살까지  한  달에  백만  원  만  벌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램이었습니다.”


그런  간절함을  놓지  않으니  절로  길은  찾아 졌다.  이제  남은  숙제는  장수하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다.


갈수록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사람들의  웃음을  끄집어  내는  게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  코너가  인기를 끌면  1, 2년은  무난하게  유지됐는데,  요즘은  1년  채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유행어  하나에  마음 껏  웃어주거나  넘어지는  장면  하나로  쉽게  웃어주는  시청자들은  이제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  익숙함  속에서도  뭔가  색다른  것을  전달해야  살아  남을  수  있어서  매일  매일을  공부하고  고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제  소원은  평생   이  일을  하는  겁니다.  한  십년  후에도  이렇게  제  프로그램에  대해서,  연기에  대해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십  년쯤이면  하고  있는  일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져서  시들해지기도  하건만,  자신이  하는  일에  지치지  않는 애정을  갖는 그가 멋져 보였다.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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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14] 압구정 크리스의 갬블링 어드벤처 (Gambling Adventure) – 노상범

책읽기 2014.07.07 20:22

십년 전쯤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올인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워낙 주옥 같은 명 장면들이 많지만, 역시 주인공 김인하 (이병헌분)가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세계 포커대회에 참석해 마지막 베팅에 올인하며 우승하는 모습을 빼놓을 수가 없다. (드라마 제목이 올인이니…)  포커 게임의 룰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긴박한 순간에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칩을 밀어 넣으며 올인의 승부수를 띄우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하다.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대리만족을 주어서 일까? 도박을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 만화 등등)는 언제나 인기를 모은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포커나 고스톱 등의 도박은 어쩌다 명절에 한번씩 녹슨 베팅 감을 되살리는 정도의 게임일 뿐이니 도박사는 작품에서나 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서, ‘멀쩡한’ (평범하다는 의미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 가운데 프로 갬블러의 쪼는 맛이 어떤 것인지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이브레인 컨설팅의 노상범 대표가 그 주인공. 그는 한때 홍익인터넷이라는 잘나가는 에이전시를 설립했던 경력도 있고 현재는 OKJSP라는 개발자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그의 경력에는 압구정 크리스로 이름을 날렸던 도박사의 그것도 포함돼있다.



                  (하우스의 플레이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압구정 크리스')


본격적으로 포커판에 자주 드나들게 됐던 건 2005 12월 부터였는데, 다음 해 1월까지 언더 하우스를 돌아 다니며 40전 전승을 기록하기도 했었죠. 그 당시 약 한달 간 4천만원 정도를 따기도 했습니다. 압구정, 로데오 일대의 하우스에서는 크리스에게 걸리면 털린다는 말이 유행했죠


그의 주 종목은 텍사스 홀덤 (Texas Hold’em)’으로 현재 포커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다. 텍사스 홀덤은 각 플레이어가 2장의 카드를 들고 (pocket card) 테이블에 깔려있는 5장의 공유 카드 (community card)와 합쳐 총 7장의 카드 중에서 나올 수 있는 최상의 족보로 승패를 가른다. 자신의 패를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조합을 잘 고려해야 하는 고도의 두뇌 게임이다.


그가 처음 텍사스 홀덤 게임을 배우게 된 것은, 미국에서 였다. 86, 대학교 2학년때 가족이 함께 이민을 갔으나 사정이 바뀌어 혼자만 남게 됐다. 91 1월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실연의 아픔을 달래지 못해 폐인생활(본인의 표현으로)’ 을 하다가 룸메이트를 따라 카지노를 가게 됐던 것. LA 인근 커머스 카지노(Commerce Casino)에 드나 들며 텍사스 홀덤 게임을 처음으로 익히게 됐다. 초보에게 승리는 녹녹치 않았다. 세번에 한 번 꼴로 돈을 따면서 재미 삼아포커를 쳤다.


그러다가 94년 귀국을 했고 그 후 십년 정도는 포커를 잊고 살았다. 97년 홍익인터넷을 설립해, 열심히 사업도 했었고, 실패하는 아픔도 겪었다. 2005년 후배가 홀덤 게임을 개발한다고 해서 텍사스 홀덤의 룰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홀덤과의 재회를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강남역 부근의 카지노 바에서 재미 삼아 홀덤을 치게 됐어요. 그 당시 압구정동 일대에 언더 하우스가 우후죽순 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하우스에 가끔씩 들르기는 했었는데 그 해 말에는 우연히 회사의 직원이 모두 파견 근무를 가게 되고 부인도 아이들과 필리핀에 가게 되어 몇 달동안 혼자 지내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하우스 죽돌이가 된 거죠.”


이 때 그는 40전 전승을 올리기도 했고 한 달에 4, 5천만원을 따기도 했다.


정말 기세 좋게 판돈을 쓸어 담을 때였는데 한 번은 타짜에게 걸려 하루 밤에 천팔백만원을 잃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돈을 따는 것도, 잃는 것도 쉬운 곳이 바로 포커판이니까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림으로도 짐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40전 전승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당시는 텍사스 홀덤이 (국내에)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게임의 룰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LA에서 카지노를 드나들며 게임을 해 본 경험이 도움이 됐던 거죠. 게다가 자꾸 치니까 실력도 늘더라구요.”


압구정 크리스는 실력이 없이는 홀덤 게임에서 돈을 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흔히 운이 좋아서 원하는 카드가 들어와야 게임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포커 게임의 승패는 ‘베팅 실력이 좌우한다는 설명이다.


카드의 흐름을 보고 상대의 패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카드의 패가 펼쳐지면서 상대가 어떻게 베팅을 하는지, 상대의 스타일이 어떤지 아주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판단을 아주 짧은 시간에 내려야 하는 것이죠!”


게임을 하다 보면 참여한 사람들의 스타일이 드러나게 된다. 흔히 좋은 패인지 나쁜 패인지를 표정을 통해 읽을 수 없도록 포커 페이스 (Poker Face)’를 가져야 이길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자신의 스타일을 예측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상대가 자신에 대해 블러핑 (좋지 않은 카드를 가지고 배팅을 크게 해서 이기려 하는 속임수)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믿게 한 후 오히려 좋은 패를 가지고 승부를 건다든지, 다른 사람의 허를 찌를 수 있어야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다. 이렇게 포커 게임은 한 두 판으로 결정이 나는 것이 아니라 2-3 시간 동안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승부를 거는 드라마라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언더) 하우스에서 돈을 따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두 배 정도는 실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하우스에 주는 커미션이 정상적인 카지노의 다섯에서 열 배는 높았기 때문에 그런 커미션을 제외하고도 돈을 따기 위해서는 비등한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죠.”


결국 매일 저녁, 화려하지만 실속 없는 돈의 잔치를 계속하다가 그는 20066, 돌연 하우스 은퇴선언을 했다.


어느 순간 돈이 돈 같지가 않았습니다. 머리 써서 하는 카드 게임도 지겨워 졌죠. 함께 판돈을 놓고 겨루는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어요.”


다시, 하우스를 끊고 땀 흘려 하는 사업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직원들 월급 줄 돈이 떨어져 하우스를 다시 찾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하우스에서 딴 돈으로 급여를 지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세계적인 플레이어 마이크 킴 (Mike Kim)을 만나 이번에는 갬블 사업을 함께 하게 됐다.



(한때 사업 파트너였던 마이크 김의 포커 대결 영상)


2007 7월 워커힐 호텔 카지노 테이블 6개를 임대해 외국인 대상 포커룸을 운영하기도 했고 필리핀 마닐라로 무대를 옮겨 포커룸 사업도 했다. 아시아 최초의 토너먼트 대회인 아시안 포커 대회의 지분을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2009년 여름까지 도박을 사업으로 하다가 그만뒀다.


그만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당시 한국에 아이폰이 판매되고 SNS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는데 언제까지 일확천금의 신기루를 쫓아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것인지깊이 고민하다 보니 저절로 답이 찾아 지더군요.”


갬블러이기도 했고 도박을 사업으로도 해보았지만 가장 신물이 났던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었다. 포커는 기본적으로 블러핑이 존재하고 남을 속여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게임 테이블이 아닌 곳에서도 서로를 속이고 돈을 마음대로 쓰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게 싫어서 어느 순간 떠날 생각을 했고, 떠나서도 미련은 남지 않았다.


포커 플레이어로 오래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평소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합니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돈 관리를 잘해야 하고 체력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하죠. 저 같은 경우에는 도박을 사업으로 하다 보니 포커 게임에 대한 진지함은 오히려 약해졌던 것 같습니다.”


미련은 없지만 간혹 영화 주인공처럼 올인을 외치던 때의 흥분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느낌은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첫사랑의 설레임 같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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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13] 잉여로운 남자의 '조기 은퇴' 이야기 - 이형열

책읽기 2014.06.27 18:32

내가 페이스북에서 친구 맺고 있는 1,600여명 가운데 가장 잉여로운 사람이 있다. 그는 기술의 흐름에 관심을 갖고 과학의 대중화에 대한 글을 쓰며 클래식,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미술작품 감상을 즐긴다. 틈 나는 대로 트레킹을 하며 커피와 와인 등 기호 식품에 대한 식견도 수준 이상이다. 북적대는 서울에 비하면 모든 것이 여유로운 동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고양이를 기르며 살고 있다.


1999년 로스앤젤리스(LA)에서 알라딘 USA 설립부터 함께 하다가 일년 반전에 조기 은퇴를 선언한, 자유로운 잉여족이형열씨를 만났다. (이형열씨는 지난 4월부터 약 두 달간의 일정으로 서울에 머물고 있다)  사실 그에게 인터뷰를 청한 것은, 우리 마음 속의 로망이기도 한 한국을 떠나 살기조기 은퇴의 비법에 대해 듣고 싶어서 였다. 그러나 두 시간 여 얘기를 나눈 후에 든 생각은 그는 한국에서 함께 살고 있으며 조기 은퇴라는 형식을 빌어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운동권의 낭인으로 살았던 이십대


지금 오십대 중반기로 접어드는 사람들이 다 그랬겠지만, 저의 이십대는 사회의 변혁기에 민주화라는 설익은 사명감을 품고 낭인처럼 떠돌던 시기였습니다.”


1979년 서울대에 입학한 그는 80 5월 광주 민주화 사태가 벌어지고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공장에서 일을 했다. 어떤 조직적인 활동이었다기 보다는 겨울방학 때 러시아 혁명사를 읽고 난 후 민중들의 삶에 가까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후에는 언더 써클(지하조직)’ 학림의 조직원으로 세미나를 조직하고 정세 분석 등 활동을 했다. 곧 운동권에 대한 대대적인 수배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도망자 신세가 그리 고달프지만은 않았다. 지인들의 자취방을 전전하다 입주과외 (사실 이것도 불법이었지만) 자리를 소개 받아 나름 등 따시고 배부르게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두 명씩 친구나 선배들이 도망 중에 붙잡혀 군대를 가게 됐고, 그 역시도 입대(82)도바리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그러나 그의 방랑 생활은 입대로 마무리 되지는 않았다. 그가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기 까지는 그로부터 6년여의 세월이 더 걸렸다.


제게는 민주화 운동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세계관에 끌렸던 것이고, 뭔가 새로운 것을 조직해서 만들어 나가는 일이 나를 활기차게 만들었습니다.”


학교 보다는 바깥 세상에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많아서 일까. 그는 제대 후에도 택시를 몰며 운수 노조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택시기사로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분신했던 박종만 열사의 미망인과 추모 사업회 활동도 했다.


88 6.10 항쟁 이후 노동 현장에서 나온 그는 그 동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스스로 반성을 하면서 88년 가을에 3학년 1학기로 복학을 했다. 90년 여름에 졸업하기 까지 그렇게 그의 대학 생활은, 청춘을 불사르며 세상의 곳곳을 몸으로 부딪쳤던 경험까지를 포함해서, 십년 넘게 지속되었다.

 

서른 즈음에컴퓨터에 빠지다


88년 늦깎이 학생으로 복학한 후 6개월은 공부에 매진하며 열심히 학생으로 충실한 삶을 살았다. 대학원 진학원도 생각했다. 그런데 세미나 발제용으로 PC를 산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16비트 AT 컴퓨터를 산 이후 컴퓨터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더욱 더 깊이 빠져 드는 늪과 같았다.


대학원 시험 공부를 할 때 였죠. 집에 있으면 컴퓨터 앞에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다 보니 집을 떠나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자고 결심을 했어요. 그랬더니 공부하다가 지루해지면 부근의 동방서적에 가서 어느새 컴퓨터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렇게 도저히 컴퓨터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드디어, 대학원까지 포기하고 컴퓨터의 길을 택하게 됐다.

그가 컴퓨터에 빠지게 된 것은 사소한 사고로부터 시작됐다. 컴퓨터를 사고 얼마 되지 않아서 무엇을 잘 못 만졌는지 컴퓨터가 포맷이 됐다. 까만 화면에 커서만 깜박거릴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화면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무거운 본체를 들고 용산을 오고 가기를 몇 번씩 했다. 그랬더니 (귀찮았던지) 용산 컴퓨터 상가에서 OS를 다시 까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복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받쳐주니 겁날 것이 없었다. 급기야는 컴퓨터를 조립하는 수준에 까지 이르게 됐다.


그 당시 글쓰는 사람들도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컴퓨터를 잘 모르니까 자꾸 제게 물어왔습니다. 어떤 것을 사야 하냐는 조언부터 들어 드리다가 나중에는 컴퓨터를 만들어 드리는 단계가 됐죠. 인문 쪽에 계신 분들 가운데 제 손을 거친 컴퓨터를 쓰시는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최영미 시인 컴퓨터도 제가 조립해 드렸어요!”


한 두 번 취미로 시작한 것이 본업이 되기 시작했다. 컴퓨터 조립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91년부터는 컴퓨터 강의도 시작했다. 컴퓨터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컴퓨터의 원리를 가르쳐 주는 칼럼을 연재하다가 책도 냈다. “컴퓨터 한 달만 미쳐보자라는 책으로 컴퓨터 도사의 이미지를 굳히게 된 것.


책을 출간하면서 출판사 디딤돌 사장님과 가까워졌고 회사를 합쳐 디딤돌에서 전산실을 만들고 컨설팅, 벤처 투자 하는 일에도 관여하면서 그렇게 다가올 또 다른 운명의 물결에 조금씩 휩싸이고 있었다.

 

도미(渡美)’ 인터넷으로 책나르기


사실 저는 이민을 결심한 적은 없었어요. 그냥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 가게 됐고 그곳이 편하게 느껴졌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열심히 했고, 그렇게 좀 오랫동안 그곳에 살고 있을 뿐이죠.”


한국을 떠나 사는 것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을 했다.


기술의 발전과 그 흐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는 컴덱스 (80, 90년대 컴퓨터 산업의 흐름을 주도했던 전시회), 북 엑스포 등을 열심히 쫓아 다니며 선진문물을 익히는데 주력했다. 미국은, 그에게는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정보의 샘물인 셈이었다. 90년대 이런 저런 기회로 미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왠지 그 곳이 편안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엔 신기한 것이 많았죠. 라스베가스 호텔들의 인테리어나 장식들, 각 호텔마다 벌이는 쇼들은 새로운 경험을 던져 주었던 것같습니다. 비단 라스베가스 뿐 아니죠. 아무 서점에 들어가서 잡지만 펼쳐도 폰트의 비주얼도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얕은 지식을 가지고 우려 먹으며 산다는 생각이 들던 즈음이어서, 무언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연히 회사가 투자한 회사(미국 현지법인)에 머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6개월 정도 후에 MBA 공부를 해볼까 고민하던 차에 한국에서는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그 때 접고 서울로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그냥 그곳에 머물렀다. 꼭 그곳에서 살겠다는 뜻은 없었다. 다만 그는 어느 거리에나 재즈가 흐르고 갤러리가 가까이에 있는 곳, 와인을 상대적으로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곳이 그저 좋았다. 무엇보다 나이를 따지지 않고 상대를 존중해주는 사람들의 인식도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요인 이었다고 회상했다.


MBA 대신 MCSE (Microsoft Certificated System Engineer) 자격증을 따서 사설 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 사업의 기회를 만나게 됐다.


운동권 동지로 알게 된 조유식씨(인터넷 서점 알라딘 창업자)가 98년 미국에 머물면서 아마존과 같은 인터넷 서점을 만들겠다고 해서 아이디어를 보태다가 사업 파트너로 참여하게 됐다. 한국 알라딘 설립(99 7)에 이어 그해 12, LA에서 알라딘 USA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한인 커뮤니티에 인터넷 서점은 정말 요긴한 서비스였다. 재미 한인의 수는 210만명 (2010/외교통상부)을 넘어서는데 주요 도시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소규모 서점으로는 이들의 한국 책에 대한 다양한 수요를 맞출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근처에 서점에 가도 볼 책이 없고, 볼 책이 없다 보니 책을 읽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던 시기였다.


사업의 핵심은 미국 전역에 흩어진 한인 교포나 유학생들에게 알라딘USA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었다.


인터넷을 쓰면서 책에 대한 수요가 가장 많은 층을 공략했습니다. 바로 학교 였습니다. 야후 디렉토리 서비스에서 미국 전역의 주요 대학 리스트를 만들고 각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단과 별로 한국인들의 성, (Kim), (Lee), (Park), 이런 식으로 검색을 해서 약 4만명의 DB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에게 알라딘USA를 소개하는 이메일을 보냈죠.”


노가다이메일 마케팅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알라딘USA에서 책을 사본 사용자들에게 감사 편지도 많이 받았다. 한 사용자는 오랜만에 소설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며 장문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초기 3년간은 투자 비용이 커서 적자를 기록했지만 점차 사용자가 확보되고 재방문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그 이후 10년은 지속적인 흑자를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책을 통해 교포들이 다시 한국과의 끈을 잇게 됐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보니 알라딘USA는 본질은 문화 사업인데 너무 물류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서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부터 지속적으로 서부에 네 곳, 동부에 세 곳에 알라딘 서점을 냈죠.”


그는 오프라인 서점을 여는 일에 직접 나섰다. 일곱 개의 서점을 내고 나니 서서히 지치기도 했고 일의 재미도 줄었다.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기 시작한 때가 이 무렵이었다.

 

조기은퇴는 다음 여정의 방향을 찾는 과정


“2012 12월 말로 하던 일을 그만 두었는데 저를 잘 아는 선배가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 그럴 때도 되었지.. 십 년 주기로 삶을 포맷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지!’ 그 전까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말 같았습니다!”


알라딘USA에서 손을 떼고는 다른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 그는 조기 은퇴라고 자신의 상태를 표현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앞으로 꽤 많이 남은 후반부 인생의 방향을 찾는 과정이라고 읽힌다. 그런 범상치 않은 결정을 하게 된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뭔가 새로운 흐름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 생활이 전면적으로 디지털화되면서 모바일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고는 아이폰4가 출시될 때는 일부러 새벽부터 줄을 서는 부지런도 떨어 보았다. 거대한 모바일 생태계가 분명 세상의 변화의 한 축인 것만은 틀림 없었지만, 그게 전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80년대 후반처럼 무조건 기술의 트렌드에 몰입할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내 이십 대를 바쳐 민주화를 위해 나름 노력했고, 또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기도 했는데 이명박 정부 이후 한국 지배 세력은 너무나 속물화 되고, 일반 대중들은 살기 힘들어 지는 등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었죠.”


이런 정신적인 좌절이 그의 인생의 향방을 (모바일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술의 흐름에 집중할 수없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미국에 거주했지만 인터넷 서점 사업을 하면서, 한국에서 유행하는 책의 흐름을 뒤 쫓으며 살았다. 책의 흐름은, 사회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한국 사회의 변화를 그대로 느끼며 생활 했던 여파였는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내가 알아왔던 민주화, 사회를 보는 시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알라딘 USA 이후 서둘러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고 조기 은퇴를 선언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겠죠.”


조기 은퇴를 선언하고 그가 시작한 것은 공부였다.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우주에 대해서, 평소 자신이 관심있었던 자연과학에 대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해외 석학들의 책을 읽다 보니 레퍼런스로 거론된 책을 다시 찾게 되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이 생겼다. 1년에 약 100여권을 읽으며, 페이스북을 통해 생각을 나누며 그렇게 그는 다음 여정의 방향을 찾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사람들이 제게 조기 은퇴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고, 생계를 꾸리기 위한 것이 첫번째 이지만, 일 이외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 남성들은 지위에 대한 편향을 버릴 수가 없어서 나이 들어 일을 그만두고 노바디(nobody)’로 돌아가는 것을 못견뎌 하죠.”


그는 노바디의 불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덕분에 그냥 알고 싶은 것을 탐구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이 혼란의 시대에 한국 정치가 주는 절망감에 대해, 적어도 상식적인 민주 시민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지키면서,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있다.


*이형열씨 페이스북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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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12] 끝없는 성장을 꿈꾸는 ‘노마드 (Nomad) 키드’ - 강경훈

책읽기 2014.06.13 17:25

삼십 대 초반의 남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삶의 터전을 일곱 번이나 바꿨다. 서울에서 태어나 열두살때 미국 텍사스주의 휴스턴으로 유학을 떠났고 다시 캘리포니아 벤츄라로 이사를 했다. 대학 졸업후 홍콩에서 일을 했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는 싱가포르로 옮겨 인시아드 (INSEAD)에서 MBA 과정을 공부했다. 그 곳에서 사업도 했다. 그러다가 몇 달 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앱 기반의 차량 예약 서비스 우버 코리아 (Uber Korea)의 지사장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강경훈 대표를 만났을 때 노마드 키드라는 있지도 않은 두 단어의 조합이 떠오른 것은, 지구촌 곳곳을 옮겨 다니며 생활했던 그의 독특한 이력과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고 성장하고 싶어 하는 그의 눈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곱번의 이동에서 그는 무엇을 배웠는지, 흔치 않은 그의 성장 스토리를 들어보자.


말썽꾸러기 유학생이었던 청소년기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못된 학생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캘리포니아 벤추라에 살 때였는데, 당시 토니 안(HOT), 신혜성 (신화) 등의 뒤를 이어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죠.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면서도 열심히 오디션 쫓아 다니곤 했습니다. 한마디로 철없이 겉 멋만 들었던 거죠.”


그는 1세대 기러기 가족에 속한다. 아버지는 서울에 남아 있고 어머니는 자신의 유학생활을 뒷바라지 했다. 그런데도 공부에 매진하지 못하고 급기야 대학을 가지 않겠다며 부모님께 반항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그래도 그 때 함께 다니던 친구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지지해주며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아무데라도 대학에는 가라고 거의 사정하던 아버지의 말에 반항을 접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막상 대학에 입학을 하니 눈 앞이 깜깜했다. 그저 친구들이 좋아 함께 몰려 다녔을 뿐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은 별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몰려왔다.


대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아버지께서 부르시더니 이제 친구로 지내자고 하셨습니다. 순간, 만감이 교차했죠. 끝까지 아들을 믿어 주신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이제는 내 스스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도 느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변화가 그를 성장시키는 커다란 원동력이 됐다. 심리학 전공을 선택했던 그는 경제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하며 공부에 빠져 들었다. 차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진지하게 고민도 시작했다.


2005년 홍콩에 일자리를 얻게 됐다. J.P 모건 홍콩지점에서 주식 파생상품 관련 업무를 시작한 것. 처음 그가 입사할 때는 열 명 남짓했던 팀이 중국 시장이 성장하면서 1년새 30명까지 늘어났다. 아침 7시반부터 밤 9시까지 집중해야 하는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팀웍이 살아 있어 어려운 시기를 잘 버틸 수 있었다.


주식 파생업무는 숫자를 꼼꼼하게 점검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칫 한 두 곳에서 숫자가 차이가 나면 그 결과로 크게 손해를 볼 수도 있었죠. 크고 작은 실수도 했지만, 이 때의 경험을 통해 업무처리를 할 때 보고 또 보고 점검하는 습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질적인 욕망은 성장과는 다르다는 자각 


그 이후 모건 스탠리, HSBC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투자 업무까지 다양한 금융 관련 일을 배웠다. 일반 월급쟁이에 비해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노마드의 기질이 발휘된 것일까, 그는 뭔가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금융 쪽에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돈을 많이 법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버는 만큼 물질에 대한 욕망도 커진다는 것을 느꼈죠. 돈을 더 많이 벌면 더 좋은 차를 사고 싶어 하고, 더 큰 집을 원하고, 요트를 사고 싶어 하고,… 뭐 그런 식이었죠.”


좋은 자동차나 큰 집을 마다할 사람은 없겠지만, 얻고 싶은 것이 더 큰 집, 더 좋은 자동차, , 비행기로 발전하는 생활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가 선택한 다음 행선지는 공부였다. 마침 아들이 태어나, 공부를 하면서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많이 갖자는 생각도 했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어린 시절 아이와의 유대감을 쌓는 것이 지속적으로 부모 자식간의 관계 유지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로 터전을 옮겨 인시아드 (INSEAD) MBA 과정에 입학했다. 이 곳에서 자신이 일했던 금융쪽 뿐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배우게 된 것도 좋았지만 가장 큰 공부는 유럽 친구들로부터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 것이었다고 했다.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어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더 집중한다고 할까요? 그 친구들은 생활이 어려워도 공부를 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만약 취업이 안된다고 해도 태평하게 놀면서 배우는게 있겠지’, 라든지 언젠가는 취업이 되겠지이렇게 느긋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엔 많이 놀랐지만, 이들의 여유 있는 세계관으로부터 배운 것이 많았죠.”


인시아드를 졸업하고 그는 취업 대신 창업을 해보기로 했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강조하는 인시아드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창업에 관심이 많아졌던 것. 사업 아이템은 ‘Modern Korean Dining (현대적 감각의 한국 식당)’ 이었다.


싱가포르에 한국 사람들이 2만명 정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 식당도 200개 정도 되죠. 그런데 한국 식당은 대부분 고기집이거나 푸드코트에 있는 캐주얼한 곳들이었어요. 그런데 서울 와서 먹어보면 한국 음식이 다양하고 맛도 좋잖아요. 그래서 품위 있는 공간에서, 맛있는 한국 음식을 전파하고 싶었습니다.”


온실 속 화초에서 야생화로 


결론적으로 그의 식당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새로운 한식 메뉴 개발로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으며 관심을 모았지만 인테리어 등에 돈을 많이 쓰다 보니 고정비용이 지속적으로 부담이 됐다. 결국 일본의 레스토랑 체인인 와카누이(Wakanui)’에 일부 지분을 넘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를 정리한다. 절반의 성공이었던 식당 사업을 통해 그가 얻은 것은, 온실 속 화초에서 야생화로 변신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제 아내는 늘 제게 온실 속에서 곱게 살았다고 얘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식당을 할 때는 아침에 출근해서 새벽까지 식당 일에 매달려 있었고 장보는 것에서부터 식당 운영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보더니, ‘고생을 아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더군요.”


그에게는 고생해 본 경험이 너무 소중했다.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생존 본능을 배웠다고나 할까. 힘들게 살면서 오히려 사는 것의 진정한 을 체득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가장 살아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뜻밖에 대답이 나왔다.


전 로또에 당첨되거나 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없다면 미얀마 같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문명이 덜 발달해서 조금 힘들게 살아야 하는 곳에서 살면 삶의 에너지를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그러나 아직 미얀마로 향할 때는 아니었다. 올해 1월말 식당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두 달 간의 긴 인터뷰 끝에 우버 코리아 지사장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사실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에 대해 더 잘 알게 됐고,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늘 우버 티셔츠를 입고, 누구와 만나도 우버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한번도 안 써보신 분들에게는 해보라고 권유 드리고 써 보신 분들로부터는 소중한 의견을 듣습니다.”


우버는 리무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사 분들의 풀을 확보하고 소비자들이 차량이 필요할 때 모바일 앱을  통해 호출할 수 있게 해주는 차량 예약 서비스. 설립된 지 4년밖에 안됐지만 전세계 114개 도시에서 서비스 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변화가 많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그에게 활기를 준다고 했다.


(관련 글: 우버 탑승기 http://www.sunblogged.com/556


성장은 마음이 커지는 것


항상 배움과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에게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본인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좌절하지 않고 길을 찾아내는 것이 성장이라고 정의 했다.


마음이 커지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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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정치다!

책읽기 2014.06.10 19:02



인생은 정치다

저자
이종훈 지음
출판사
한스미디어 | 2014-05-30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이 책은 가정 내 정치, 직장 내 정치, 학교 내 정치,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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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라는 단어는 의미는 가치중립적이지만 느낌은 부정적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사회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정치적'이라는 의미는 소신이나 가치를 가지고 일을 처리한다는 느낌 보다는 상황에 맞춰 유리한 쪽으로 짜 맞추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사회 생활을 하면 할수록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정치적'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선은 정치적이라는 의미가 꼭 자신에게 유리한 쪽에 줄을 서서 이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어떻게 그들에게 나를 설득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 필요없이 욕먹을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어떻게 상대가 자발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이런 모든 것이 '정치력'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정치력을 발휘하는데는 대화나 소통과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도 중요하지만 관계의 밑바닥에서 관계의 지형도를 분석하는 나름대로의 계산과 통찰력도 중요할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인데,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꼭 직업으로 정치인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회사에서, 혹은 가정에서, 자식과의 관계 속에서도 정치력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때문에 정치는 우리 모두에게 일상에서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이며 행동이며 선택을 결정짓는 근간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깨달음은 나 스스로는 죽었다 깨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치에 담을 쌓고 살아온 ('나꼼수'를 듣기 전까지 정치 뉴스 조차도 외면했던) 나였기 때문이다. 이런 지혜는 이종훈 박사의 신간 '인생은 정치다'를 통해 얻은 것이다. 


이종훈 박사는 정통으로 정치를 공부한 사람이다.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회 연구관으로 일했으며 정치평론가,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가 '생활 정치'에 눈을 돌렸다. 직업 정치인에게만 정치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다. 


"간혹 선 후배 들 만나 저녁에 소주 한잔 하면서 신세한탄을 들어주곤 합니다. 제가 카운셀링을 잘하죠. 그런데 부부간의 갈등, 회사에서 윗사람 아랫사람과의 껄끄러운 관계에 대해 고민을 듣다 보면 하나 같이 사람 사이의 역학관계, 정치적 지형도를 읽기 못해서 생기는 일이더군요." 


이종훈 박사는 '생활 정치'의 중요성과 이것을 확산하기 위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책의 내용에는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위한 가정내 생활 정치에 대한 것에서 부터 학부모가 알아야할 학교 내 생활정치, 직장인이 알아야 할 회사내 생활정치 등 세 개 편으로 나눠져 있다. 입사의 정치학, 승진의 정치학, 갑의 정치학, 을의 정치학 등 세부 제목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3040 세대에게 필요한 생활정치 필독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특히 여성들이 꼭 눈여겨 보았으면 한다. 의욕도 넘치고 일도 열심히 하고, 능력도 출중하지만, 솔직히 나를 포함해서, 여성들에게 정치력은 좀 부족하지 않은가. 이제까지 '정치적'이라는 게 꼭 파벌을 만들고 줄을 서는 것으로 이해해서 멀리 했다면, 더더욱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정치력에 대한 생각부터 바꾸면서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훨씬 더 편안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맙게도 저자분이 직접 사인한 책을 들고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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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11] 파란만장 '디지털 혁신' 도전기 - 김도식

책읽기 2014.06.03 21:59

얼마전 뉴욕타임즈의 혁신 보고서라는 내부 문건이 유출됐다. 미디어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언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은 셈이니 그 결론에 미디어의 미래가 그려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대단했던 것. 우선, 6개월간 354명을 인터뷰하고 정리한 내용이 97 페이지에 달한다는 것만으로도 무게 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뉴욕타임즈는 스노우폴이라는 인터랙티브 기사로 퓰리처 상을 받았을 정도로 디지털 분야에서 앞서가는 언론사 아니던가, 그런 뉴욕타임즈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이대로는 안된다는 자성에서 변화와 혁신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미 다른 언론들에게는 충격을 안겨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국내 미디어의 디지털 전략은 어디까지 와있을까? SBS 뉴미디어부 김도식 부장에게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들어 보았다.





뉴욕타임즈 혁신 보고서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뉴욕타임즈 처럼 앞서가는 미디어도 내부 조직 면에서는 여러가지 개선점이 많다는 점에서, 디지털 퍼스트의 길이 생각 보다 멀고 험난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가 고민하는 것을 뉴욕타임즈도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모바일 등의 기술이 미디어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정보의 생산, 확산, 기사의 가치 등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렇게 지축이 흔들리는 정도의 혼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데 있다.


채널이 다양해지고 뉴스와 정보가 넘쳐나는 뉴미디어시대에 어떻게 독자(시청자)층의 관심을 잡아 둘 수 있을 것인지전통 미디어가 풀어야 할 숙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고,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상황은 한 번 더 꼬여 있죠. 독점적인 지위를 갖는 네이버가 뉴스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다 보니 언론사가 독립적으로 디지털 전략을 고민할 여지 없이 네이버 의존적인 기형적인 구조가 지속돼 왔습니다.”


2013 5월부터 SBS 뉴미디어 팀을 맡아 밤낮없이 디지털, 모바일 전략에 대해 고민했지만 여전히 그는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그가 지향점으로 삼은 것은 ()네이버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였다.


네이버의 뉴스 스탠드 정책으로 네이버로부터 유입되는 방문자수가 줄기 시작하자 대부분의 미디어에서는 네이버에서 한 명이라도 더 방문자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충격’, ‘경악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이 남발되고 같은 기사를 여러 번 다시 발행하는 덮어쓰기 꼼수도 등장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의 전반적인 언론 매체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 그러나 그는 그와는 정반대 방향을 선택했다.

 

탈네이버는 뉴스 브랜드 강화


“’탈네이버라고 하지만 뉴스 유통 경로로서 네이버를 포기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네이버에 의존해 방문자수를 늘리는 것에 연연해하지는 않겠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탈네이버 전략의 핵심은 곧 SBS 뉴스의 브랜드와 신뢰도 강화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느꼈던 가장 커다란 위기감은, 뉴스를 만든 언론사의 브랜드 파워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비단 사람들이 방송을 보거나 신문을 읽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뉴스와 정보 유통이 네이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은 네이버에서 본 뉴스로 기억할 뿐, SBS 뉴스라는 인식을 하지 않게 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SBS 뉴스를 만드는 보도국의 대표 상품은 역시 저녁시간의 SBS 8뉴스 입니다. 하지만 우리 시청자 층은 하루 종일 회사에서, 혹은 지하철에서 뉴스와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죠. 그렇다면 뉴미디어부의 역할은 메인 뉴스 이외의 시간대에 우리 뉴스가 가진 브랜드를 유지하고 지켜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탈네이버를 위한 방법을 모바일 중심 (Mobile Centric)’에서 찾았다고 했다. 모바일 전략을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고 집중해야 하는 일에 전념했다.


우선 SBS 뉴스가 확산될 수 있도록 SNS 채널 강화를 목표로 잡았다. 포탈, 특히 네이버에 집중된 확산 채널을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 다양한 채널로 분산화 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페이스북 페이지에 집중해 활성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에 5월말 현재 23만명 이상의 팬을 확보하게 됐다. 동계 올림픽이나 사회 이슈 등 (최근 세월호 사건을 포함해서) 사회적인 관심사가 몰리는 포스트에 대해서는 좋아요’, 댓글 등이 몰렸다. 뉴스 소비층의 활발한 참여가 뉴스의 한 축이 되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뉴스 확산 채널 다양화도 중요한 전략방향이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였다. 방송뉴스에서 보여주는 방송 리포트를 인터넷에서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뉴스 소비자를 끌어 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결국 인터넷, 모바일, SNS 뉴미디어’ (방송과는 다른 미디어라는 의미에서) 채널에 익숙한 뉴스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뉴스 레시피를 연구했다.

 

뉴스 소비자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개발하라!


그것은 마치 식당에서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레시피를 달리하고 신메뉴를 개발하는 작업과 같았다


뉴미디어부에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현장 취재 기자가 취재 뒷얘기를 들려주는 취재파일현장 트윗이었다. 1, 2분 내외의 방송 리포트에서는 담아내지 못한 취재 뒷얘기나 기자의 의견 등을 전하는 취재파일은 고정 독자층을 확보한 SBS 인터넷 뉴스의 인기 메뉴가 됐다. 2014 2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다루면서 검찰 출입기자가 썼던 도다리쑥국 보다 못한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 사과 후에 올린 대통령의 눈물로 향한 어떤 시선등의 취재파일은 특히 SNS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며 공감을 얻었다.


이번 뉴욕타임즈 혁신 보고서에 보면 취재 뒷얘기를 스토리로 엮어야 한다며 취재파일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확실히 형식이 일정한 방송 보도와는 달리 기자들의 시선과 뒷얘기가 담긴 콘텐츠가 많은 공감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뉴스 소비층의 입맛을 파악하고 나니 좀 더 다양한 시도들을 해볼 수 있었다. 올해 초 동계 올림픽에 맞춰서 시작한 ‘8초 영상 SNS에 특화해서 만들어낸 콘텐츠이다.


“SNS를 운영한다는 것이 단순히 페이지 만들어서 방송 리포트를 실어 나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SNS에서 어떤 콘텐츠가 맞을까를 고민하다가 짧은 동영상 뉴스에 주목하게 된거죠. 8초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 핵심만 담아 낼 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SBS 8초 영상을 스포츠와 연계했다. 극적인 순간으로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야 말로 8초 동영상이 가장 잘 맞는 콘텐츠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밖에도 SBS 8 뉴스를 진행하는 김성준 앵커의 마무리 이야기를 전하는 김성준 앵커의 클로징 SNS를 겨냥해 기획된 콘텐츠로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깨알 같은뉴미디어에 특화된 콘텐츠를 기획했던 뉴미디어부는 지난 3월말에는 대표 메뉴도 선보였다. 바로 모바일 30, 스마트 리포트가 그 것이다.


2012년 뉴욕타임즈는 스노우 폴(Snow Fall)’이라는 인터랙티브 뉴스를 선보였다. 2012 2 19일에 있었던 케스케이드 산맥 (Cascade Mountains)에서의 눈사태를 오랜 기간 취재해 심도있는 스토리라인을 잡았고 거기에 생생한 사진과 동영상, 그 당시 기후도 변화, 사람들의 음성 녹음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엮어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한 획을 그었다. 이 보도로 NYT 2013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스노우폴을 본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해외에서 혹은 국내에서도 인터랙티브 뉴스가 상당히 많이 등장했지만, 일부는 스노우폴을 따라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죠. 하지만 형식만 따라해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고 전달하려는 스토리와 잘 맞으면서 뉴스 소비자들에게 입체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뉴스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SBS 스마트리포트 모바일 30년 첫화면. 바로가기>


때마침 올해가 우리나라의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된지 30년이라는데 착안해 모바일 30으로 주제를 잡았다. 김도식 부장은 방송 뉴스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TV 리포트를 기본 포맷으로 하되, 리포트 중간에 부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구성, ‘스마트 리포트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였다.


리포트 안에 그 리포트에서는 다루지 않는 다른 리포트와 웹툰, 취재파일, 인포그래픽 등 다양한 정보를 함께 담는 형식으로 제작을 했습니다. 비유하자면 스마트 TV의 기능을 포괄하는 리포트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는 스마트 리포트의 형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스마트 리포트는 새로운 형식을 구현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마트 리포트를 본 시청자들은 댓글 등을 통해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남기기도 했다. 한가지 단점은, 스마트 리포트 안에 다양한 관련 콘텐츠가 담긴 것을 모르고 지나친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새로운 형식인 만큼 시청자들이 익숙해지는데 그만큼 시간이 걸릴 것으로 자체적으로 평가 하고 있다. 스마트 리포트로 방송기자연합회로부터 이달의 방송기자상’ (수상자는 뉴미디어부 담당 기자)을 받았으니 노력한 것에 대한 인정은 받은 셈이었다. 스마트 리포트 이후에도 서울디지털포럼 (SDF) 연사들의 주요 스토리를 웹툰과 영상으로 함께 엮은 웹툰 리포트등 꾸준히 이 형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혁신의 열쇠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는 것


SBS 뉴미디어 부의 다양한 콘텐츠는 실제로 페이스북 등 SNS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 이유는 전통 미디어의 뉴미디어 전략의 핵심을 확산 채널(네이버와 같은)에서 찾지 않고 콘텐츠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미디어에 맞는 콘텐츠 전략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뉴미디어부 뿐아니라 보도국의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SNS를 활용하고 이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했기에 가능했다.  


제가 뉴미디어부를 맡고 처음 역점을 두고 진행했던 것이 디지털 미디어 직무교육이었습니다. 2013년 보도국 기자들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는데 그 당시 뉴욕타임즈의 스노우폴을 보여 주었더니 기자들이 다들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죠! 오랜 전통의 신문이 디지털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는 다들 더 늦기 전에 뭔가 해야 한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죠.”


그 때부터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를 이용하는 기자들도 대폭 늘어났고 취재파일 작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뉴미디어 시대, 디지털 시대에도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조직원 모두가 디지털 리터러시 (Digital Literacy)’를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뉴욕타임즈 혁신 보고서에서도 편집국과 기술 부서 등 다른 부서 간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뉴스 콘텐츠의 핵심 조직이 변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죠. 솔직히 기자생활 이십 사년째를 맞고 있지만, 저도 이 부서로 오기 전에는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서 크게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기자들의 눈 앞에 닥친 일 현장 취재해서 기사작성하고 리포트를 제작하는 -디지털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시대의 흐름, 특히 미디어의 혁명적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디지털, 혹은 소셜 미디어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직도 디지털이나 소셜과 낯선 많은 기자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조직적인 뒷받침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이끄는 SBS 뉴미디어부의 탈네이버’, ‘모바일 퍼스트모험기는 아직 목적지에 닿지는 못했을 지라도 참으로 힘든 첫걸음을 떼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는 좀 더 가속페달을 밟으며 디지털, 소셜의 가도를 달리는 일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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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10]'다름'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 거기에 기회가 있다 – 토드 샘플 (Todd Sample)

책읽기 2014.05.22 10:01

토드 샘플 (Todd Sample), 그는 달랐다. ‘미쿡사람이니 여느 한국 남성과는 다르게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감추지도 않았다. 오히려 스타일로 한번에 뚜렷하게 드러나게 했다. 파란색 줄무늬 정장에 밝은 색 체크무늬 셔츠, 노란색 타이 차림의 그는 한 눈에도 두드러져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낯선 외국인만은 아니었다. 그와 만나 한 시간이 넘게 수다를 떠는 동안 우리의 티 테이블에 오른 이야기 거리는 한국의 갑과 을문화에서 시작해서, 유행에 대해, 우리나라 아저씨들의 전형적인 스타일에 대해, 마음 아픈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했다. 이렇게 격이 없이 대화를 나누며 맞장구 치고 눈시울도 붉히다 보니, 그는 이미 친구였다.


어디나 오래 살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서 나고 자란 토드 샘플(Todd Sample) 에게 한국은 이미 고향이다. 1995년 한국에 와서 19년을 이 곳에서 살았으니 말이다.


그가 처음 한국에 오게 된 것은 그야 말로 우연 이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토드 샘플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일년 정도 아시아에서 살아 봐야 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과 한국 두 곳을 염두에 두었는데 친구의 한마디가 한국을 선택하게 됐다.


일본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마음을 터놓고 친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친구는 말했죠. 대신 한국 사람들은 좋고 싫고가 그대로 드러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전 솔직한 태도가 더 좋을 것 같았고 그래서 한국으로 오게 되었어요.”


1년을 작정하고 왔는데 그 때부터 이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됐다. 그냥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이 곳이 좋았다고 그는 여행이 정착이 된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에서 많은 기회를 봤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데, 저는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것이 내 자신에게는 기회인 동시에 이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느꼈던 것이죠.”


한국 사람과는 다른 것이, 자신에게는 기회였다는 토드는 처음에는 다른 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건국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미국 사람이니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가장 당연했을 테지만, 그에게는 사실, 굉장히 따분한 시절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코트라(KOTRA), 한국전력 등에서 투자유치 및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담당 이사로 일했다. 외국에 한국을 알리는 일에 적극 나섰던 것. 한국은 수출로 성장한 나라인 만큼 해외로 뻗어나가고 싶어 하며 끊임없이 해외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하지만 종종 노력만큼 결실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독특한 한국 스타일의 소통 방식 때문이라고 토드 샘플은 진단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한국식 소통 스타일 입니다. 비빕밥 맛있으니 무조건 먹으라고 얘기하죠!”


이처럼 일방적인 대화법의 원인을 토드 샘플은 상대가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단일 민족으로 오랫동안 살다 보니 한국 내에서 당연하게 통하는 것이 해외에서도 먹힐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역할은 글로벌 마인드를 이해시키고 생각이나 행동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첨가시킨 것. 이 일을 하면서 지난 십수년간 대한민국의 위상이 세계 시장에서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확인 한 것은 보람이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그 위상에 걸 맞는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동료로부터 토드, 너무 나대지 마세요라고 눈총을 받을 때나 대충 대충 합시다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운이 빠졌죠.”


그는 가장 힘들었던 것이 튀는 사람을 참지 못하는 보수적이고 권위주의 적인 문화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다.


한국의 매력은 역동성에 있죠. 리더가 바꾸자고 하면 다들 움직여 한번에 성과를 내는 놀라운 저력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토드 샘플이 적극적으로 국내 언론 매체에 컬럼을 쓰고 기업들의 임원 강의에 나서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오피니언 리더 층에서부터 글로벌 마인드를 받아 들여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올해 4, 그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웰드레스트 (http://www.welldressed.co.kr/) 라는 회사를 만들어 스타일 코칭을 시작한 것. 웰드레스트는 단순히 옷을 만들어 주는 곳이 아니라 고객들이 자신의 강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스타일을 찾도록 돕는다.

그는 스타일은 유행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스타일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자신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때 일본에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란제리 붐이 일었습니다. 은행이나 대기업에서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는 직장 여성들이 적어도 속옷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들에게는 란제리 패션이 자신감을 얻는 또 다른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스타일을 변화시켜 튀지 않으려는 한국 사회의 마인드 셋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며 새롭게 도전한 자신의 일에 애정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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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9] 아빠는 요리사 - 김택환

책읽기 2014.04.14 15:39

 얼마  전  집  근처  프리미엄  아울렛에  갔는데  포트메리온’  매장  앞에서  발이  얼어  붙었어요.  보타닉가든  홈세트에  마음을 빼앗겨  꼼짝할  수가  없더라구요…”


토요일  아침이면  장을  봐다가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남자,  한국  아줌마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테이블  웨어  브랜드  포트메리온을  위시  리스트에  넣는  남자를  만났다.  인터넷  비즈니스  컨설팅  업체인  시도우의  김택환  부사장.  평일에는  야근  많기로  유명한  IT업계에서  일하고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니며  공부도  하며  여느  남편,  아빠처럼  정신  없이  보내지만  주말에는  기꺼이  주방장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보통의  요리하는  아빠들’  처럼  된장찌개를  잘  끓인다거나  새우볶음밥을  맛있게  하는  정도가  아니다.  닭  가슴살로  구워  만드는  치킨 요리 - 치킨  밀라네즈,  칙피  쿠스쿠스와  아스파라거스  볶음을  곁들인  생선까스,  또띠아에  닭가슴살과  토마토를  넣고  구워  만든  치킨  엔칠라다,  맵지  않게  해물의  풍미를  살려  만든  해물찜  등이  최근에  그가  만든  대표  메뉴이다.  주부  9단들에게도  난이도  높은  요리이다.  게다가  주말용  간식으로  블루베리  스콘이나  비스켓도  준비한다.


한번도  요리를  배워  본  적도  없는  그가,  취미  라기에는  좀  거창한  요리  솜씨를  익히게  된  건  큰딸  소민이  덕이다.  딸  셋중에  맏이인  소민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토피가  너무  심해  밤에  자다가도  몇  번을  깨고  늘  몸을  긁적였다.  딸아이를  위해  공기  좋은  동네로  이사를  했고  먹는 것  입는  것,  생활  하나  하나를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김택환표 레시피로 만든 요리들: 사진 왼쪽 위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빠에야 – 치킨 엔칠라다 – 브로콜리 감자 프리타타>


소민이는  라면,  콜라  같은  음식은  먹어  본  적이  없어요.  체질상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되고  소고기는  별로  좋아하지를  않아서  게,  새우,  흰살  생선과  같은  해물을  주재료로  만들어야  하죠.  게다가  맵고  자극성이  강한  음식을  피하다  보니,  요리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한정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어야  하는  소민이에게  늘  먹는  엄마 밥’  보다  좀  더  색다른  맛을  선사하고  싶었다.  영양과 맛을  다  갖춘  음식을  직접  만들어  주기  위해  앞치마를  매기  시작한  게  1년  반  정도  됐다.  소민이를  위해  그가  찾아낸  해답은  스페인,  모로코  스타일의  요리였다.  해산물을  주  재료로  사용하며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그  많은  요리책  가운데  스페인  요리책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  인터넷을  스승  삼고  좋은  재료와  정성을  조미료  삼아  하나  하나  만들며  김택환표’  레시피를  쌓아  가고  있다.


스페인  대표  요리인  빠에야를  만드는데  육수가  필요했어요.  수산시장에서  서더리  한마리  2 5백원에  사다가  육수를  내어  만들었죠.  가족들이  모두  맛있게는  먹었지만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로  만들다  보니  확신이  서지  않아서  유명하다는  스페인  식당을  찾아  빠에야를  시켜  먹었는데…  단언컨대,  제가  만든  게  더 맛있더라고요!”


자신이  만든  요리의  맛을  자랑하는  눈빛에서  이제  그에게  요리는  딸을  위한  음식  만들기  이상의  기쁨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한  번,  두  번  만들다  보니  자신이  요리  하는  것을  너무  좋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이제  주말  메뉴를  정하고  장보고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일이  자신  뿐  아니라  가족의  활력이  되고  있다는  것.


음식을  만들어  예쁘게  그릇에  담아  낼  때의  그  뿌듯함은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다같이  모여  즐겁게  음식을  나누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죠.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  마치고  행주까지  깨끗하게  빨아서  마무리했을  때이죠.  화룡점정의  기분이랄까요…”


그는  디자인을  전공한  것이  음식의  색상을  맞추고  맛깔  나게  담아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김택환  부사장은  다른  아빠들에게도  요리를  권한다.  백마디  말  보다도  한  접시,  정성과  맛이  살아있는  음식이  가족과  아빠를  이어주는  훌륭한  소통도구라고  강조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한국의  아빠들에게  요리가  왕따를  극복하는  비법이  되었으면  좋겠다.  요리하는  아빠가  늘어  가정의  행복도가  높아 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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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8] “좀비(Zombie)를 뛰게하라!” - 원준호

책읽기 2014.04.03 08:23

 

2013 11 2, 만추의 어둠이 짙게 깔린 서울대공원. 수 천명의 젊은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 다니고 있다. 한 편에서는 피와 해골 분장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좀비들이 뛰는 젊은 이들의 생명줄을 뺏기 위해 덤블링을 해가며 쫓고 있다. 좀비와, 그들을 피해 달리는 러너(runner)들의 비명과 헐떡이는 숨소리가 섬광처럼 어둠의 적막을 깨어 놓았다. 드디어 결승점. 좀비들을 피해 생명줄을 지켜내며 이 곳에 도착한 러너들은 더할 수 없는 환희로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좀비를 피해 넘어져 무릎에는 상처가 나도 아랑곳없이 기뻐하는 그들의 표정은, ‘활력이라는 밍밍한 말로는 모자란, 일종의 광기까지 품어냈다.


지난해 11월 열린 좀비런이라는 아주 독특한 행사의 장면이다. 좀비런은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3Km 구간을 달리는 스포츠이자, 참가자들이 좀비러너라는 캐릭터를 선택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즐기는 게임이자, 참가자들이 하나가 되어 즐기는 페스티발이다.



<좀비런 소개 동영상>


참가자들은 좀비와 러너 가운데 원하는 캐릭터로 참여할 수 있다. 러너는 3개의 생명줄을 허리에 묶고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정해진 코스를 뛰면 된다. 중간에 좀비들이 튀어 나와 러너의 생명줄을 뺏으려 하니 이를 피해 무사히 도착점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 반면 좀비들은 저마다 기괴한 분장을 하고 최대한 러너의 생명줄을 빼앗는 것이 임무이다.


행사의 신선함 때문인지 공식행사로 처음 소개된 좀비런에 무려 7천명의 참가자가 몰렸다. 티켓몬스터를 통해 4차에 걸쳐 입장권을 팔았는데 1차는 20시간만에 매진됐고 마지막 4차는 무려 8분 만에 완전히 매진됐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는 좀비라는 캐릭터가 갖는 힘도 있고 문학작품은 물론 영화, 게임을 통해 지속적인 스토리로 재탄생하지만 국내에서 좀비는 아직 대중화된 캐릭터는 아니다. 해외에서 좀비런 마라톤이 인기를 끄는 것은 좀비가 갖는 고정 팬의 힘이라 할 수 있으나 국내에도 좀비런 행사가 대박을 쳤다는 것은 의외의 일이라 생각됐다.  


이 행사를 기획, 운영한 커무브의 원준호 대표를 만났다. 이십대 후반의 젊은 창업자, 그는 역시(?!) ‘좀비매니아였다.





언제부터인지 마음이 힘들 때 좀비 영화를 보는 게 취미가 됐습니다. 보기에도 흉측하고 죽어있는 좀비는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사람들을, 때론 사랑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며 삶을 이어 가기도 합니다.”


원대표는 어느날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좀비 영화를 보면서 이거 난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한 사람들은 아무런 의욕이 없이 움직인다. 시체로 살아가는 좀비와 같다. 게다가 좀비와 접촉이 있는 사람들이 다시 좀비가 되는 것처럼 우울증도 전염성이 있다.


좀비는 역설적으로 생존본능을 가장 항변해주는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죽었지만 생명을 모질게 연장하고 있는 것이죠. 의욕을 잃고 좀비처럼 하루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고 싶었습니다. 바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죠!”


그는 유독 일찍부터 힘없고 의욕마저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망을 목격했던 경험이 많았다. 대학초기 봉사 활동을 단순히 스펙쌓기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노인들 목욕시켜 드리는 일을 자원했다. 좁은 임대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는 어른들과 만나면서 어두운 실내에 한껏 웅크리고 있는 모습에 마음 아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늙고 병들었다는 생각 자체가 노인들에게는 모든 활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이유라고 생각됐다. 그 어른들이 밖으로 나가 활기 넘치는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소외감을 씻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의무소방관으로 소방서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 할 때였다. 동료 중 한 사람이 소방차에 목을 매어 자살을 했다. 다리를 다쳐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그 소방관을 독방에서 지내게 했는데 바쁜 사람들 중에서 혼자 떨어져 지내게 되자 스스로 무능하게 소외됐다는 고독감에 푹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힘든 일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절망하는 사람들은 우울함이 극도로 심해져 스스로를 가두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혼자 방에 틀어 박혀 꼼작하지 않고 지내다 보면 다시 우울증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거에요..”


원 대표는 그 때부터 주변에서 어떤 이유로든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막무가내로 밖으로 데리고 나와 몸을 움직이게 했다. 사법고시에 낙방해 두문불출하는 선배를 매일 집으로 찾아가 한 달 동안 등산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몸을 움직이고 땀을 빼고 나면 마음의 활력을 찾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


그 자신도 첫 번째 공동 창업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상실감에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우울함에서 헤어 나오기 위한 노력으로 함께 움직이는경험을 만드는 회사, 커무브(Co-move)를 만들었다.


사람들을 뛰게 하자는 런 페스티벌의 포맷에 자신이 좋아하는 좀비 캐릭터와 젊은층에 익숙한 게임 요소를 섞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커무브의 대표상품 좀비 런이다.


지난해 연세대 축제에서 좀비런을 시험 가동했다. ‘좀비가 된 나로부터 살아 남아라!’가 행사의 구호였는데 1천명 정도가 참여해 대성황을 이뤘다.


좀비런 참가자들의 얼굴을 보면 상황몰입이 최고였어요. 러너들은 생존본능에 충실하게 뛰다 보면 활기를 찾고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수 있는 것이죠. 좀비들은 흉측한 분장을 할 때부터 일탈로 인한 쾌감을 느끼는 것이구요.”


실제로 참가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새로운 형식에 대한 참신함과 게임 처럼 즐기면서 직접 뛰는 것의 힘도 대단했다.


연세대에서의 베타 테스트가 좋은 평가를 받은 것에 힘입어 지난해 11월 초에 서울랜드에서 7천명이 참가하는 대형행사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 행사 참가자중 20대가 70%, 여성이 70% 였다.


오늘날 20대는 젊은 에너지를 발산할 곳이 없습니다. 대게는 스펙쌓기와 취업전선에서 허덕이고 있죠.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젊은이의 방식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좀비런이었던 것입니다.”


마라톤과는 달리 느슨하기는 하지만 젊은이들의 공동체적 유대감을 줄 수 있었던 것도 좀비런의 성공비결이었다고 원대표는 진단했다.  


지난해 서울랜드 행사의 옥의 티는 운영 미숙이었다. 처음으로 7천명 규모의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도시락 등의 보급품 전달에 실수가 있었던 것. 빗발치는 항의에 당황했지만, 행사 후 불만을 제기한 참가자들을 일일이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운영의 미숙함은 있었으니 다들 행사 자체는 즐거웠다는 평가를 해주었다.


그는 올해 다시 힘겨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4 25일과 26, 다시 서울랜드에서 두 번에 걸쳐 좀비런 축제를 연다. 서울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5대 도시를 순회하며 전국에 좀비런 열풍을 전파할 계획이다.


좀비런을 시작으로 좀 더 공동체적 놀이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좀비가 역설적으로 전하는 생명 에너지가 널리 널리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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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7] ‘1인 미디어’의 대명사 – 임정욱

책읽기 2014.03.26 15:53

얼마전 개소식을 갖고 화려한 출발을 한 스타트업 얼라이언스(Startup Alliance). 미래창조과학부와 네이버 등이 주도해서 만든 기구로 한국 대표 인터넷 회사들과 VC, 인큐베이팅 기관등 47개가 모인 연합체이다. 창업 초기 인터넷 기업을 위한 생태계 구축을 표방하며 특히 한국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것이 주요 목표라고 한다. 이름 만으로도 거창한 기구의 개소식에는 미래부 차관을 비롯해 벤처’, ‘스타트업을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모두 모였다.


이 수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중심에는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임정욱 센터장이 있다. 1994,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후 20여년 만에 그는 정보와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게 됐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지만, ‘조선일보라는 꼬리표를 떼고도 그에 못지 않은 영향력을 갖추고 있다.





스타트업을 위한 생태계를 만들고 특히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다는 게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반갑게 센터장 제안을 받아 들였습니다. 제가 실리콘 밸리에 있을 때도 한국의 스타트업들로부터 많은 문의가 왔었는데, 내가 꼭 도와줄 의무는 없었지만, 마음이 움직여 열심히 도왔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본격적인 로 해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어요.”


그랬다. ‘스타트업 얼라이인스 센터장이라는 직함이 있기 전에도 그는 늘 새로운 정보와 트렌드를 정리하고 전달하는 일을 지속해왔다. 영향력 있는 1인 미디어로 자리잡은 그는 정보를 전하는 채널도 다양하다. 시사인,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등의 전통 미디어에 칼럼을 게재할 뿐 아니라 개인 블로그 에스티마의 인터넷 이야기’ (http://estima.wordpress.com/) 도 상당한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고 2천명이 넘는 페이스북 친구, 8만명이 넘는 트위터 팔로워가 있다. 때문에 그의 한마디가 때로는 과한 반응을 보이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임정욱 센터장은 미디어의 구석 구석을 경험했다. 종이신문, 인터넷 신문, 포탈 그것도 국내 및 글로벌 서비스까지 모두 두루 걸쳤다. 호기심 많은 그는 늘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새로운 것에 귀 기울이는 편이었지만 그의 커리어는 의도적이었다기 보다는 재미있는 우연이 겹치기도 했고 운이 좋았던 적도 있었고 상황이 어려웠던 적도 있었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말이다. 인생의 파고를 넘으며 그가 놓치지 않고 잡았던 것은 ‘IT/인터넷이라는 서핑보드였다.


94, 신문사 입사를 위해서는 언론고시라는 입사 시험을 통과해야 했지만 그 해 조선일보는 인턴기자를 뽑으면서 상식 중심의 필기 시험을 토익으로 대체 했다. 그에게 상당히 유리한조건이었다. 논술 시험에는 여자 친구의 학교 숙제를 도와 주느라 공부를 했던 북한 핵문제가 나왔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입사할 때부터 경제과학부에서 IT 섹션을 담당하는게 꿈이었지만, 현실은 수습 끝나는 날 삼풍사건이 터져 특별 취재팀에 소속됐고 영등포 경찰서 출입을 하는 사회부 기자를 거쳐야 했다.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는데, 몇 달 후 경제과학부 IT팀의 집단 퇴사로 원하던 곳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그 당시 집단 퇴사했던 사람 중 하나가 나였으니 임 센터장과는 참 재미있는 인연이다). 이때 조선일보는 한창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는 기치를 들고 디지털에 많은 관심을 보일 때였다. 당연히 IT 기자에게 다양한 기회와 경험이 주어졌다.


그러다가 몇 년 후 IMF 사태를 맞았고 사회 전반적으로 거대한 변화의 물결과 함께 그도 미래에 대한 대비를 생각하게 됐다.


결혼도 하고 보직도 바뀌면서 막연하게 좀 큰 물에서 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우연히 정통부에서 기획한 실리콘 밸리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2주간 스탠포드 대학에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세계 IT 산업의 심장부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99년 그는 회사를 휴직하고 유학을 준비했다. ‘운이 따라서’ (겸손한 그의 표현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멀지 않은 버클리 하스 스쿨(Haas School of Business)에서 MBA 과정을 공부할 수 있었다. 공부하는 동안 세계 경제 여건 (특히 미국)은 그리 좋지 못했다. 닷컴 버블이 무너지고 911 사태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도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도 겪었다. 미국에 있는 외국 유학생들이 현지에서 자리를 구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공부를 마치고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인터넷 뉴스의 운영과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특히 재미있는 경험은 조선일보 일본어판을 발행하는 자회사의 사장으로 컨텐츠에서부터 광고까지 전체를 총괄하는 일도 담당했다.


그때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한창 인기를 끌면서 욘사마 열풍의 덕을 봤습니다. 관련 기사가 실리는 날이면 야후 재팬 (일본에서 영향력 1위의 포탈) 톱 페이지에 오르곤 했었죠.”


게다가 당시만 해도 인터넷 언론에서는 별로 시도 하지 않았던 구글의 광고 플랫폼 애드센스를 사이트에 달아 조회수 뿐아니라 매출도 일으켰다. 애드센스를 달고 첫 달 수입이 2만달러 ( 2천만원정도)를 기록했으니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신문, 인터넷 신문에 이은 다음 행보는 포탈이었다. 2006년 다음 커뮤니케이션즈로 옮겼다. 다음에서 했던 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두가지는 ‘Knowledge Officer’로 일한 것과 라이코스 CEO로 일했던 것이다.


날리지 오피서라는 생소한 직함은 다음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일이었다. 업무 정의도 모호하고 범위도폭넓은 일이었지만 발빠르게 세상의 흐름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 좋았다. 그는 다시 기자 시절 처럼 컨퍼런스도 참석하고 기술 및 비즈니스 트렌드를 게시판에 올리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가능한대로 사내 강의 기회도 만들어 자신이 알게된 것을 나누는 일에 주력했다.


다음 커뮤니케이션즈가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인 라이코스를 인수하면서 미국 현지의 CEO로 일했던 시간은 그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자 새롭고도 값진 경험이었다. 2009 2월 보스턴으로 건너 가 더 큰 시장의 물살도 느끼고 다른 문화와의 충돌도 겪었다.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과 글로벌 기업의 CEO로서의 역할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세계 경제의 흐름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미국 사람들의 일하는 문화를 경험했다는 것은 정말로 값진 소득이었죠.” 


인터넷이 발전한 시대이니 지식과 정보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문화의 경험은 몸으로 부대껴야 체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 때의 경험을 다음 스토리볼에 연재해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한국 vs 미국직장 1mm 차이’ 바로가기)


임정욱 센터장이 트위터에 맛을 들인 것도 이 때였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떨어져 있으니 외롭기도 했고, 미국에서 먼저 접하는 신기한 것들을 한국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심도 생겨나 열심히 정보를 전하는 역할을 했던 것. 그는 우리나라의 트위터가 유행한 초창기부터 팔로워 군단을 거느린 파워 트위터리안으로 잘 알려졌다.


2012년 라이코스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다음 글로벌 서비스 본부로 본거지를 옮겼다. 좀 더 본격적으로 스타트업을 만나고 그 생태계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오랜 미쿡 생활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지 5개월째, 이 곳에서 다시 험난한 항해를 시작하는 그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산전 수전 공중전을 모두 거쳐 스스로가 ‘1인 미디어로의 영향력을 굳건히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한국의 스타트업과 발을 묶고 2 3각으로 영차, 영차 발맞춰 글로벌 시장으로 뛰어나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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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6] 맛깔나게 게임 대신 해주는 남자 - 대도서관 나동현

책읽기 2014.03.20 09:43

세상에 많고 많은 직업 중에 게임 대신 해주는사람이 있다. ‘심시티’, ‘다크소울’, ‘워킹데드’, ‘돈스타브’, ‘러스트등등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게임을 직접 실행하며 게임 방법도 알려주고 계속 수다를 떠는 남자, ‘대도서관 (Great Library)’이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나동현씨는 게임 대신 해주며 대기업 임원 급의 수입을 올린다. 대기업 임원과 다른 점은, 머리 조아려 모셔야 할 회장님이 없다는 것. 대신 그의 수다를 기다리는 70만여명의 팬들이 있다.



<대도서관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나동현씨>


삼십 대 초반의 젊은 친구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어떻게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전세계의 방송국 유튜브(Youtube)에 있다. 그는 2010년부터 다음 TV팟에서 게임방송을 시작했고 아프리카 TV 등을 거쳐 유튜브에 대도서관 TV’ 채널을 열었다. ‘유튜브 파트너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그가 올린 동영상에 광고를 붙여 광고액의 일부를 받는데 그 금액이 월 수천만원에 달한다.


유튜브는 참 공평한 시장입니다. 큰 기업이 많은 돈을 들여 제작한 광고나 제가 집에서 직접 촬영한 동영상이나 공정하게 시청자의 선택을 기다릴 수가 있죠. 대기업의 광고 보다 제가 우리집 강아지 데리고 수다 떠는 동영상이 더 조회수가 높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에요!”


그는 인기의 비결을 개인화 성향에서 찾았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개인들이 즐기는 취미나 관심사가 너무나 많아지고 다양해 졌는데 대중 매체는 그 욕구를 다 맞춰주지 못한다는 것. 게임만해도 일부 케이블 방송에서 게임 중계를 하는 곳도 있지만 모든 게임을 다루지는 못하는 반면 그는 자신의 인터넷 방송국을 통해 정말 다양한 게임을 소개하고 팬들과 함께 즐기기 때문에 꾸준히 구독자를 늘릴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덧붙여 대도서관만이 가진 맛깔나는 입담도 인기의 비결이다. 그는 단순히 게임의 전개를 설명하는 것 뿐아니라 스토리로 풀어 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게임 보다는 대도서관의 말이 재미있어 듣는 여성 시청자도 팬으로 확보하고 있다.


제 채널 구독자의 45% 1020 여성들이에요. 전통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층은 아니죠. 하지만 여성분들 중에는 제가 전하는 게임 스토리를 그야말로 오락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고 자주 듣는다고 얘기하세요.”



<70만여명이 구독하는 대도서관TV 유튜브 채널>


그가 유튜브의 인기 BJ (Broadcasting Jacky)로 명성을 얻기까지는 3년 넘게 걸렸다. 이전에는 이러닝(e-learing) 회사인 이투스에서 컨텐츠 기획자로 일했다. ‘기획일을 하다 보니 세상 흐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온라인 기반의 회사에서 기본적인 영상 촬영, 편집 등을 익힐 수 있었다. 처음 게임 방송을 시작했을 때부터 1천명 이상 접속하는 등 반응이 좋았다. 위험요소는 있었지만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 방송에 매진했다.


그는 자신이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누구라도유튜브를 기반으로 자신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며 그 동안 자신이 터득한 비법을 전했다.


컨텐츠는 무엇보다도 성실성이 담보돼야 합니다.”


그는 유튜브 채널과 같이 구독자를 확보해야 하는 개인 방송에서는 꾸준하게 컨텐츠를 발행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꾸준함이 컨텐츠 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설명. 그의 경우도 처음에는 말도 버벅 대며 마음에 안든 적도 있었지만 꾸준히 매일 하나 이상의 영상을 올리다 보니 더 잘하게 되었고 조금씩 조금씩 구독자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또 다른 비법은 개성을 살려야 한다는 것. 그는 수다라는 포맷과 목소리 연기로 시청자들이 대도서관TV’에서 기대하는 자신만의 독특함을 만들어 냈다. 결국 1인 방송도 브랜드로 승부해야 하는 만큼 개성과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인 게임 방송으로 대도서관TV’라는 브랜드를 구축한 나동현씨의 다음 스테이지 미션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채널 다양화와 콜레보레이션(Collaboration)’이라고 답했다.


그는 우선 키즈(Kids) 채널을 열어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송을 위해서 동화책을 읽어준다든지 아이들에게 좋은 장난감을 소개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컨텐츠를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방송도 그가 생각하는 아이템 가운데 하나다.


고독한 야식가 어때요? 제가 요리를 한다면 격식을 갖춘 이탤리언이나 궁중요리는 어렵겠죠. 하지만 야식으로 먹을 수 있는 계란말이나, 간단한 것은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에요. 일본만화 심야 식당 같은 거요.”


키즈채널이든 요리방송이든 그가 얘기하면 모두 될 것 같다. 활기찬 목소리에 묻어있는 자신감이 상대를 설득하는 그의 무기인 듯했다. 


사실 난 누군가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수입을 내용으로 담는 것이 왠지 불편했다. 하지만 대도서관의 수입은 그의 발랄함과 자신감, 맛깔진 수다의 가치를 웅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본인 입으로 표현한대로 스펙이 좋지 않은젊은이가, 역시 그의 표현대로 공평하게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장을 발견했다는 것이 그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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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5] 그림 그리는 남자 - 정진호

책읽기 2014.03.10 10:21

어느 날 여러분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게 됐다면 이력서를 다시 쓸 것인가, 아니면 홀로서기를 할 것인가? 물론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개 1순위로 이력서를 다시 써서 직장을 구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왜 그럴까? 직장 안에 있는 것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홀로서기는 너무 막막하다. 직장에 다닐 때 했던 일, 배운 능력을 기반으로 홀로서기를 했을 때 먹고 사는 데 문제 없다고 느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좋겠지만, 일을 버리고 회사 다니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


‘그림 그리는 남자로 알려진 정진호 작가 (호칭을 어떻게 해야할지 묻자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 작가로 불리는 게 편하겠다고 답했다)를 만났을 때, 그는 인생의 기로에서 어떤 길을 갈 것인 지 마지막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는 98년 모 그룹사 SI업체에 입사해 개발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2013년까지 야후코리아, SK컴즈 등 꽤 알려진조직에서 일했다. 지난해 말 과감하게 회사를 나왔고, 어쩌면 그 때 이미 홀로서기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몇 달째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고민 중이라며 말을 꺼냈지만, 이미 답을 구했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회사를 그만 두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냐는 질문에 이미 그의 일정은 빼곡히 차있었다.


3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강의가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기쁨을 일반인들과 나눌 수 있는행복화실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구요.. 매월 비주얼 씽킹워크숍도 시작합니다.”


그가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행복화실 2014’ 프로그램에는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12주의 그림여행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석 달동안 함께 그림을 그리며 그림 실력도 키우고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석 달 후에는 각자의 그림 전시회로 화려하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평일 저녁에 석 달 동안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조직에 몸담기를 이미 거부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직장인이 아닌 작가다운 답이 돌아왔다.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 그림으로 생각을 정리하도록 돕는 것은 모두 제가 앞으로 평생 해야 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홀로서기 대신 조직을 선택하더라도 일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죠.”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을 찾는 것은 의미 있지만 (자신이 평생 해야 할) 일과는 상관없이 회사 다니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평생 해야 하는 (하고 싶은) ‘을 이미 찾았다는 그가 부러웠다. 대다수의 우리는보다는 안정적인 밥벌이가 보장되는 조직을 찾고 있는데 말이다. 그는 어떻게 그 일을 찾게 된 것일까? 그 과정은 어느날 갑자기 영감처럼 떠올랐다기 보다는 오랜 세월에 거치면서 생각과 경험이 합쳐져 숙성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다가 알게된 재능 


98년부터 개발자로 일했던 그는 야후 코리아로 자리를 옮기면서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때 마침 과연 한국에서 언제까지 개발자로 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개발 경력으로 해를 거듭하면서, 15, 20, 개발자로 경험이 쌓일수록 그만한 부가가치를 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사례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때 야후에서 개발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Technical Evangelist (기술 전도사)’가 그가 하는 일의 정의였다. 당시 야후는 시스템(내부 IT 인프라)이 너무 달라서 야후에 입사하면 야후의 독자적인 기술을 배워야 일할 수 있었다.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을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인사교육 담당자가 하기 어려워 그가 맡게 된 것이다. 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일이 보통의 개발자들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는 그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사내 교육이다 보니 강의를 맡은 개발자들에게 강의료를 많이 줄 수가 없었어요. 1인당 2만원 정도 돌아가는데 매력적인 금액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강사들의 만족도를 높일까 고민하다가 디자이너를 꾀여서 멋진 디자인을 곁들인 후드 티를 만들었죠. 거기에 ‘Yahoo Bootcamp Trainer’라는 글자가 새겨진 한정판 후드티를 만들어 나눠 주었습니다.”


한정판 후드티의 힘은 컸다. 교육에 참여한 강사들이 굉장히 좋아하며 만족도가 높아졌다. 2만원을 한정판으로 가치 상승시킨 것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교육을 통해 가치를 나누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할지를 고민하는 일에 본인이 꽤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후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좋은 것들을 잘 정리해서 사람들과 나누는 일에 더욱 관심을 쏟게 됐다.


에반젤리스트 활동을 하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서 마인드 맵이라는 프로그램을 쓰게 됐다. 정리 기능이 너무 좋아서 교육도 받아가며 열심히 마인드 맵을 활용하게 되었고, 어느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슬라이드를 만들어 팀원들에게 강의를 했다. 그 후에 많은 개발자들이 오히려 자신보다 더 마인드 맵을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팀원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개발자들 사이에 번져 수강생이 수십명을 넘어서고 블로그를 통해 외부 강의도 했더니 더 많은 사람들이 듣게 됐다. 이 때의 경험이 계속 발전되어서 지금은 생각을 간결한 그림으로 정리하는 기술에 관한 비주얼 씽킹워크숍을 만들게 됐다.


이렇게 에반젤리스트로 새로운 개념을 대중들이 알기 쉬운 용어로 풀어서 해석하고, 그것을 강의를 통해 나누는 일을 하다가 결국은 직업이 바뀌었다. 2010년부터는 SK컴즈로 회사를 옮겼고 개발자가 속한 부서가 아닌 기업문화팀에서 일하게 됐던 것이다.


정진호 작가가 자신이 평생 할 일을 찾는 과정에서 또 한번 중요한 계기를 맞게 된 것은 마흔을 넘기면서 이다. ‘불혹이라는 수식어가 문득 무겁게 느껴지면서 일을 하더라도 하루 하루 일을 하며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계속 남아있는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그림을 그리자!’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냥 무작정 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지속적으로 남기고 싶었다.


1,000 시간을 투자해 '그림'을 얻다 


그래서 그는 홍대 앞을 찾았다. 막연히 그림하면 홍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홍대 앞에는 미술학원들이 많았는데 그의 마음을 끄는 곳은 없었다. 다만, 그곳에서 그는 미술학원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상한 게 미술학원에서 가르치는 그림은 생활 속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소재를 선호하더라구요. 말하자면 찌그러진 캔 같은 것이었죠. 그리고 무조건 그림을 크게 그렸습니다. 일반 사람들에게 익숙한 A4 크기로 그림을 가르치는 곳은 없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학원에 학생들이 그린 그림은 너무나 똑같았습니다. 그림의 선들이 경쾌한 것은 찾아 보기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는 홍대 앞에서 그림 배우는 것을 포기하고 교보문고로 향했다. 서점에도 그림을 담은 책은 많은데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은 별로 없었다. ‘스케치 쉽게 하기라는 책을 겨우 구해서 2011년부터 매일 밤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펜 하나만으로, 작은 크기로 그림을 그리다가 조금씩 크기도 키우고 색도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꼬박 1년 반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하루에 두 시간쯤 잡으면 1,000시간이 넘었다. 그랬더니 손목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노력과 함께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꾸준히 했다. 1년반의 경험을 정리해서 철들고 그림그리다라는 책으로 엮어 냈다.



<정진호씨 그림중>


그렇게 노력해서 얻는 이었다.  작가라는 호칭을 좋아하고, 회사 다니는 안정감 보다는 일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렬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그가 그리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3년째 눈에 보이는 것은 다 그렸는데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 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동화책에 담긴 스토리를 그림으로 그린다든지 하는 것이죠…”


그가 꾸준히 하고 있는 비주얼 씽킹도 생각을 그림으로 정리하고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영역에 속한다.


저는 오래도록 일하는 게 꿈입니다. 70까지혹은 건강이 허락한 다면 그 이상도…”


오래도록 자신이 찾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일,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정의이다. 참 간소한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행복을 조용히, 꾸준히 찾고 있는 그는 이야기 하는 내내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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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4] 지천명(知天命)에 무대에 오르다 – 한창민

책읽기 2014.02.26 13:19

그는 늘 객석에 있었다. 늘 객석에서 무대를 즐겼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고 영화도 찾아 보았다. 전시회, 뮤지컬에도 관심을 갖고 평균 이상의 문화 생활을 즐겼다. 사람들과 얘기 나누는 걸 좋아하고 다양한 의견으로부터 다양한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너무 재미있어 했다. 한 마디로 그는 호기심이 너무 많아 주변 온갖 것이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평했다


그러던 그가 무대 조명을 자신에게 비추고 한 걸음에 무대에 올랐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지난 1월 발간한 [나는 찍는다 스마트폰으로], 일명 나찍스책이 꾸준히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다. 책 소개 글처럼 평범한 중년 남성의 사진 놀이가 놀랄만한 폭발력을 가져온 것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이자 작가한창민을 만나 무대에 오른 소감을 들어 보았다.





사진작가로 나름(?) 화려하게 데뷔하신 건데, 어떤 느낌인가?”


내게 조명이 비춰지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대에 올랐다는 실감은 나는데, 사실상 계획된 출연이 아니어서 아직도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이제까지는 무대에 오르는 것에 대해 상상도 하지 않았고 사실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무대에 올랐으며, 나를 바라보는 객석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무엇이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


어떻게 계획도 없었는데 사진전도 열고 책도 좋은 반응을 얻을 만큼 손쉽게 무대를 만들었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어찌 보면 내 성격과 살아온 습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는 정말 일관되게놀았다. 천성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겼다. 대학 때 운동권이 된 것도 어찌 보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자각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운동권 활동을 하다 보니 감옥에도 가게 됐는데, 심지어 나는 감옥 생활 조차도 재미있었다. 처음엔 잡범들, 도둑놈들이 우글거리는 방에 있다가 나중에 경제사범 방으로 옮겨 졌는데,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도 새로운 세상을 배웠던 것 같다. 어찌 하다 보니 소프트웨어 벤처, 미디어, 인터넷 등 다양한 회사들을 옮겨 다녔는데 그 때 그 때 모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심지어 연애도 참 많이 했는데 여자친구들로부터도 다양한 분야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과 배우는 것만으로 무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 호기심과 함께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 잡스러울 만큼 다양한 시각을 내 안에 담아내게 되었고, 그게 손에 잡히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자연스레 표현되었던 것 같다.”


사실 그랬다. 한창민 작가의 사진은 시선이 독특했다. 좋은 사진의 절반은 카메라 성능이 좌우한다. 아이폰을 들고 사진 찍는 그는 성능으로 승부를 걸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데도 그의 사진이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남들이 생각지 못한 시각(angle)과 색감을 찾아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사진을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것도 중년을 넘기는 나이에 뒤늦게 찍기 시작한 사진이 이처럼 한번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세월 축적된 다양한 경험과 사람들로부터 얻은 다양한 시각의 힘이었던 것이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설명이었다그는 한가지를 덧붙였다.


또 한가지, 만약 SNS가 없었다면 내가 무대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 했을 것이라고 했다.


우연히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은 것을 트위터로, 인스타그램으로 올렸는데 친구들이 좋다고 반응을 보이고 RT도 하고 좋아요도 찍어 주어서 그게 힘이 되어 계속 찍을 수 있었다고. 그렇게 1년에 1만장을 찍을 수 있었고, 그 가운데 100장을 추려서 지난해 3월 사진전을 열게 된 것이었다. 사진전도 우연한 기회에 친구에게 등 떠밀려 열게 됐다. 결과는 상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뒀다.


그렇다면 사진전을 열고 책을 내는 지난 일년 사이 경험이 굉장히 특별한 것이었을텐데, 이런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


무엇보다도 냉소적인 내 태도가 바뀐 것 같다. 게으른 탓도 있었지만 나는 아주 젊었을 때 내가 인생을 (남들처럼 직위나 성공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대신 유명해지지 않겠다’, 그리고 돈에 욕심내지 않으며 살겠다두 가지를 결심했었다. 이런 마음가짐은 좋은 것이기는 한데, 어떤 측면에서는 내 것을 챙기고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도 심드렁한 태도였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옛날의 나는 내 책이 나왔다고 SNS에서 동네방네 떠들고 나서서 내 책을 홍보하고 하는 일들은 계면쩍어서도 절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트위터나 SNS에서 만난 친구들로부터 그렇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열심인 것이 결국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진전이나 책 내는 일을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무대에 섰다고 표현하는 것 또한 앞으로 이 일을 지속하겠다는 뜻이다.”


,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


여전히 무엇을 이루겠다는 욕심은 비워 두기로 했다. 하지만 무대에 섰으니 나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고민하고 열심히 움직여 볼 것이다.”


그는 일상처럼 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눌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자신만의 플랫폼에서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 홈페이지도 만들고 [..] 책을 영어, 일어로도 번역 출간했으면 한다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바램을 얘기했다



*같은 내용이지만 좀 잘 정리된 편집본으로 읽으시려면 슬로뉴스로.. http://slownews.kr/2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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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3] 블로깅으로 ‘존재감’ 찾기 – 그린데이 전혜원

책읽기 2014.02.18 15:41

[생각읽기]는 슬로뉴스(http://www.slownews.kr/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요즘은  전문직에  여성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선망의  직업인  의사나  법조인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여성,  (남자들에  비해)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여러  면에서  뛰어나다고  남성들도  인정하는  시대가  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회에서는  –  회사나  조직에서는  –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흔히  비유하는  유리  천정 (Glass Ceiling)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시멘트로  튼튼하게  막힌  벽이  존재하는  느낌이다.   대다수가  남성인  기업에서,  수  백명의  남성  임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룹사  임원  가운데  한  두  명  여성  임원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서,  쉽사리,  여성들도  누구나  평등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한  두  명의  우월한  소수가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또한,  감히  경험상  얘기하자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에서  임원에  오른  여성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남녀  차별의  벽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직  문화에  잘 적응했다는  의미이다.  결코  남녀  평등의  사례로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육아.  제도적으로  개선되고는  있다지만,  아이를  키우며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일은,  정말이지  초인적인  체력과  뛰어난  능력과  강인한  정신력의  삼박자를  모두  요구한다.


그린데이온더로드 (http://www.greendayslog.com/)’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전혜원씨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누구보다도  육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결단을  내렸고,  그러면서도  다시  사회  활동을  원하고  있는  보통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이라는  입장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꿈꾸고  있는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건  사회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듣고  싶었다.





거의  4년만에  소셜  공간이나  온라인이  아닌  커피숍에서  그린데이님을 만났다.  마침  가족들이  돌아가며  독감을  앓아  지치고  힘들  때  만나서 인지  한층  야윈  모습이었다.


전혜원씨는  국내  대기업에서  소셜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일하다  2010년  2월  회사를  그만  두었다.  당시  18개월이었던  큰  딸을  키우는데,  친정,  시댁을  모두  동원해야  하고  가족들이  떨어져  사는  것이  못할  일처럼  느껴져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  당시  둘째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두  아이를  이산가족  시간  버티기’  방식으로  키우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회사를  그만  두고  집에  있게  된  기분이  어땠어요?  아이와  함께  있어  즐거웠을  것같은데…”  평범한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처음엔,  아이와  가까이  지내면서  이제까지  몰랐던  아이의  다양한  측면을  보게  되고,  단순히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키운다기  보다  엄마가  된다는  느낌에  즐겁고  행복했죠…”


처음엔…’  이라는  표현은,  ‘그러나…’를  동반하는  것이  아닐까  해서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어요.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는데  어떤  아저씨가  만  원짜리  열장을  펼쳐  쥐고는  제  눈  앞에서  흔드는  것이었어요…  우유  영업소에서  나온  아저씨였는데,  우유를  신청하면  10만원을  주겠다는  거였죠.”


그  아저씨의  표정에는  확신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쯤  현금을  들고  흔들어  대면,  ‘아줌마들은  우유  신청을  하고  말  것이라는  그런  강한  자신감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그  때,  그녀는  자신이  회사를  그만  두고  선택한  전업주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한  단면을  보게  되었다.  현금에  쉽게  흔들리는  존재로  비쳐지는  건  정말  싫었다.  그날  결심했다.  ‘그냥  아줌마가  되지는  말아야겠다. 


사실  전혜원씨는  회사를  그만  두면서  ‘3년만이라는  유예기간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본인이  퇴사를  한  것은  조직이  싫어서도,  일이  싫어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아이  키우는  일과  가사와  회사일  모두를  병행하는  것이  힘에  부쳐서였다.  무엇  하나  제대로  못한다는  생각에  주눅  들기  보다는  오히려  육아에  일정  시간  전념한  후에  다시  일을  찾자는  생각을  했다.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그녀의  결정에  부정적이었다.  3년  후에  과연,  쉽게  자리를  찾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계속  조직에서  아등바등  해도  어려울  판에  그런  생각을  갖는  게  당연한지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전혜원씨는  자신과의  약속에  더욱  민감했다.  도태되지  않으려고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현실적으로  본인의  전문성도  살리고  이제껏  사회  생활을  하면서  아는  사람들과의  연락도  끊기지  않는  방법을  찾았는데,  바로  블로깅이었다.  이전까지  기업의  블로그  담당자로  컨텐츠  기획과  운영을  맡았다면,  ㈜전혜원의  대표로  블로그를  개설하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감성  여행과  육아를  주제로  한  일상  컨텐츠를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아갔다.


둘째가  태어나고  너무  힘이  들  때는  블로그에  소홀해진 적도  있었지만  한  때는  아이들  재우고  밤  잠을  아껴가며  포스트를  쓰기도  했다.  컨텐츠가  쌓이면서  방문자도  늘어갔고  2011년과  2012년에는  티스토리  베스트  블로거로  선정되는  작은  성과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블로그를  하면서  세상과  소통을  하게  되고  예전에  회사  생활  하며  알았던  사람들과의  끈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는게  좋았어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할까요?”


회사를  그만  둔지  3년째인  지난해,  정말로  믿어지지  않게  사회생활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맞기도  했다.  계속  블로그도  운영하고,  CJ그룹에서  운영하는  소셜 보드활동도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모  기업으로부터  소셜  커뮤니케이션  담당으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된  것.  결국  이런  저런  고민  끝에  다시  일년  정도  복귀의  시간을  미루기로  결정을 내렸지만  본인에게  했던  약속을  지킨  것  같아서  마음  편하게  거절 할  수  있었다.


이제  그녀는,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새로운  꿈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회사를  그만  두면서  ‘3년  후에  복귀한다는  자신과의  약속이  때로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한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가능성을  확인  했으니,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정말  잘하는  것을  찾아서  제대로  복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회  생활  복귀를  미루고  그녀가  새롭게  꾼  꿈은,  올  한해  가족과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것이다.  남편이  1년간  육아휴직을  얻었고  큰  애가  내년  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올해가  아니면  온  가족  세계 여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이제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와  함께  여행하기를  주제로  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차근  차근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면서  언젠가는,  필요하다면,  다시  조직에서  일할  준비도  해나간다는  생각이다.


여성들에게  육아는  풀기  힘든  숙제이다.  하지만  육아가  아니더라도  회사라는  조직은  결코  여성에게  너그럽지  않다.  그러나  ‘장벽은  존재하지만,  정말로  그것을   깰 수  있는  것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에  대한  발견과  개발이  아닐까  싶다


어짜피  회사가,  조직이  우리에게  보장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회사는  안정적인  자리를  내어  주는  것  같지만,  그  자리는  언제라도  없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건  여성이든,  남성이든  마찬가지다.  이제는  믿을  것은  자신  밖에  없다. 그 래서  늘,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이  박수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조직에  목숨  거는  대신에  자신을  돌아보며,  ‘를  가꾸며  살기  때문이다.


그린데이님의  새로운  도전에  무한한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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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2] 에버노트 전도사, 홍순성

책읽기 2014.02.08 21:26


 

직장을  다니는  우리들,  빈번하게  내뱉는  말이  있다.  “이놈의  회사,  내가  때려치든지  해야지..!!”  평소에는  맘  속  혼잣말이었다가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거침없이  그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여지없이  알람  소리에  일어나,  허둥지둥  회사로  향하는  우리네  일상이  반복된다.


정말로,  진심으로,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  다음  직장을  알아볼  것이고,  혹은  어쩌면  창업을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조직에  소속이  되지  않은  채  나홀로’  독립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방송인  이거나,  전문직이거나,  특별한  재주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홍순성씨는  그런  의미에서는  나홀로 서기에  성공한  아주  특이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엔지니어로  99년부터  직장에  들어가  보안  전문가로  일했고  그  이후에는  리커버리(Recovery, 복구)나  네트워크  상의  로드  밸런싱 (Load Balancing)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자신의  전문  영역을  단단하게  굳혔던  그가  조직을  버리고  홀로서기를  했다.  조직만  버린  것이  아니라  보안  전문가라는  영역에서도  탈피했다


2006년  회사를  나와서는  보안  SW  및  컨설팅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2008년  부터는  어떤  계기가  있어서  그만  두었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  뛰어  들었다.  그런데  분야라는  표현도  어찌보면  의미가  없다.  엔지니어에서  다른  분야로  전환을  했다기  보다,  그는  트렌드에  앞선  어떤  분야를  소개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없었던,  일종의  전도사(Evangelist)라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  낸  셈이다.  그리고  그  일을  2008년부터  지금까지,  6년여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가  늘  마음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직장을  때려치고 싶은’  마음을  직접  실행하고  1인  기업으로  오래  일하고  있는  그의 비결이 궁금했다.  어떤  계기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좀  오래된  경험을  이야기  해주었다.


“2003년에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진  다양한  제품군에서  협력사들을  모두  불러  진행하는  행사였죠.  전  그  당시  네트워크/보안 전문가로  활동했었는데,  굉장히  중요한  분야이고  기술력도  필요한  영역이어서  제  일에  대한  자부심이  컸습니다.  말하자면  오피스’  제품군을  다루는  사람들  보다는  제가  전문성이나  희소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정작  행사에서는  오피스  관련  사람들을  훨씬  더  대우해주고  챙겨주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가  궁금해서  마이크로소프트에  있는  사람에게  왜  그러는지  물어  보았어요.  정확한  표현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사람은  오피스  제품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대중적인  인지도나  시장성  면에서  네트워크/보안  제품  보다 오피스 제품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때,  그는  ..이라는  세  글자의  중요함을  알게  됐다.  그  때의  경험이  홍순성  씨의  엔지니어  마인드라는  갑옷을  벗기는  계기가  됐다.  그  후로  그는  대중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엔지니어의  마인드와  대중성을  결합해서,  ‘대중적인  기술의  변화를  알리는  일이  그가  하고  있는  일이다.  홍순성씨가  처음  전도사의  역할을  맡았던  것은  트위터였다.  ‘트위터  200%  활용  7일만에  끝내기라는  책을  발간하고  트위터가  낯선  사람들에게  사용법과  활용법을  알리는  일을  했다


그  다음에  잡은  주제는  스마트폰,  타블렛  등  스마트  기기  열풍을  일하는 방식으로  해석한  스마트  워크였다.  2012/2013년에는  에버노트에  대한  책을  썼다.  이런  주제를  잡게  된  기준은  그냥  재밌고  좋아서이다.  


1인  기업으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그는,  “일을  즐기면  된다고  간결하게  답했다.  혼자서  일을  찾고  만들고  해나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아무리  상사에게  쪼임을  당해도  한  달이  지나면  월급이  나오는  직장인  들과는  다르다.  그는  스스로  기회를  찾아야  하고,  뭔가  끝없이  일을  만들어  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은 없는지  궁금했다.


없을  수가  없겠죠.  뭔가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몇  년  이렇게  지내다  보니  불안감을  견디는  법을  터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시간을  견디며,  즐거운  일을  찾아  하다  보면  때론  예상하지  못한  기회들과  만나게  되죠.”


매  시간을  견디고,  즐겁게  보낼  줄  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됐다.


지난해부터  그가  빠져  있는  일은  네이버에  만든  에버노트’  카페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그냥  재미  삼아  만든  카페에  회원이  늘어  이제는  식구가  1만명  가까이  된다.  오프  모임에서  에버노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는게  큰  낙이  됐다.  


에버노트를  쓰는  사람들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본인들  스스로가  앞서  나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에버노트를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이  그에게는  함께  먹고  마시고,  노는  친구이자  동료이자,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는  선배의  역할을 하 는 것이다.

 

홍순성씨가  전한  개인의  브랜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팁은  미디어  채널을  잘  활용해서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라는  것이다.  그는  일찍부터  혜민아빠라는  닉네임으로  블로그를  운영했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것이  지속적으로  홍순성이라는  이름을  알리고  유지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  것이다.


최근에  그는  에어  드론에  빠져  있다.  얼마전  아마존이  에어  드론을  배송에  활용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발표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드론을 띄워  사진찍는  것이  요즘  그의  낙이다.  


날  풀리면  드론을  가진  사람들끼리,  한강  고수부지에라도  모여  드론을  날리며  노는  모임  한번  만들어  봐야  겠어요라는  말  속에는  기대와  설레임이  한껏  묻어  있었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지속적으로  즐거운  일을  찾아  내며  살고 있는지...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은  하는지...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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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읽기 1] "재미있는 일을 하다보니 어느날 갑자기 유명해졌네요" - 하상욱 작가

책읽기 2014.02.01 09:00



요즘  들어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마치  이십년  전쯤으로  돌아가  기자가  된  듯하다.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약속  정하고,  처음  만나  인사하고  나를  소개하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얻을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을  통해  참  많이  배우고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다.  소중한  만남의  경험을  블로그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생각읽기' 라는  글을  시작한다.


[생각읽기 1.] 소셜 시인 하상욱


지켜  준다더니

아껴  준다더니

   - 개인정보



너를  잡은손

놓지  않을래
   - 스마트폰







그는  분명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영국의  어느  시인처럼,  갑자기  이름이  알려졌다.  불과  일년  반  전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 했다.  그러던  그가  시가  메마른  이  시대에  누구나  무릎을  치며  공감하는  서울 시로  형식도  새로운  소셜시를  던져주며,  이제는  작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어떻게  시를  쓰시게  되었어요?  원래  문학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라고  물었더니  전혀  다른 쪽에서  답이  날아왔다


원래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게임업체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조금  일하다가  기획  일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디자인과  기획을  함께  했죠.  제게는  기획이  더  맞았습니다.   우연히  인터넷  기업에서  기획자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자리를  옮겼죠.  그렇게  인터넷  기획자로  일을  하다가,  그냥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글을  쓰게  된거죠.”


그냥,  재미로요…?”


.  뭐  재미있는  일  없나…  생각하다가…  정말  단번에  몇  십  편쯤,  [서울 시]에  발표했던  글들을  쓰게  됐어요.  그게  2012  7월 18일 이었죠.  쓴  글들을  SNS로  친구들과  나누다  보니,  좋다고  박수치는  사람도  생겨나고,  그러니까  또  재미 있어서  쓰게  되구요   그러다가  글  들을  묶어  시집을  내게  된  겁니다.”


시집은  전자책으로  발행했다.  전자책  업체인  리디북스에  다니고  있었으니  시집을  내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작가들이  책을  낼  때  처럼  출판사를  노크하지도  않았고,  혼자서  뚝딱  그림  그리고  편집해서  발행을  했다.  그  역시도  재미있는  일을  한다는  것  이상의  생각은  없었다.


시집으로  유명해졌지만  그는  시인으로  불리는  것이  흡족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글을  쓰니 작가는 맞지요라고  본인의  직업을  정의 했다.


재미있어서  시를  쓰고,  재미 있을  것  같아  책을  냈는데,  2012  9월에  낸  책이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고  방송에  소개  되면서  차츰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외부에서  강연  요청도  많이  들어  오고  활동  들이  늘어났다.  더  이상  직장인으로  조직에  매어  있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두  가지를  병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  두게  된  것이  불과  일년  전  일이다.  그 후에는  하상욱’  이름  석자를  걸고  하는  일들,  강연을  하거나  기업들과  함께  마케팅  프로젝트를  하며  바삐  보냈다


분명  직장  생활을  하는  것보다  명예도  얻었고,  구체적으로  수입에  대해  묻지는  않았지만,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간  여유도  많아  졌다.  보통  이쯤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유명세를  어떻게  더  확장하고  어떻게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래서,  ‘하상욱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혹은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이번에도  예상과는  조금  다른  답이  돌아왔다.

더 유명해지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외부의  요청을  가리고  자르면서  선택했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것,  혹은  통제할  수  있는  것의  선을  지키려 했습니다.  제  식대로  표현하자면  재미’  있는  일,  혹은  그러면서도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기준이라면  기준일  수  있겠네요.”


질문을  던질  때  마다  일반적이지  않은  답이  돌아왔다.  하상욱  작가는,  자신만의  기준과  선택,  살아가는  방식이  뚜렷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보통  기업에서  강의를  하는  경우,  신입  사원  대상의  강의  보다는  임원  강의를  좀  더  의미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혹은  내가  세속적이어서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런데  그는  기업에서  강의를  할  때  신입사원 처럼  젋은 층을  만나는  것이  훨씬  좋았다고  했다.  나이  지긋하신  임원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은  고역으로  느껴질  만큼  힘들었다는  것.  표정  변화와  웃음이  없는  임원  강의는  힘들어서  가능하면  거절하는  편이라고  했다.


또  있다.  지상파  유명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서  방송  제의가  많이  왔음에도  그는  모두  거절했다고  했다.  라디오  방송도  KBS와  EBS 두  곳에  기회가  있었는데  EBS를  선택했다.  EBS 보다는  KBS를  선택하는  것이  보통의  시각인데도  말이다.


SKT나  코카-콜라  등  유명  브랜드와  마케팅  프로젝트도  했지만,  이것  역시  많은  제안  중에서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고  너무  자주 눈에  띄어  지겨워 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하 작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런  신중하고도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개인의  브랜드라는  게  결국  가장  자기  다운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뭔가 정해진 '성공하고  잘  알려지는  비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하는  가치를,  다른  사람들과  잘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방법일  것 같다는  조언이었다.   


작가  하상욱으로서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흡사  연애하는  것에  비유했다.  지금은  이  일에  흥미를  느끼고  빠져  있기에  열심히  하고  있지만,  언젠가  지겨워  지고  사랑이  식으면  다시  직장인이  되거나  다른  (재미있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어느날  갑자기  작가로  알려진 사람.  그러나  유명세에  취해  있기  보다는  늘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  우월감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그의  분명한  원칙이  좋았다.


그를  만난  곳은  EBS의  작은  편집실이었다.  인터뷰,  혹은  미팅을  마치고  사진을  몇  장  찍어도  되겠냐고  부탁했다.  소셜  시인은  마다하지  않았다.  세  장을  찍었는데  요즘  피부가  안  좋아져  고민이라며  사진을  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내  아이폰에  담긴  세  장의  사진을  품평하며  사진  찍을  때는  결코  웃지  않았던  그가  활짝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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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라는 콘텐츠

책읽기 2014.01.30 09:30

최근들어  생긴  습관이  있다.  팟캐스트를  통해  'JTBC  손석희의  뉴스  9'을  들으며  잠을 청하는  것이다.  팟캐스트에서는  하루  전  뉴스를  오디오로  재방을  하는데  하루  묵은  방송 뉴스도  꽤  재미있다.  워낙  뉴스를  챙겨  보지  않으니  게중에는  몰랐던  내용도  있고  제목만  알고  있던  내용에  속깊은  내용을  알게  되는  재미도  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챙겨  듣는  이유는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가  좋기  때문이다.  화제가  되는  사람들을  직접  불러서,  혹은  전화로  연결해서  질문을  쏟아내는  포맷... 은근  통쾌하다.  





아래  글은  손석희  뉴스  9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최근  100일을  넘었다고  한다)   기자협회보에  기고했던  내용으로  사람들이  손석희  앵커의  뉴스에  박수치는  이유를  적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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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연휴  동안  처음으로  종편  채널을  찾아  보았다.  개국한지  20개월  가까이  되었지만  의도를  가지고  종편  채널을  선택한  것은  처음이었다.  새롭게  JTBC  메인  뉴스  진행을  맡은  손석희  앵커를  보기  위해서였다.  앵커  바뀌고  하루  만에  종편  최고의  뉴스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으니,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손석희  앵커의  뉴스 9’은  어색하지만  신선했다.  아직  자리  잡기까지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새로운  시도로  뉴스의  변화를  기대하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합격점을  주고 싶다.  뉴스 9 방영  후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역시,  손석희!’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뉴스 9’이  보여준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뉴스에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뉴스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갔다.  이제  대부분의  뉴스는  소비재가  되어  버렸다. 하루  동안  일어난  소식을  이미  저녁  시간,  방송사  메인  뉴스가  시작하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접해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제  어디서나  뉴스와  새로운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런  시청자들에게  소식의  나열  대신  이미  알고  있는  소식에  대해  깊이  있는  진단을  제공하는  것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행보였다.  (물론  지상파  뉴스에서도  집중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지만  전체  뉴스를 분석  중심으로  구성하지는  못하고  있다).  

  

집중적인  보도를  위해  사람들과의  대담이라는  포맷을  활용한  것도  뉴스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오랫동안  라디오  시사  대담  프로그램  진행자로  잘  훈련된  손석희  앵커의  맥을  짚어  내는  질문이  위력을  발휘하며  시청자들을  집중 시켰다.  이슈와  관련된  인물을  직접  스튜디오로  불러  낸  것도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물론,  새로운  뉴스를  시도하는  손  앵커에  비해  새로운  포맷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기자들의  어색함은  앞으로  극복해야  하는  과제이지만  말이다.


또한  뉴스 9은  기존  뉴스  프로그램에  사용하는  타이틀  음악  대신  대중적으로  알려진  음악을  엔딩  뮤직으로  선택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엔딩 뮤직에도  의미를  담아  전달한다는  취지다.  더욱이  매일  손석희 앵커가  직접 음악을  선곡한다는  점도  화제가  되고  있다.  손석희  앵커가  첫날  고른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은  밥 딜런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노랫말에  담고  있다.  누리꾼들은  매일  매일  손  앵커가  선곡한  곡의  의미를  분석하며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내가  전문성을  가지고  방송  뉴스를  평가할  자질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평범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평가한다면,  손석희  앵커의  뉴스 9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뉴스의  집중적인  분석이라는  흐름은  맞췄으되,  보도와  시사  대담을  섞어  놓은  구성은  손  앵커가  잘하는  영역이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같다.  게다가  대담자들  간에  대화의  엇박자로  종종  이슈  전달을  오히려  방해하는  측면도  있었다.  방송  뉴스의 마무리를  노랫말이  의미가  있는  대중음악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뉴스 9’ 에  박수를 보낸다 . 매체에  상관없이  비슷비슷한  뉴스  구성에  지쳐  뉴스자체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질  때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와  구성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독자(시청자)들은  새로운  것을,  변화를  바란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해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뉴스 9’에  환호하는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진행자가  손석희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방송인으로 신뢰와 인기를  쌓아온  그였기에  이런  관심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우리나라  언론은  대체로  매체의  영향력으로  움직였다.  그 매체를  만드는  사람들은  영향력을  쌓는  역할을  하는  퍼즐  조각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무게  중심을  조금이라도  사람으로  움직여도  좋을,  어쩌면  움직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나가는  사람  열명이  말해도  귀  기울이지  않을  이야기도  한  명의  친구가  이야기  하면  관심을  갖는  게  이치이다.  궁극의  콘텐츠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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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연결하는 관계의 비밀, Grouped 세미나

책읽기 2012.09.05 18:09

얼마전 발간된 Grouped는 책을 읽은 사람들의 평판이 좋은 책이다. 한글로 번역되기 전부터 원서를 읽고 이 책의 번역서가 나왔으면.. 하고 바랐다는 사람들도 꽤 많다. 왜 그럴까? 


소셜 미디어, SNS에 대한 책이지만 기술서가 아니라 '사회 행동론'적으로 접근한 인문사회학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소셜'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폴 아담스(Paul Adams)는 UX 컨설턴트로 일하다 구글에 합류해 다양한 서비스를 기획했고, 특히 구글 플러스 기획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현재는 페이스북으로 자리를 옮겨 브랜드 디자인 부문 글로벌 헤드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사회학적으로 권위있는 다양한 논문들을 인용하며 이런 사람들의 행동이 (주로) 페이스북이라는 소셜 공간에서도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소셜 미디어, SNS라는 새로운 영역이 수만년을 이어온 인간의 사회적 행동, 그룹의 역할과 관계 맺음과 결코 동떨어지지 않고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까지 SNS를 새로운 '기술의 흐름'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던 우리 사회의 일반론에 비춰 보면 상당히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이다. 


오늘 가로수길 강남 트렌드 센터에서 소규모의 세미나를 열었다. 



Grouped 책의 발간에 힘이 되고 많은 관심을 보여주신 주변 분들을 초청해서 다 함께 Grouped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시간을 가졌다. 워낙 국내 SNS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어서 의미있는 다양한 얘기들을 나눌 기회를 가졌다. 


한상기 박사님: "워낙 이 책은 KAIST에서 강의할 때부터 수업시간을 통해 강조했던 다양한 논문

                      들을 폭넓게 인용하고 있으며 이를 SNS 공간의 사례와 잘 정리해 주어서 국내

                      에서 소셜 미디어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이 꼭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강정수 박사님 : "이 책은 인문사회학적인 교양서로 추천할 만하다. 요즘에는 미디어를 얘기

                       하거나 사회 변화를 얘기할 때 '소셜'을 빼놓을 수 없는데 꼭 읽어야 할 내용

                       들을 잘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그룹간의 관계관리가 중요하다는 측면

                       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이크로타게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으며 

                       실제로 미국 대선 등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장효곤 대표 :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영향력자'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새로운 주장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영향력자의 팔로워 수라든지, 

                    팬수라든지 양적인 개념과 관심사나 관계망이 어떻게 메시지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부족했다." 


김익현 기자님 : "영향력자라는 개념에 대해 전면 부정을 했다기 보다는 조금은 다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이런 그룹들을 정의하고 어떻게 메시지 

                       확산이 되는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워낙 관심이 높은 주제이어서 심도있는 분석과 의견들이 오고 갔지만 시간 부족으로 더 많은 얘기들을 풀어내지 못한 부분은 아쉬웠다. 어쨌든 소셜과 SNS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제까지의 기술적, 혹은 양적인 개념, 광고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그것의 핵심에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과 그로 연결된 그룹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했다.


Grouped가 조만간 전자책으로 발간된다. 그 시점에 맞춰 오늘 세미나 참석하신 분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소셜 리딩 프로젝트도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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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ped: 세상을 연결하는 관계의 비밀' 책소개

책읽기 2012.07.26 16:43



Grouped 세상을 연결하는 관계의 비밀

저자
폴 아담스 지음
출판사
에이콘출판 | 2012-07-2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이 책은 사람들 간의 소규모 그룹들이 소셜 웹에서 어떻게 형성되...
가격비교


올해초부터 번역한 책 'Grouped: 세상을 연결하는 관계의 비밀'이라는 책이 드디어 출간됐다. 워낙 좋은 책이어서 벌써 반응도 좋고 많은 분들이 추천도 해주시니 기쁘고 뿌듯하다. 벌써 역서, 저서를 합쳐 일곱번째 책이 되었다. 


책 소개글은 역자 서문을 대신한다. 책소개 쓰기가 귀찮아서가 아니라, 역자 서문을 정말로 구구절절 마음을 담아 썼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종종 길고 지루한 강연에서 보다는 가슴을 울리는 짧고 간결한 한마디 말에서 얻는 경우가 많다.

 

2007년부터 소셜 마케팅을 한다고 동분서주 했다. 인터넷 환경이 소셜 웹으로 진화하고 있으니 기업들도 당연히 소셜에 맞는 기업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점차 내부 조직관리와 상품 개발과 CRM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겠지만 많은 기업들이 가장 쉽게,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역시 홍보와 마케팅 등 커뮤니케이션 분야였다. 패러다임이 소셜 웹으로 변화하는 시기에 기업들에게 소셜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한다는 것은 사실 멋진 일이었지만, 멋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광고소셜의 부딪침이었다.

 

사람들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고개를 끄덕이며 소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하겠다고 결심하지만 결국 생각은 광고의 정의에 머물러 있었다. 통제된 메시지와 양적인 확산이 인지의 핵심 요소로 여겨졌던 광고의 방식으로 소셜을 정의하고 실행하기는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기업들은 여전히 소셜 환경에서도 통제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고 그 메시지가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많이 퍼졌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했다. 소셜 커뮤니케이션에 자원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투자 대비 효과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있어야 하고, 그 설명이 종종 광고의 틀에서 벗어나면 모호하다고 부정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런 부딪침에 지칠 즈음, 이 책의 번역을 맡게 되었다. 150 페이지 남짓한 책이었지만 그 동안 내가 업계에서 부딪치고 갈등하며 고민해왔던 많은 질문에 대한 깨달음을 주었다. 소셜 웹을 바라보는 시각을 선명하게 정리해주고 마케터의 입장에서 소셜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조언까지 담겨있다.

 

핵심은 사람들의 관계이고, 관계 기반의 그룹이다. 그 그룹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정보의 습득과 확산에 기여하는지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 사이의 그룹을 이해하는 것이 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사회의 아젠다 세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소셜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에게도 커다란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소셜'의 중요성이 많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댓글알바에 목숨걸고 양적 확산에 집착하는 많은 분들에게 한줄기 깨달음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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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통일이 필요한 이유: 법륜스님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를 보고...

책읽기 2012.07.10 11:36

어렸을땐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자주 부르며 살았던 세대이지만 우리에게, 적어도 나에게 통일은 잊혀진 숙제와 같은 단어였다. 제출 기한이 지났으니 숙제에 대한 부담감도 훨씬 줄었다. 대학때 까지만 해도 민족통일의 구호를 들었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남북 문제'일 뿐, 과연 사람들이 통일을 원하는지 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이야기하며 눈물 흘리는 실향민의 얼굴 조차, 그 원초적 공감과 가슴 뭉클한 안타까움 조차 TV 화면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같다. 


최근 법륜스님의 '새로운 100년 - 가슴을 뛰게 하는 통일 이야기'를 읽고 감동을 받아 어제 스님의 북콘서트에 참석했다. 강연 내용은 책과 마찬가지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서울대 문화관 1, 2층 2천여석이 관중들로 가득 찼다. 



강연을 듣고 나니 새삼 더 큰 감동이 몰려왔다. 이제껏 통일은 이념, 혹은 정책 이거나 같은 시대를 사는 부모 세대의 아픔이었다. 두가지 모두 개개인의 삶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적어도 실향민의 자손이 아니라면. 


그런데 법륜 스님은 과거의 숙제였던 '통일'을 우리 세대의 비전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우리 세대에게 통일이 필요한 이유는, 우선 통일이 남한과 북한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경제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남한의 성장 중심의,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가 한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통일은 남한에는 새로운 돌파구를 가져다 줄 것이며 장기적으로 경제 규모의 확대를 통한 자립 성장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한 북한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남한의 자원(기술+인력)을 활용해서 경제적 풍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북한 통일은 늘 강대국의 세력 구도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었던 역사의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바로 지금이, 우리의 힘으로 통일 논의를 진전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법륜 스님은 짚어내고 있다. 


우리의 새로운 100년을 기약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통일 문제를 지나간 감정과 이념의 논리로 되풀이하지 않는 통합의 리더쉽이 필요하고, 그런 리더를 선택하고 지지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 법륜 스님의 강력한 주장이다. 


어제 콘서트에는 서울대 조국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도 참석했다. 

             <네남자의 무대샷>


정치는 우리 삶의 근간을 좌우하는 대단히 중요한 활동이다. 우리 시대가, 우리 세대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함께 공유하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제까지 정치와 이념에 무관심했던 것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 이념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륜 스님의 통일 논의는 한껏 울타리안에서 치고 박고 갈등하며 싸우던 우리에게 울타리를 벗겨 내는 듯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보, 보수의 갈등이나 내 앞으로 5년에 누가 이득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우리 나라가 50년, 100년을 꿋꿋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다. 50년 앞을 내다보는데 우리 자식들 좋은 대학 가게 하려고 사교육비 쏟아 붓는게 답이 아니라는 분명한 선언을 들었다. 


법륜스님의 말씀은, 사실 거창한 통일이라는 주제였지만, 그 근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우매한 대중인 내가 이자리에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통찰이 가득했기에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어제 받은 좋은 에너지로 오늘부터 이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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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가 전자책을 발행한 이유

책읽기 2012.07.09 15:40

미디어유를 설립해서 벌써 6년째를 맞고 있지만 아직도 주변에서 우리 회사가 무얼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꽤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우리 어머니는 내가 무슨 컴퓨터를 잘하는 것으로 알고 계신다. 예전에 만들었던 '드림' 때 벤처기업으로 신문에 몇번 소개됐던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그밖의 가족들도 정확하게 내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정리하지는 못한다. 


함께 모임을 한지 2년이 넘는 와인 모임에서도 "그런데, 하시는 일이 정확히 뭐에요?"라고 묻는 회원들도 있다. 그만큼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업력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뭐라 정의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소셜'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이라는 MU가 하는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가끔 나도 헷갈릴 때도 있다. 너무나 다양한 범위의 일들이 뒤범벅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지. 


그나마 우리가 하고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또 명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컨텐츠' 이다. 컨텐츠 전략을 짜는 일이든, 주목받는 컨텐츠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감지하는 일이든, 혹은 직접 컨텐츠를 생산하는 일이든 우리가 하는 일의 근간에는 컨텐츠가 있다. 소셜 환경에서 소통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컨텐츠라 믿고, 신뢰와 친분도 좋은 컨텐츠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MU가 컨텐츠를 사업의 근간으로 하는 전자책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그닥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Being Digital' 로의 전환은, 시작은 컨텐츠 제작의 디지털화에서 비롯되었고 유통(컨텐츠가 전달되는 방식)의 디지털화로 마무리 되고 있다. 뉴스의 배포가 디지털화되었고 이제 책이 디지털로 뿌려지는 첫걸음에 와있다. 


단순히 좋은 컨텐츠를 기획하고 디지털이라는 속성에 맞게 잘 제작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 다는것이 전자책 사업을 고려하면서 우리가 느낀 매력이자 도전이었다. 


이제까지 웹 환경에서, 공감받을 수 있는 컨텐츠 만들기에 고심했던 노력을 모바일 환경, '책'이라는 형태와의 결합으로 확장시킨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전자책 사업의 정의이다. 


물론 경험이 없어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실험삼아 두 권의 책을 발행했다.


첫번째는 미디어유의 회사 소개서.


   <아이튠즈에 등록된 미디어유 회사 소개서> 

PPT와 PDF로 만들 수 있는 것을 iBook Author로 제작했다. 인삿말 동영상과 링크도 추가했다. 재미있는 시도라고 우리끼리 뿌듯해하고 있다. 


두번째이자 판매용으로 처음 제작된 전자책 '아이패드로 배우는 소품 만들기' 이다. 

<아이패드로 배우는 소품 만들기: 다운로드 링크>

평소 손뜨개에 관심이 많은 나와 bora씨가 기획해서 뜨개질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도 자그마한 소품이라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책으로 만들었다. 손뜨개와 같은 DIY 관련 책은 동영상이라는 새로운 컨텐츠 포맷이 유용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지금은 여름이라서 손뜨개를 뜨기에는 조금 덥지만 시리즈로 꾸준히 발간할 예정이다. 겨울 쯤에는 '내 남자를 위한 목도리 뜨기'가 나오지 않을까? :)



새로운 만남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떤 만남이 이어질지 긴장하게 된다. 그런 설레임으로 시작하는 전자책 만들기, 새로운 컨텐츠 영역에 도전이 즐겁고, 많은 것을 배우는 여정이 되기를... 내 스스로에게 바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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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수 있다던데...

책읽기 2012.05.10 10:12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책은 관심사와 직업과 취미와 취향 기타 등등 많은 것을 반영하니까. 


최근들어 틈틈이 읽고 있는 책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저자
마이클 샌델 지음
출판사
와이즈베리 | 2012-04-2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시장은 과연 항상 옳을까? 모든 것을 사고파는 사회를 ‘마이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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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이번에는 '시장과 도덕'의 문제에 대해 정의(definition) 했다. 언제부터인지 '돈'은 편리하고 유용한 도구를 넘어서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가고 있다. 주변에 있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이제 막 성인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할 나이에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라. 의외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답을 만날때가 많을 것이다. 젊은(혹은 어린) 친구들의 꿈은 사회에 대한 이미지로 형성된다. 대통령이나 의사, 변호사가 꿈인 아이들이 많다는 건, 뭐라고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그 직업이 갖는 위엄과 혜택을 느낌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어도 어떤 직업의 형태로 표현되지 않고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목표는 대통령이 되어서 세상을 움직이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든가,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싶다든가, 혹은 변호사가 되어 어려운 처지에 이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든가하는 직업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언제부터인지 '돈'이 목표가 되는, 그것도 경쟁적으로 금전적인 가치에 의해 줄세우는 사회 의식과 환경이 불편하고 부당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이 책을 통해 얻게 되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우리는 이제 '시장경제'체제가 아닌 시장사회로 넘어가고 있다며 문제의 핵심을 지적한다. 모든 것을 사고 파는 시대에 대한 진단, 꼭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지...




우리집 건강식탁 프로젝트

저자
노봉수 지음
출판사
예문당 | 2012-04-23 출간
카테고리
건강
책소개
음식을 올바로 섭취하고 병을 몰아내는 법을 일깨우는 『우리집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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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예문당을 직접 운영하시며 페친이기도한 오미경님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요즘 부쩍 '나잇살'이 허리 부위에 집중 창궐하여 걱정하던 차에 내가 먹는 음식의 문제를 진단하려고 읽어 보았다. 책은 좋은 음식의 정의, 몸에 득이 되는 건강식품, 병을 몰아내는 음식, 식품에 관련된 상식 등으로 나눠져있다. 


예를들어 요즘 주목받고 있는 유기농 식품에 대한 정의와 유기농 식품이 정말 건강에 좋은지, 감을 먹으면 변비에 걸린다는게 사실인지, 라면은 정말 몸에 좋지 않은지, 단것을 많이 먹으면 정말 당뇨병에 걸리는지 등등 평소 궁금했던 주제 들이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어 좋았다. 이 책은 처음부터 정독을 해도 좋겠지만 궁금한 내용 중심으로 읽어도 흥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같다.




거침없이 제주이민

저자
기락 지음
출판사
꿈의지도 | 2012-02-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다른 삶을 꿈꾼다면 사는 곳을 바꿔라!과감한 육지탈출에 성공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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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관광지이다. 세계 7대 어쩌구라는 수식따위 필요없다. 제주도에 가면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이면서도 토속적이고 시원하고 따뜻하고 컬러풀한 매력은 언제나 탄성을 자아낸다. 오죽하면 나는 태풍불때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심지어 태풍이 몰아쳐도 멋질 것같았기 때문)


나이가 드니 아예 제주도에 내려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래서 "거침없이" 책을 샀다. 하지만, 아직 다 읽지는 못했다. 제주 이민에 성공한 사람들의 정착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국적인 제주의 색채만큼 그 곳에서의 삶이 매력적일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도시생활이 주는 편의성과 안정된 직업(?)이 주는 욕심만 버릴 수 있다면...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로 돌아가서, 내가 최근 읽고 있는 책을 보니 요즘 내가 참 복잡미묘함을 알 수가 있겠다. 이제 좀 소설책을 읽어 볼까 한다. 한때 관심갖던 '소셜'책 대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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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를때..." 막 말하지 않는 소통의 비법

책읽기 2011.06.22 11:59
A는 행사가 잘못된 것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 고객의 탓이라 열심히 항변한다. 선은 이렇고 후는 이러해서 이러저러 했는데.. 어쩌고 저쩌고.. 결국 고객은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린다며 억울해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게 보면 누구의 탓이 중요한가? 어그러진 행사의 부분을 어떻게 마무리하는게 더 중요하다.

B는 늘 상사가 기분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한다며 틈만나면 옆사람에게, 친구들에게 상사욕을 해댄다. 그러니, 본인이 갈피를 잡고 일을 할수가 없고 어떻게 해도 욕만 먹는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사는 왜 그럴지 한번 생각해 본적은 있는가? 상사가 다른 사람 괴롭히는 것이 취미가 아닌 다음에는 상황에 따라 그만한 이유쯤은 있을 수도 있다.

C는 또 다른 불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직장인들의 밤은 온갖 스트레스를 털어 놓는 술집에서 환한 빛을 밝히고, 저물줄을 모른다. 누구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혹은 친구 때문에, 혹은 함께 사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하다며 털어 놓는데 가면 갈수록 불만의 소리는 더 커지고 굵어지는 것같다.

대개 대화를 많이 하면 상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기반으로 이메일, 메신저, 거기에 최근에는 트위터, SNS등 통신채널이 넘쳐나건만 상대를 더 잘 이해하기는 커녕 우리의 불만은 넘쳐나기만 한다. 왜 그럴까? 아니, 그럴땐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그 이유와 답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 '스팀덥(Steamed-Up):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를때'는 인터넷에 스마트폰까지 가세하여 더더욱 커뮤니케이션이 양적으로 늘어난 환경에서,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을 하여 자칫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사실 답은 간단하다. 멈춰서, 한걸음 물러선 후에 다시 생각하고 대응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뻔한 답이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서술 구조가 마치 우리 일상을 찍어 놓은 듯 스토리로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어찌 번역을 맞게 되어 이 책을 읽었는데, 읽으면서 내내 내 자신을 뒤돌아보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길 수 있었다. 재미있고 짧은 책이다. 하지만, 그 여운이 오래 생활 속에서 남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주부터 서점에 깔릴 책을 역자의 자격으로 일찍 받았다. 이 글을 읽고 이 책을 너무 읽고 싶어하는 독자가 있다면 몇 권 나눠 볼까 한다.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들 중에서 세 분에게 이 책을 드리고 싶다.

* 덧: 제가 언제까지라는 안내를 드리지 않았네요. 이미 세 분을 선정해서 개별 안내 드렸습니다. 더 많은 분들께 보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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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사랑'과 '자학의 시', 판타지와 현실의 벽 사이에서...

책읽기 2011.05.21 11:43
요즘 최고의 사랑이라는 드라마가 화제다. 이 드라마는 한눈에 보아도 '시크릿 가든'표이다. 준수하고 화려한 외모의 남자 주인공이 상대적으로 보잘것 없는 여주인공에 반해가는 스토리 구성도 그렇고 주인공 독고진(차승원)의 캐릭터나 말투에도 어딘지 시크릿 가든 김주원(현빈)의 오만함이 배어 있다. 그 뿐아니다. 드라마에서 구애정(공효진)의 아버지와 조카가 입고 나오는 추리닝은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입었던 '한땀한땀' 트레이닝복의 짝퉁이고, 길라임(하지원)이 오디션 보았던 감독 외국인은 최고의 사랑에서는 독고진의 CF 감독으로 다시 등장하며 '소품'에서도 시크릿 가든을 연상케하는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화제의 드라마 <최고의 사랑>, 출처: MBC 홈페이지

아무리 식상한 스토리에 구성이 비슷한 드라마가 다시 등장해도, 역시 팬들은 '최고의 사랑'의 묘미에 다시 한번 빠져든다. 어찌됐건 잘난 사람은 멋있기 때문이 아닐까. 김주원이나 독고진처럼 기럭지에 옷매 훌륭하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멋있다. 좋은 차에, 좋은 집은 그저 거들 뿐이다. 아무리 그들이 거만해 보이고 싸가지 없는 말들을 툭툭 내뱉어도, 그저 보기에 좋은 것이다.

김주원이나 독고진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팍팍한 현실을 잠시 포장해줄 수 있는 '환상'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 적어도 드라마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금요일밤, 너도 나도 얘기하는 '최고의 사랑'을 몰아치기로 보다가 잠시 (나이를 잊고) 독고진의 느끼하지만 진심이 담긴 것같은 눈빛에 빠져 있다가 문득, 얼마전 보았던 '자학의 시'라는 일본 만화가 생각났다.


일본 작가 고다 요시이에의 4-5컷 연작만화로 구성된 '자학의 시'는 전직 야쿠자 출신의 백수건달 이사오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술집등을 떠돌다가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유키에의 이야기다.

이사오는 늘 밥상을 뒤엎는다. 반찬이 맘에 안들어도, 라면이 맛이 없어도, 맥주가 미지근해도, 미안할때도, 부인의 배려가 고마울때도 밥상을 뒤엎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식당일을 해서 살림을 꾸리고 즐겁게 남편 밥해주고 잠들었을때 손톱발톱을 깍아주는 것을 유키에는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만화 어디에도 판타지는 없다. 오히려 현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서 발가벗겨지는 기분을 느낄 뿐이다... 모두들 유키에에게 저런 남편과 살지 말고 새출발하라고 권유하지만, 유키에는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두권짜리 만화책 내내 작가는 진정으로 유키에가 행복한 이유를 판타지 하나 싣지 않고 조목 조목 이야기 한다. 아주 냉혹한 현실의 언어로. 그런데, 나는 2권을 겨우 마치고서야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같았다.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저 마음 밑바닥에서 고여진 진심이며, 사랑이지 겉으로 드러난 겉모양새와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며 현실인데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눈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보다는 저 허공 어딘가에 펼쳐질 판타지를 더 자주 상상하며 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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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함과 성공에 늘 허기진 우리들이 찾아야 할 곳, 심야치유식당

책읽기 2011.05.13 15:09
내가 철이 든건 마흔이 다되어서 였다. 철이 들었다기 보다는 '나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고 멋지게 표현하고 싶다.

우리가 늘 아둥바둥 열심히 사는데도 마음의 평정을 얻기는 커녕 늘 허둥대고, 늘 부족함에 괴롭고, 늘 조금더 갈구하게 되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거울이 없거나, 혹은 그 거울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볼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태어나서 삼십대 중반이 넘도록 제법 범생이과로 학교와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보는 눈'에 맞춰 삶을 살았던 내가 조심스럽게 내 속마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느닷없이 떠난 미국 유학 시절이었다. 내가 풍운의 뜻(?)을 안고 유학의 길을 떠난 건 서른하고도 여덞살때의 일이었다. MBA 프로그램을 공부하러 갔지만 더 큰 배움은, 내 스스로에 대한 성찰에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덩그라니 남겨져 있으니 건강을 걱정해줄 가족도 없었고, 뭔가를 잘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보는 눈'도 없었다. 공부는 무척이나 힘들었고 나이 들어 굳어진 머리는 노력이 스며들 공간이 적었다. 무척 외롭고 막막했는데 그런 시간을 견디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 바로 나와의 대화법 이었다. 

내 마음의 소리가 나를 보호하고, 나를 걱정하고, 또 때론 나를 채찍질 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새벽부터 팀프로젝트하고 수업하고, 떠듬거리는 영어로 발표하고 기진맥진해서 집으로 돌아갈 때 즈음엔 내 마음의 소리가 이야기를 한다.  
 
  "지선아, 오늘 하루 너무 힘들었지? 집에 가기 전에 수퍼에 들러서 맛난 고기와 와인 한병 사서 마시는 건 어때? 오늘 고생했으니 영양보충을 좀 해야돼..."
라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곤 나를 수퍼마켓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혹은, 시험을 망치고 풀 죽어 있을때, 다시 내 마음의 소리는 등장한다.
  "괜찮아. 주말에 공부 안하고 잤으니 어떻게 시험을 잘 볼 수 있겠니... 그리고 어짜피 성적이 네 목표는 아니었잖아. 그저 시험 끝났다는데 만족하자구...!"

주말 아침엔 내 마음의 소리는 내게 데이트를 신청해 오랫만에 해변가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영화를 보러 나가기도 했다.

스스로 나를 보살피고 나와 대화를 하면서, 나는 비로서 내가 좋아하는 것, 사회적 가치에 억눌려 발현되지 못했던 내 성격 등등 나에 대해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세상을 꼭 사회적 가치나, 일반화된 통념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는 참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왜 종종 감옥이나 유배지에서 훌륭한 성찰이 담긴 책들이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깨달음은 한번 주입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다시 사람들과 섞이고 사회구조의 한 부분으로 살다 보면 늘 눈에 보이는 결과나 성공, 혹은 사회적인 통념상의 가치에 갈증을 느끼게 된다. 비타민을 먹듯이, 주기적으로 갈증을 풀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엔 여전히 나와의 대화법이 유용하긴 하다.


지난 주말에 친구가 선물해준 '심야치유식당'이라는 책을 읽었다. 정신과 의사이신 하지현 선생님이 쓴 책인데, 소설같은 구성으로 엮어 읽기도 쉬웠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전직 정신과 의사로 의사를 그만두고 술을 파는 '식당'을 운영하는 철주라는 인물이다. 이 인물이 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진단하고 그것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로 구성됐다. 정신과를 찾는 환자라기 보다는 세상을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내 이웃과 나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같아 더더욱 공감이 간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살도록 교육받고 독촉받은 우리들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삶에 한뼘의 여유공간은 있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이 마음에 와 닿는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혼자 떨어져 살았던 유학시절, 나와의 대화법이 어쩌면 내 삶의 한뼘의 여유공간을 만드는 작업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에는 정말 처절했던 나의 노력들이 이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의 주인공들 같아 더욱 이 책에 빠져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후배들이 서점에서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으며,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고 사회 관념적 성취에 한걸음 다가서도록 독려하는 대신에, 이런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삶에 여유공간을 만들어야 남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더 따사로워 질 것이고, 그래야 우리 모두의 행복지수가 올라갈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저자이신 하지현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너무 궁금해졌고 만나고 싶어 졌다. 혹시 트위터 같은거 하시지 않으려나.. 생각했는데 며칠전 트위터에서 그 분(@jhnha)을 찾았고 팔로잉했다. 아, 정말 놀라운 SNS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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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의 기술을 드립니다.

책읽기 2010.12.08 17:33
지난주에 제 두번째 책 '소셜 네트워크: 확산의 기술' 발간 소식을 전달하면서 댓글이나 트위터/미투데이 확산 해주신 분들 가운데 다섯분께 책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소셜미디어 포비아를 극복하자! 소셜네트워크 확산의 기술)


댓글 달아 주신 분 들 가운데 이미 구매하신 걸 확인했거나 한 경우는 제외하고 아래 여섯분께 드리겠습니다.

- 그_순간 님 (http://themoment.pe.kr/)
- Nehe님 (http://blog.daum.net/ytrty)
- 송양주님(http://songyangju.tistory.com/)
- Zet님 (http://bloggertip.com/)
- LOMO님
- danbigreat님

당첨되신 분들은 비밀댓글로 주소와 연락처 꼭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어 주시고 많이 추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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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 포비아(Social Media Phobia)를 극복하자 - 소셜네트워크 확산의 기술

책읽기 2010.12.01 16:07

두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뭐든 처음 할땐 막막하긴 해도 겁없이 달려들어 힘든지도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두번째가 어렵죠. 그런 것처럼 이 책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원고를 쓰는 과정도 그랬고, 책을 만드는 과정도 그랬습니다. 

원래 6월말에 탈고한 책을 여러차례 재편집하고 수정했지요.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워낙 소셜 미디어, 소셜 네트워크가 빠르게 변화하니 원고를 마감하고 뒤돌아 서면 벌써 새로운 내용이 나오고, 기운이 바뀌어 있고... 그렇게 수정하다보면 나중에는 처음에 뭘 쓰려 했는지 조차 까마득해질 때가 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어렵게 책을 내었습니다. 그간의 고생한 흔적들로 보면 뛸듯이 기뻐해도 모자랄 듯한데, 어쩐 일인지 원고를 들고 있을 때보다 더 안절부절합니다. 세상과 만난 이 책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이지요. 마치 아이를 키워 유치원, 초등학교에 보내는 기분이라면 조금 생뚱 맞을까요? 아이가 처음 학교를 가게 되면 신호등이나 잘 건널까, 선생님 말씀을 잘 따라갈까, 친구들하고는 잘 지낼까... 온갖 걱정이 쌓이게 마련입니다. 그런 것처럼 이 책이 어떤 독자들을 만나게 될지, 그 독자에게 도움이 될지, 소셜 미디어 책이 쏟아지는 이 시점에서 서점 자리를 잘 보존할 수 있을지... (-_-) 적어 놓고 보니 역시 생뚱맞고 적절하지 않은 비유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이 책은 처음에 2009년 6월에 발간된 제 첫번째 책 '블로그 만들기' 후속편으로 기획 됐습니다. 그 책의 독자층을 대상으로, 혹은 조금 폭을 넓혀서 블로그와 최근 1년사이 주목받는 트위터, 페이스북, 각종 소셜 미디어 서비스들을 이해하고, 그 툴들의 속성을 통해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게 해주자는 취지였지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소셜 미디어는 이제 대세가 되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서비스들이 인기를 얻었을 뿐더러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면서 더욱 활기를 얻어 이용자도 늘어나고, 사회적인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셜 미디어'나 '모바일 시대'라는 흐름이 섬광을 비추어 많은 사람들이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맞는데, 과연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구조로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정돈해서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같습니다. 트위터도 알고, 실제로 사용하기도 하고, 페이스북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각각의 서비스들이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사회 변화의 각각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에 대해 정리는 잘 안되는 분들도 많은 것 같구요. 제 주변에는 신문지상에서 하도 얘기를 해서 트위터도 알고, 세계 최연소 최고 부자가 창업했다는 페이스북도 들어는 보았지만, 그리고 큰맘 먹고 스마트폰도 구매했지만 아직 사용해볼 용기를 내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일종의 '소셜 미디어 포비아'라고 정의해봅니다. 컴퓨터가 보급되던 시기에, 인터넷이 대중화 되던 시기에도 역시 같은 현상이 있었습니다. 컴맹이니 넷맹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 포비아를 극복하고 컴퓨터에, 인터넷을 생활 속에 받아 들이면서 디지털/인터넷 문화는 발전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소셜 미디어가 하나의 흐름이기는 한데, 어쩐지 두려운 '포비아'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소셜 미디어 공포증을 가진 분들이 제 책을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제 책은 특정 서비스의 사용법도 아니고 또 심오한 학문적 연구와 축적을 이룬 글도 아니지만, 제가 2007년부터 소셜 미디어 컨설팅을 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한 것이니, 생활에 밀착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소셜 미디어가 알듯 말듯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소셜 미디어를 배워 보려면 트위터 사용법부터 익혀야 하는 것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제 책을 읽으시고, 조금은 쉽게 트렌드와 서비스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소셜 미디어의 맛에 푹 빠져들어 저와 블로그에서, 트위터공간에서도, 미투에서도, 페이스북에서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기를 바랍니다. 

책을 낸 사람으로 몇가지 이 책이 가진 단점에 대해 자백하겠습니다. 

1. 책을 받고 읽어 보니 오타가 많았습니다. 혹시라도 2쇄를 발간하게 된다면 한번에 박멸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조금 확산된 이후에 오타찾기 이벤트라도 한번 하겠습니다. 사죄의 의미로...(-_-)

2. 제가 책탈고 후에 블로그 포스트(http://www.sunblogged.com/411)로 '확산의 기술' 응원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부탁 드렸습니다. 유명인사 몇분의 추천사보다는 소셜 네트워크 상의 제 친구분들의 응원 및 추천 메시지를 받고 싶어서 였죠.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는데 출판사와의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너무 안이쁘게 실렸습니다. 제가 이 책을 받아보고 가장 가슴이 철렁했던 부분입니다. 이 역시 2쇄 찍게 되면 편집 다시 하자고 출판사와 얘기했습니다. (-_-)

3. 이 책을 찾으시는 분들 중에 제 본업이 기업 및 공공기관등에 컨설팅을 하는 일이다 보니 기업과 공공기관의 활용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가지실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만, 고백하건데 이 부분이 충실하게 구성되지 못했습니다.기업/공공기관의 활용 만으로도 책 한권이 나올수 있는 분량이라고 생각도 들었고, 원고 쓰는 과정에서도 범위가 애매해서 그리 되었습니다. 특히 공공기관은 블로그 활용 부분까지만 정리가 되어 최근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다른 서비스들을 많이 쓰시는 현상을 담지 못했습니다. 이는 소셜 미디어 활용처럼 발전 속도가 빠른 것을 책이라는 툴이 담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기업/공공기관의 활용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지,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는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컨텐츠가 먹히는지, 기존 언론 PR과 소셜 미디어 툴을 활용한 PR은 속성상 무엇이 다른지 등등에 대한 설명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 이쯤 되면 책을 내놓고 제가 너무 걱정거리와 반성으로 가득 찼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은,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해서, 그 기쁨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벤트 하나 진행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어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주시거나 트위터, 미투데이에 소개해 주세요! (트위터 RT 이벤트는 정말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것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저를...) 5분께 책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댓글달고 트위터, 미투데이 확산해주시면 더욱 당첨확률이 높아집니다...^^) 더 많은 분께 보냈으면 좋겠지만 제가 가진 책이 많지 않습니다..

제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으시고도 책을 가지실 수 있는 방법은,
블로그 코리아 리뷰룸에 참여 (http://www.blogkorea.net/bnmsvc/NewsRoom.do?gu=NewsRoomView&Seq=2179&ncatecode=ALL#axzz16qQS3wx3) 하는 방법과, 인터넷에서 구매(http://www.yes24.com/24/goods/4425160?scode=032&srank=1)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많이 많이 참여해주시고, 많이 많이 알려 주세요!

덧붙임** 이런, 이런.. 이벤트를 하면서 기간을 정하지 않다니... 제가 아무래도 허둥지둥 하고 있나 봅니다. 기간은 12월 7일까지로 하겠습니다. 7일 자정에 마감하고 8일날 발표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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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 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의 소셜(Social) 스러운 맛

책읽기 2010.11.19 14:25

나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정말 정치에는 무관심한 층이다. 어쩔수없이 부풀리고 과장하는 정치의 속성 자체가 싫을 뿐더러 선명한 명분을 위해 때로 독선적으로 보이는 정치적 주장들의 톤앤매너가 싫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소위 '386 세대'로 살아왔고 주변에 '운동하는' 친구를 많이 두었음에도, 정치에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런 내가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제목부터 정치적인 책을 샀다. 어제 주문한 책을 받고 조국교수의 서문과 앞부분을 읽으면서 책이 지극히 '소셜(Social)' 스럽게 기획됐다고 느꼈고, 바로 그것 때문에 이책의 성공을 예감하게 됐다. 

'친구' 네트워크 기반의 친밀감이 주는 홍보 효과 

내가 애초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내용이 궁금했다기 보다는 저자들과의 '심정적인' 친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조국 교수님은 나보다 학번 위로 학교 다닐때 부터 '지성과 미모'로 주목 받았던 인물이다.(교수님 죄송합니다!)  사실 '서울대 법대 학생'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치에 어울리지 않게 훤칠한 키와 조각같은 얼굴로 인문사회대 할 것 없이 (조금 과장하자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엄친아의 전형이었으니 말이다. 오연호 대표님도 이런 저런 모임을 통해 알게 됐으며 미디어유 설립에 큰 도움을 주신 분이다. 포괄적인 개념의 '친구'인 두 분이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비록 내가 관심 없는 정치 이야기일지언정 관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했다.

조국 교수님과 오연호 대표님은 모두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계시고 친구도 많은 분들이다. 나처럼 개인적인 친밀감으로 두 분의 대화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을 사람이 초기 독자층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만약 소셜 네트워크시대가 아니었더라면, 두 분이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런 두 사람이 함께 뭉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의 초기 관심도는 떨어졌을 것이다. 이 책이 다분히 '소셜' 미디어 환경에 맞게 기획되었다고 생각하는 첫번째 이유이다.


정치, 시사적인 무거운 주제를 '소셜'스럽게 연성화

책을 처음 받고 받은 느낌은, 조국 교수님이 가진 매력을 최대한 활용한 책이라는 생각이었다. 정치, 시사 분야의 책으로는 드물게 책 사이 사이에 조국 교수님의 진지하고, 환하게 웃고, 또 열정적인 표정의 사진들이 들어 있다. 저자가 두 분이니 오연호 대표님과 함께 찍은 사진도 물론 있으나 그럴땐 늘 구도가 오연호 대표님이 책이 접히는 쪽에, 조국 교수님이 바깥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게 나쁘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소셜 미디어 시대는 '사람'이 강조되고 대화하는 주체의 인간적인 매력이 바탕이 된다. 외모를 포함해 인상이 좋다면 그 사람이 전하는 전달력은 두배, 세배가 되는 법이다. 두 분의 저자가 나눈 대화는 사실상, 컨텐츠의 매력도로 보자면 그리 높지 못하다. 진지한 성찰과 고민, 정확한 분석과 해결책에 대한 통찰력이 담겼다 해도, 대중들은 굳이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진보집권플랜이 성공하려면 대다수의 대중들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여야 한다. 매력도 떨어지는 컨텐츠 (컨텐츠의 질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사회적 성향때문에)를 살리는 방법으로 두 저자의 인간적인 매력을 적극 강조한 (이제까지의 진보스럽지 않은) 대담한 시도에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책을 받고 저자서문과 목차, 그리고 대충 휘리릭 보기 만으로 책소개를 쓰곤 했던 기자시절의 나쁜 버릇으로, 나는 아직도 앞부분만 읽고 책소개를 적는 우를 범하고 있지만, '묻고 답하는' 책의 구성도 관심을 유지시키는 좋은 포맷이다. 두 분 모두 두 남자의 대화라는 서술 양식을 빌려 '까놓고 묻고' '까발려 답하는' 솔직, 담대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정치, 시사 책을 집중해서 읽어 내기란 쉽지 않지만 적어도 질의 응답이라는 양식을 갖췄기 때문에 중간 중간 끊어지는 맛에 훨씬 메시지가 집중되는 효과를 거뒀다.

덧붙여,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내 친구들의 대화를 3자적 입장에서 듣는데 익숙하다 보니 더욱 이런 '묻고 답하는' 형식이 부담없이 전달되는 것같다.


트위터를 통한 독자들과의 대화  

책은 초기 부터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의 홍보 전략을 보면 '대화하기'가 핵심이다. 두 저자 모두 독자들과의 대담회 행사를 자주 갖고 있으며 오연호 대표는 트위터에서 이 책에 관심갖는 독자들에게 일일이 답하며 책에 대한 관심 환기, 홍보에 나서고 있다. 비단 이 책을 많이 팔기 위한 노력일 뿐 아니라 이 책의 절실한 메시지 '진보집권플랜'의 홍보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듯 보인다.  

주말에는 기필코 이 책을 읽을 생각이다. 적어도 내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 알아왔던 두 분의 저자가 수십년을 한 길을 걸었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늘 치열하게 노력했음을 알아주는 포괄적 친구로 두 사람이 목청껏 나눈 얘기들을 귀담아 들어야 겠기에.

* 덧. 책이 뜨고 문득 몇년전 조국 교수님이 보내준 '형사법의 성편향'이라는 책이 기억나 찾아 보았다. 솔직히 그 책을 받을땐 도대체 왜 내게 이 책을 보내주었을지... 이 책이 내 삶의 어디에 필요할지 이유를 몰랐으나 오늘 이렇게 조국 교수님께 책 선물 받았음을 자랑하게 될줄이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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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멕(SoMeC)은 계속된다!" - Team 2에 함께하실 분 찾습니다!

책읽기 2010.10.04 11:17

앞서가는 사람들의 부지런한 결심! 쏘멕(SoMeC)에서 Team2에 함께하실분을 찾습니다.

트위터를 모르고 페이스북을 모르면 대화에 참여하기 어려우시다고 느끼시나요? 혹은 다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소셜 미디어를 맹신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트위터, 페이스북등을 배워 보려 했으나 뭐가 뭔지 몰라 난감해하신 적은 없습니까?

이렇게 소셜 미디어에 관심은 있으나 본격적으로 시작할 엄두를 못내고 계신 분들, 소셜 미디어를 사용은 해보았지만 업무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고 싶은 분들을 위해 쏘멕(SoMeC)이 시작되었습니다.  SoMeC은 소셜 미디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모임입니다. 지난 7월 SoMeC Team1이 결성되어 한달 동안 자발적인 참여로 각자의 업무에서 소셜 미디어를 적용하고 연구하는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제 SoMeC을 더욱 발전시킬 Team2를 모집합니다. 



▶ 쏘멕(SoMeC) Team2는 정확히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요?
SoMeC은 학습 프로그램이지만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로 합니다. 저는 늘 소셜 미디어를 마치 수영에 비유를 많이 하는데, 소셜 미디어는 이론으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물속에 몸을 담궈 힘을 빼고 뜨는 연습을 하고, 호흡법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소셜 미디어에 빠져야 알 수 있다는 얘기지요. SoMeC은 소셜 미디어를 시작하는데 혼자 하는 것 보다는 친구들의 도움도 받고, 또 내가 도와주기도 하면서 익혀 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지식을 주입해주진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빠져들수 있도록 도울 뿐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 소셜 미디어를 즐기는 '방법'은 있습니다. SoMeC은 그 방법들을 서로 공유하며 참가자들이 원래 생각했던 학습 목표를 함께 달성하도록 서로 도움을 주는 그런 모임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른 학습 프로그램과는 달리 정기적인 강의나 모임이 마련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학습한 것을 정리하여 함께 나누는 과정은 필요합니다. 


▶ 쏘멕(SoMeC) Team2 주요 학습 일정    
 Team1에서는 참가자 개개인이 서로 다른 자신만의 학습 주제를 정해 일주일 단위로 학습 성과를 정리하고 4주 후에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바쁘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진척을 못할 경우에는 원래 의도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많았고 팀원들끼리의 친분쌓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Team2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몇가지 학습 주제를 미리 선정해 드리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기초 활용법에 대한 공동 강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Team2 학습 주제에 대해 같은 주제에 관심있는 사람들끼리 2-3명 팀을 짜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스스로 개인 주제를 정해서 참가하시는 것도 여전히 가능합니다. 학습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셜미디어 입문 과정 트위터 활용하기
- 트위터 기초사용법 강좌 (1회)
- 트위터 팔로워 늘리기
- 트위터 주요 이슈 정리
페이스북 이해하기
- 페이스북 기능 이해
- 페이스북 계정 만들기 및 운영
- 페이스북 주요 어플 정리
 - 기초 강좌 진행
 - '트위터 활용하기' 그룹과 '페이스북 이해하기' 그룹을 나눠 그룹별 내용 정리  
 소셜미디어 심화 과정
트위터 관련 주제
- 트위터의 영향력 측정
  트위터의 영향력은 어디에서 나오며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 연구

페이스북 관련 주제
- 페이스북 페이지 구성 및 운영
  페이스북에서 SoMeC 페이지 운영하면서 페이지 구성/운영에 대한 매뉴얼 정리
- 페이스북을 통한 홍보
  페이스북을 통한 효과적인 홍보/마케팅 사례 및 방법 연구
- 기초강좌 공동 진행
- 심화과정 주제를 선정해 같은 주제를 선정한 참가자끼리 그룹별 활동
 개인주제  개인이 정한 주제  매주 개별 주제에 대한 개별 학습내용 정리

쏘멕(SoMeC) Team2는 지원 과정을 거쳐 10월 20일경부터 약 한달동안 진행될 예정입니다. 자세한 일정은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 쏘멕(SoMeC) Team2 참가방법    
Team2 참가를 원하시는 분들의 지원서를 받아 최종 팀원을 구성하고 4주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 Team 2 모집기간: 2010년 10월 4일 ~ 13일까지
- 지원 방법: 지원서(자유양식) 작성 후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somec@mediau.net, 혹은 easysun@mediau.net)

   지원서에는 개인의 간략한 업무소개와 SoMeC에 참여하고 싶은 이유, 이 과정을 통해 얻고 싶은 목표와 함께 위의 학습 과정 중에서 관심있는 분야를 명확하게 적어 주세요. 학습 과정은 중복 선택 가능합니다. 혹시 질문이 있으시면 easysun@mediau.net이나 댓글로 남겨 주세요!

많은 분들의 참여와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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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멕(SoMeC), 잔치는 시작됐다.

책읽기 2010.08.14 07:49
소셜미디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활용도도 증가되고 있어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모임을 가져 보자는 취지에서 쏘멕(SoMeC)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쏘멕 함께 하시겠습니까? 참고)

5명의 Team 1이 출발하여 7월 한달 동안 자신의 과제를 정하고 이런 저런 실험을 통해 소셜 미디어를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자발적으로, 스스로 공부하는 모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간은 있어야 하고 얻을 것을 정리하는 자리는 있어야 겠기에, 어제 SoMeC Team1의 정리 파티를 했습니다.


정리 모임은 미디어유 근처 카페에서 진행이 되었는데요 샌드위치와 음료, 피자, 와인등을 앞에 두고 한 맛있고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행사준비와 사회를 맡은 김현철님이 SoMeC의 경과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음료 주문을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이승경님이 '46일간의 블로그 기록'을 발표하고 계십니다. SoMeC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셔서 많은 실험들을 하면서 배운 것들을 나누고 계십니다. 46일만에 일평균 방문자 700-800명에 이를 정도로 블로그를 활성화 시키셨다니 놀라운 힘이라고 보여집니다. 특히 이승경님은 트위터도 SoMeC이후 처음 개설하셔서 팔로워수 2천명을 넘길 정도로 열심히 소셜 미디어에 빠져 지내고 계십니다.


다음은 배운철님이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기업들을 위한 온라인 모니터링에 대해 발표해주고 계십니다. 온라인 모니터링을 왜 해야하는지, 어떤 요소들을 모니터링 해야하는지, 그리고 어떤 툴들이 나와있는지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벌써 창문밖이 어둑어둑 해지고 있습니다.

두 분의 발표와 질문, 정겨운 담소를 나누며 그렇게 SoMeC 파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러나 SoMeC의 잔치는 이제 막 시작이 된 느낌입니다. 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스터디가 운영될 수 있도록 Team2, 3을 이어서 꾸려가면서 보다 많은 소셜 미디어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채곡채곡 쌓일 수 있도록 정돈하겠습니다.

Team1으로 활동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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