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읽기 15] 죽을 만큼 웃긴가? - 이동엽

책읽기 2014.08.01 15:19

문을 열고 이상한 공간에 들어섰다


평범한  차림의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는데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았다.  흔히  연예인들은  광채가  난다고  하지만,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오가는  사람들은  광채라는  미끈한  단어로는  표현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었다.  스치고  지나면서도  씩씩하게  안녕하십니까?’를  외치는  그  눈  빛에서,  그  웃음에서,  그  표정에서  활기찬  에너지가  전해졌다.  벽에  걸린  현수막에는 죽을 만큼 웃긴가?’  라고  적혀  있다.  죽을  만큼  웃기기  위해  모두가  땀을  흘리는  공간,  바로  SBS  개그  프로그램  웃찾사 (웃음을 찾는 사람들)’  대본  연습실이었다.



                        <웃찾사 대본 연습실에 걸려있는 현수막>


웃찾사의  대표  코너라  할  수  있는  누명의  추억을  이끌고  있는  이동엽씨를  만났다.  동그란  안경의  주인공은  상당히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개그맨으로  데뷔한지  십년  가까이  되는  웃찾사의  터주대감이다.


요즘은  동네  꼬마들이  저를 보면  출렁~ 출렁!’,  ‘넘실~ 넘실!’ 하고  누명의  추억에  나오는  대사로  반겨  줍니다.  웃찾사의 인기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죠.”


그는  개그  프로그램은  초등학생이  기억을  하느냐로  인기  여부가  판가름  난다며  웃찾사의  상승세를  자랑했다.



       <2012년 다시 부활한 웃찾사> 


웃찾사는  한  때 (2003/2004)  시청률  30%에  육박할  만큼  인기를  끌었던  SBS의  간판급  오락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가  이런  저런  악재들이  겹쳐  대박 코너없이  몇 년이  지났고,  시청률이  계속  떨어졌다.  시청률이  떨어지니  방송  시간대를 바꾸기  시작하고,  방송시간이  오락  가락  하니  더  사람들이  안보게  되는  악순환이  겹쳤다.  급기야  2010년부터  2년간은  방송이  폐지되는  고난의  시간도  겪었다.  2012년  다시  부활해서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 번  죽었던  프로그램,  금요일 밤  11시대의  편성, ‘개그 콘서트 (개콘)’ 라는  막강한  경쟁 상대 첩첩산중,  난제들이  쌓인  가운데  힘겹게  재출발한  웃찾사는  최근  들어  조금씩  시청률을  높이며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


요즘 들어  주변에서  웃찾사  방청권을  구해 달라는 지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웃찾사  언제하는지도  몰랐고, 심지어  다시  부활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조금씩  변화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 번  추락한  경험이  있어서  인지  상승세를  맞는  웃찾사 팀의  활기  속에는  '죽을 만큼 웃긴가?'라고 물을 만큼 비장함도  섞여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얻어 내는  일.  어떻게  웃음  거리를  찾는지  물었다.





아이디어  회의를  하지만,  사실상  일상이  모두  소재가  될  수가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개그의  촉각을  세워  두어야  합니다.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순간에  소재를  찾아  성공한  사례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죠.”


누명을  쓰고  무인도나  산  속에  숨어  사는  남자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누명의 추억’  코너의  탄생도  사실  첫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아이디어  회의를  하려고  모였는데  막내  후배가  한  시간  정도  늦게  나타났다.  그  후배는  너무나  민망했는지  90도로  고개를  숙이고는  여러  번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이동엽씨는  늦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야단도  치지  않고  넘어  갔는데,  주변에서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던졌다고 했다.


동엽이가 후배를 잡는군!”


너무 그렇게 애들 기합주지 말아라..”


사소한  일이었지만  자신이  누명을  쓰고  변명을  하는  과정에서  누명의 추억’  코너의  기본  얼개가  아이디어로  나왔다.  누명 쓴  얘기를  말로만  풀어내다  보니  너무  단조로워  출렁, 출렁’,  ‘넘실 넘실’  등의  의태어를  넣어  귀에  쏙쏙  박히는  효과를  만들어  냈다.





그가  일상의  순간  순간도  놓치지  않으며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것은  지금  하는  일이  어렵게  찾은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원래  이과생이었습니다.  기계공학과를  나왔죠.  취직하기  쉬운  과를  택하라는  부모님의  바램  대로  대학진학을  했지만,  결국  무대를  버릴  수는  없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그는  장기자랑의  스타였다.  대학  때도  전공과는  상관없는  연극  동아리  활동에  열중 했다.  하지만 틈틈이 무대에 섰던  이십  대 중반까지도  그는  늘  진로를  고민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큰  돈을  벌지  못해도  평생  이  일을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스물  아홉 살까지  한  달에  백만  원  만  벌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램이었습니다.”


그런  간절함을  놓지  않으니  절로  길은  찾아 졌다.  이제  남은  숙제는  장수하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다.


갈수록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사람들의  웃음을  끄집어  내는  게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  코너가  인기를 끌면  1, 2년은  무난하게  유지됐는데,  요즘은  1년  채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유행어  하나에  마음 껏  웃어주거나  넘어지는  장면  하나로  쉽게  웃어주는  시청자들은  이제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  익숙함  속에서도  뭔가  색다른  것을  전달해야  살아  남을  수  있어서  매일  매일을  공부하고  고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제  소원은  평생   이  일을  하는  겁니다.  한  십년  후에도  이렇게  제  프로그램에  대해서,  연기에  대해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십  년쯤이면  하고  있는  일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져서  시들해지기도  하건만,  자신이  하는  일에  지치지  않는 애정을  갖는 그가 멋져 보였다.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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